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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사물의 죽음


Max de Esteban, Proposition one: Only the Emphemeral, P015



기계의 속살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람 몸처럼 기계 속에도 전원이 타고 흐르는 혈관이 있고 오작동을 막아주는 뇌가 있고, 미세한 움직임을 위한 손발이 있겠으나 그 원리를 하나하나 따져 보는 이는 드물다. 스마트폰이 점점 똑똑해지기 위해 그 몸속에 어떤 장기를 달아야 하는지는 사실 관심 밖이다. 빠르고 쉽고 섹시하게 진화하면 그뿐. 기계는 이렇게 쓸모에 따라 유행처럼 찾아왔다가 진화된 경쟁자에게 밀려 고물로 취급 받기 일쑤다.

올해 갤러리 나우의 작가상을 받은 사진가 막스 데 에스테반은 이 기계의 운명에 주목한다. ‘명제1: 수명이 다한 사물들’이라는 제목처럼 기계는 그가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여러 명제 중 단연 첫 번째에 해당한다. 그에게 기계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물질문명의 시대에 소외된 생명체다.

그것들은 외모와 기능에 따라 쉽게 신화화되었다가 재빨리 잊혀짐으로써 죽음을 맞이한다. 작가의 작업은 라디오나 캠코더,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이미 유행이 지난 구식 제품들의 내부를 분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잊혀진 나머지 유령처럼 변해버린 기계들의 처지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부품들을 하얀색으로 칠한다. 그러고는 다시금 조립해가며 중간의 형체를 지속적으로 촬영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열장 가까운 이미지들이 겹쳐진 하나의 작품은 마치 엑스레이 사진처럼 투명하게 그 몸 안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이 기계들에 죽음을 가져온 새로운 기술의 힘을 얻어 사물은 잠시나마 이렇게 부활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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