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지연의 미술 소환

서커스단의 리마

“나의 이름은 리마/ 계단 위를 걷고/ 링을 뛰어넘고/ 죽은 척을 해도/ 알고 싶은 것은/ 이 안에 있지 않아”

 

‘쇼타임’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철창문이 열리자, 얼룩말 리마는 빛나는 서커스 장내를 달리며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왈츠 박자에 맞춰 관중들이 들썩이고, 피에로가 흥을 돋우는 사이, 리마의 묘기는 서커스장의 울타리를 넘고, 조련사를 뿌리치고, 도로를 질주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검은밤, 스튜디오 답지, 리마, 2018, 인터랙티브 뮤직비디오, 3분30초

 

“너도 알잖아/ 갇혀있는 그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는걸”

지난 12월17일, 인간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의 화려함을 만끽하는 사이,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얼룩말 4마리가 크리스마스 서커스에서 탈출해 도심을 달렸다. 엘베 강가를 그림처럼 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 얼룩말의 자유는 짧았다. 경찰과 조련사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한 그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한 명의 경찰이 얼룩말의 발길질에 부상을 당했고, 한 마리의 얼룩말이 죽었다. 전문가는 스트레스를 그 원인으로 진단했다.

 

2015년 필라델피아의 서커스단을 탈출한 두 마리의 얼룩말도 도로를 달리는 모험을 감행했다. 사람들은 이 얼룩말의 탈주를 응원했으나, 그들은 곧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브뤼셀 시민들도 서커스단에서 빠져나와 도심을 누비는 세 마리의 얼룩말을 마주했다. 그들로 인해 도심의 교통은 금세 혼잡해져버렸지만, 이내 정리되었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김유석, 도재명, 안정주, 전소정이 결성한 밴드 ‘검은밤’은 서커스를 탈출하는 얼룩말의 실화를 모티브로 ‘리마’를 만들었고 게임스튜디오 답지는 게임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리마의 탈출과정을 담고 있는 이 게임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리마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를 끝까지 들을 수 없고, 그의 탈출을 응원할 수 없으며, 그의 운명도 확인할 수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엄 리그  (0) 2019.01.14
알고 있는 세계 너머  (0) 2019.01.07
더 나은 세상  (0) 2018.12.26
얼마나 무거운가  (0) 2018.12.17
뮤트  (0) 201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