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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분노

분노의 이유는 감정이 아니라 참여의 의지라고 했다. 분노를 단념하지 않아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분노해야 행복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일상의실천,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2016, 파이프 설치, 1500×1500×3600㎜ ⓒ일상의실천

 

그는 아낌없이 분노했다. 운전기사, 경비원, 가사도우미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쏟아내며 분노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병명을 내세우니 그들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그는 포스터 속 여성의 눈빛에 분노했다. ‘더럽고’ ‘개시건방지고’ ‘찢어버리고 싶은’ 눈빛을 파내니 그들이 분노했다. 그는 계산하는 편의점 직원에게 분노했고, 느리게 가는 장애인에게 분노했고, 뛰어노는 어린이에게 분노했다. 단식하는 정치인에게 분노했고, 토론하는 도지사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그는 최저임금 인상에 분노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인은 분개했다. 설렁탕집 주인에게, 야경꾼에게, 이발장이에게 분개하고 반항했다. 이내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문장으로 시를 지었다. 

 

디자이너 그룹 일상의실천은 김수영의 이 시구로 조각을 만들어 한옥 마당 한가운데에 세웠다. 시구는 식수와 오물이 동시에 관통하는 배수관으로 만들었다. 파이프를 절단하고 다시 이어 붙여 만든 시구의 미로 속으로 분노의 명분과 배설의 쾌감이 뒤엉켜 흐를 터였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조그마한 일’에 분노한다고 했다.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분노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 배수관에 부조리한 사회를 향하지 못하는 ‘외적 분노’와 ‘내적 자조’를 동시에 실어 나르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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