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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패놉티콘. 중앙에 좁은 관리자 공간과 주위로 빙 둘러진 감방은 최소 인원의 최대 감시가 가능하다. 감옥뿐 아니라 신생아실, 학교, 아파트, 회사, 양로원에 이르는 폭넓은 건축 유형에 응용되고 있다.


우리 주변 다양한 건축 시설물들의 기원은 대부분 근대사회의 제도 속에서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학교는 균질한 수준의 노동자 육성을 목표로 한 근대 공교육 제도에서 출발하였고, 심신이 건강한 시민을 재생산하기 위해 종합병원이 생겨났다. 신체 체벌형에서 교화를 위한 감금형으로 근대적 형집행의 사상전환에 의하여 오늘날의 감옥 시설이 나타났다. 박물관은 분류학의 등장으로부터, 철도역은 새로운 이동수단의 발명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시설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장치이기도 하다. 건축공간과 제도는 서로 뗄 수 없는 상호의존적 요소이며 건축의 즉물적인 힘을 통해 비로소 제도는 완성된다. 영어단어 institution은 ‘제도’란 뜻과 동시에 ‘시설’이란 의미도 있다. 시설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지하는 제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역으로 제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설 속 그 제도를 표방하는 공통된 공간적 특성이 필요하였다. 그것을 우리는 건축에 있어서 유형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패놉티콘(Panopticon)의 설계도이다. 중앙에 작은 관리자 공간과 그 주위로 빙 두른 수많은 방들의 배열은 최소 인원의 최대 감시가 가능하다. 패놉티콘의 유형은 감옥뿐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치는 신생아실, 학교, 아파트, 회사, 양로원을 아우르는 다양한 건축 시설들의 유형이다. 이러한 공간적 유형은 알게 모르게 그 안에서 생활하는 우리 삶을 조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외관이 가진 스타일이나 양식에 주목하여 건축을 평가하곤 한다. 이제까지 건축사 또한 미술사의 일부로서 양식에 치중해왔다.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고딕,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등의 유행 순서대로 양식을 나열해 나가면 그럴듯한 건축사의 체계가 정리된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예술이 표현의 문제인 반면 건축은 우리 삶 속 다양한 관계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새로운 삶이 조직된 설계도를 ‘본다’가 아닌 ‘읽는다’고 한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또 그것이 우리를 만든다”고 하였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건축이 표현하는 시각적 디자인이 아닌 그것이 조직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건축의 표피를 절개하여 스타일이라는 화려한 치장물을 발가벗기면 관계성이라는 속살이 드러난다.


<조진만 | 건축가>

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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