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지연의 미술 소환

지지와 규탄

김종필 지지자들 근처를 행진하는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 참가단. 1987·12·12 ⓒ박용수

 

1987년 12월12일, 앰배서더 호텔과 태극당이 보이는 동국대학교 정문 앞 도로. 사람들의 행렬이 줄지어 있다.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사람들은 같은 무리로 보이지만, 크게 두 부류로 갈라진다. 한쪽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종필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 그리고 다른 쪽은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 참가자들로 김종필 후보의 유세 활동을 방해했다.

 

당시 13대 대통령 선거전 초반에 12·12 사태가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12·12는 노태우를 비롯한 일부 정치군인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혀 일으킨 반국가적, 반민주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그런데 12·12의 전철은 5·16이며, 김종필은 5·16의 주역이기 때문에 규탄의 대상은 노태우와 김종필이 서로 겹쳐진다. 한 장의 사진 안에 김종필을 지지하는 이들과 그를 절대 지지할 수 없는 이들이 공존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한 인물을 향한 상반된 반응은, 지난 23일 김종필 별세 후 논란 중인 서훈 문제의 입장 차이를 상징하는 것 같다. 흔히 김종필에게도 분명한 공과가 있고,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부당하게 훔친 권력에 기반했다면, 공이든 과이든 장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장물이 좋다고 해도 훈장까지 줄 수는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으로 무엇을 했는가보다 권력을 어떻게 획득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5·16과 12·12 같은 군사 쿠데타는 반복될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피소 리허설  (0) 2018.07.23
뾰족한 상대성  (0) 2018.07.09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0) 2018.06.18
분노  (0) 2018.06.11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0) 2018.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