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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선 위에 선

꽤 의미 있는 전시회의 준비과정에 함께했다.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둔 이 전시의 제목은 ‘선 위에 선’. 과거 군부정권들이 득세했던 시기인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 중 아홉 명이 주인공이다. 법의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일상화된 고문에 의해 온몸과 마음을 다쳤던 사람들. 류낙진, 박성준, 석달윤, 신영복, 안승억, 오병철, 이구영, 이명직, 이준태 선생 등 ‘장기수’로 명명됐던 이들은 각각 수십년에 이르는 수감생활을 한 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배울 수 있었던 서예를 통해 자기 생의 긴 일부를 지켜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동안 수감됐던 오병철 선생의 문방사우들이 전시장에 마련되어 있다. ⓒ임종진


이 전시를 공동주최한 대표적 인권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재단 사람’은 ‘붓이 그려낸 선 위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온 장기수들의 고통과 아픔에 귀 기울일 때 분단의 선이 아닌 서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선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서예작품만으로 세상에 공개되기보다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인간생명의 가치를 폭넓게 이해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오픈일인 지난 17일 오후 참여자들 중 생존해 있는 세 명의 장기수 선생들이 참석해 “붓글씨가 나를 자유케 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전언이 묵직하게 주변을 채우는 사이 전시장 한가운데 마련된 오병철 선생의 문방사우들이 유독 눈에 들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이자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간 옥고를 치른 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새로운 작품 등 아홉 명의 붓글씨 60여 점이 내걸린 ‘선 위에 선’ 전시는 서울 인사동 라이프러리 아카이브 갤러리에서 이달 30일까지 열린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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