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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모두의 역세권 프리미엄

시민의 발이자 도시의 핏줄이라는 지하철. 서울 지하철은 1974년 처음 개통된 이후 현재 10개 노선, 330개 역사, 351㎞의 구간을 통해 연간 약 20억명을 수송한다. 역사 공간은 전철을 타기 위한 단순한 통로 역할에서 도시의 발달에 따라 점차 환승영역이나 인접한 건물의 지하와 연결되는 부분까지 포함되면서 그 규모나 복합성이 날로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간이 광고판이나 상점 이외에는 별다른 기능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면서 지하철 역사는 시민들에게 지하철을 타기까지 마냥 걸어야 하는 지루한 통로에 불과하다. 


공간 자체가 예술작품인 나폴리의 톨레도역. 승강장을 갤러리로 디자인한 브뤼셀 지하철역.


지하공간은 사계절이 뚜렷한 지상에 비해 항온·항습에 유리하고 또한 버스, 주변 건물 등과 바로 연결되는 장점이 있다. 역세권의 프리미엄은 지상에서 상업적으로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역 자체가 공공 프리미엄’이 되어야 한다. 지하철역의 통로와 유휴공간들 그리고 넘쳐나는 광고와 상업공간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시민들이 문화와 예술을 보다 쉽고 친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면 우리 일상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도시의 매력이 될 것이다. 


요즘은 단일목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공간들이 현대 도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창고나 공장이 공연장, 전시장으로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거대 쇼핑몰의 한가운데 만들어진 뜬금없는 도서관은 연일 사람들로 붐빈다. 기존 특정 공간들이 재생, 협업, 공유를 통해 단일목적에서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하철역을 천편일률적이고 무미건조한 통로 중심에서 역사마다 그 동네의 지역성과 이용자의 특성을 세심히 반영하여 출퇴근, 등하교용 생활 편의 기반시설로 개조하자. 노후화가 가장 심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예로 들면, 청량리역은 지역특산품을 서울로 운송하던 기차역의 기능을 되살려 경기 서부 지역과 강원 지역 청년들의 활동 연계를 통해 지역의 다양한 창작품을 사고파는 청량리 크래프트 마켓으로, 제기동역은 과거 전국의 한약재를 유통하던 제기동 약령시장의 기억을 되살려 바쁜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치유의 공간인 마음약방으로, 서울역은 구역사인 문화역 서울284의 예술 전시가 확장되고 도심의 다양한 문화공간의 전시를 사전에 맛보기 할 수 있는 프리뷰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면 명소가 될 것이다.


좋은 도시란 작고 다양한 문화요소들이 인접해서 오밀조밀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도시이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중요하고 영역 간 접근성이나 연계성이 핵심이다. 


1000만 서울시민의 절반 이상이 매일같이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풍요로울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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