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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시뮬레이션

구글의 카메라가 포착한 스트리트뷰를 자신의 작업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고, 인터넷 속의 가상 커뮤니티를 관찰하고, 비디오 게임에 집중하는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하면서, 웹이라는 ‘깊고 어두운’ 온라인 세계와 그 안의 하위문화를 탐구해온 작가 존 라프만.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의 감성을 혼합하여 패션에 대한 고정 관념을 뒤집으면서 영향력을 획득한 베트멍을 만들고, 유서 깊은 발렌시아가에 ‘파괴적이고 반문화적인 관점’을 주입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 패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 이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아트바젤 행사장에서 만났다.


존 라프만, 발렌시아가 2019SS 패션쇼, 2018, ⓒ존 라프만, 발렌시아가


상위문화와 하위문화를 구별하는 계층 구조를 수긍할 수 없었던 81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은, 발렌시아가의 2019SS의 패션쇼 무대 디자인과, 캠페인 영상작업을 함께하기로 했다. 존 라프만은 쇼 무대를 인터넷 서브 컬처의 광대한 바다처럼 설정하고, 그 안에 코스춤 플레이, 라이브액션 롤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던전’을 열었다. 영화 <메트릭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Y2K 이슈, 90년대 비디오 게임의 코드 등에서 가져온 이미지와 메시지 사이를 걸어 나오는 모델들을 바라보며 관객들의 상상은, 뎀나 바잘리아의 바람대로 ‘또 다른 현실’로 이동했다.


존 라프만은 디지털 현실에서 강박적으로 살고 있는 인물들을 작품 안에 담으면서, 인터넷과 가상 플랫폼의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의 행동, 사회활동, 심지어 개인의 정체성에 어떻게 영향을 주며 재정의하는지 지켜봤다. 그리고 그가 지금껏 탐험해온 가상공간과 발렌시아가 패션쇼 작업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시뮬레이션’이란 점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이었다. 작가는 패션쇼와 가상공간의 그 솔직함이 좋았다. 그래서 그는 가상 세계를 온라인 탐색기로 탐구하던 과거의 작업방식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만의 광대한 가상 세계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솔직한 세계를.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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