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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허리에 파스 붙이는 날

성미산어린이집 아이들이 지난해 직접 재배한 볍씨를 털어보면서 먹거리의 소중함을 익히고 있다. ⓒ임종진


‘경기장’ 한가운데서 허리가 꺾이는 즐거움을 경험했다. 실제 허리가 휘는 듯한 통증이 있었음에도 히죽히죽 자꾸 웃음이 나왔다. ‘놀아주기’ 임무를 부여받은 나는 스무 명의 6세에서 7세 사이 ‘꼬마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를 반복했다.


서너 명씩 조를 이루어 사방으로 흩어진 선수들은 쉼 없이 나를 호출하며 자기네 조와의 맞상대를 강요하거나 숨넘어가는 미소로 유혹하기도 했다. 결기를 가득 품은 한 선수는 손수 종이로 만든 광선검을 자랑하다가 빈손인 나를 측은히 여기고는 즉석에서 검을 만들어 주는 통 큰 배포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닐곱 명의 또 다른 선수들은 저마다 책 한 권씩을 들고 먼저 읽어달라며 매달렸다. 동시에 꽤 튼실해 보이는 두 소녀 선수가 양쪽 어깨에 사이좋게 걸터앉은 채 인생의 무게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지칠 줄 모르는 선수들의 고성과 울음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최종 관문은 15㎏에 이르는 나의 따님을 목마로 모신 채 해발 66m 높이의 성미산을 넘어 집 현관문을 여는 일. 이것을 끝으로 어린이집 학부모로서 임무 하나를 완수할 수 있었다. 육신은 끙끙 아우성을 쳤지만 할 일을 다 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다섯 살배기 딸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보낸 지 2년째다. 교사에게만 아이를 맡기지 않고 부모들이 직접 보육과 어린이집 운영 전반에 참여하고 있어서인지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처럼 귀하다는 배움을 얻는다. 늦은 밤 내 허리에 파스를 붙여주던 아내가 말했다. “올해 한 번 더 해야 할 걸?” 


다시 치열한 경기장에 나서기 위해 몸부터 만들어야겠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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