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종진의 오늘하루

5월의 소망을 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총탄 자국 가득한 건물 앞에서 내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한 소년이 서 있다. 2003·3. 팔레스타인. ⓒ임종진


5월에 들어선 때문인지 어린아이들이 눈에 자주 든다. 푸른 5월의 하늘처럼 맑은 기운이면 좋으련만 근래 들어 전파를 타고 들리는 가슴 아픈 소식들 탓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더 많다. 그 먹먹함에 크게 절망했던 오래전 기억이 하나 있다.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잠시 머물렀던 때다. 


현지의 분위기는 우려를 훨씬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폭음과 성한 데 없이 총탄 자국으로 가득한 건물 담장들 사이에서 만난 아이들은 낯선 동양인의 출몰을 동심 어린 호기심으로 맞이해주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총질을 하는 것은 물론 나름 선의로 준비한 과자봉투를 빼앗아 내 얼굴에 던지기도 했다. 심지어 내 등에 돌을 던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두려움은 날 선 눈빛과 거친 행동 때문이라기보다는 폭력에 물든 아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그들만의 생존방식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한 까까머리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계속 나를 따라다니던 그 소년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종종 내게 미소를 던졌다. 위험한 지역은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오랜 기억이지만 아마도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형언하기 어려운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은 선명하다. 당황한 마음에 이름조차 묻지 못한 것이 늘 후회스럽기만 하다.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는 5월의 푸른 하늘을 보며 지금은 청년이 되었을 그 소년의 건강한 안부를 소망해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임종진의 오늘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식씨의 세상나들이  (0) 2019.05.17
어머니의 마지막 손길  (0) 2019.05.10
허리에 파스 붙이는 날  (0) 2019.04.26
선 위에 선  (0) 2019.04.19
관식이 엄마  (0) 2019.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