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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주름

파코 로카, 주름, 2009, 그래픽노블 ⓒ파코 로카


아들 부부도 처음부터 아버지 에밀리오를 요양소에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침대에 앉아 수프를 먹다 말고, “솔직히 말씀드리죠. 이 정도 수입이면 대출 승인이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한때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에밀리오를 돌보느라 예매해 둔 공연을 놓치는 생활에 진절머리가 난 아들은 당신 아버지는 우리들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말을 뒤로한 채, 에밀리오의 아파트를 팔아 수영장 사진이 5성급 호텔처럼 근사한 요양원으로 모셨다.


“오래된 아파트보다 낫지 않아요?” 아버지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었던 아들은 자신의 일상을 돌려받을 수 있는 ‘효도’를 했다. ‘현실’에서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한 그는 기억을 지워가는 아버지를 지척에서 지켜보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잘 가라”고 눈썹을 치켜세우고 매몰차게 인사하는 아버지 뒤로 요양소 문을 닫으며 아들은 씁쓸하게 돌아섰다.


“자식들은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자유를 더 사랑하는 거야. 그러니 늙은이를 전용 호텔에 가둬 놓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거지.” 미겔의 냉정한 현실 진단 앞에서 3명의 아들, 4명의 딸, 50명의 손자를 두었지만, 방문객이 없는 안토니아는 “내가 여기 오기로 한 거예요. 자식들에게 짐이 안되려고. 젊은 사람들도 자기 삶을 살아야 되니까”라고 소리친다.


친구 디에고로부터 총기를 잃어가는 그의 아버지 에밀리오 이야기를 들은 작가 파코 로카는 기억의 장애를 겪으며, 가족들에게서 떠나온 노인들의 에피소드를 그래픽노블 ‘주름’에 담았다. 누구도 내려설 수 없는 ‘노화’행 기차 안에서 나를 이루었던 기억들은 내 머리를 떠난다. 기억의 장면을 한 장씩, 두 장씩 바람에 날려 보내는 에밀리오의 모습 위로 로카는 묻는다. “한 줄 한 줄 깊어가는 주름처럼 쌓아온 인생의 끝에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겠습니까.”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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