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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아무렇지 않은 날

 


정주하, 불안, 불-안, 2005


바닷가에서 사내가 투망을 하고 있다. 밀물 때라 운이 좋으면 잡어라도 몇 마리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군데군데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여름의 끝 혹은 여름의 시작을 앞에 둔 바닷가 마을은 꽤 평화로워 보인다. 단정하고 안정감 있는 사진의 구도는 이 나른한 풍경이 영원할 것 같은 신뢰감마저 풍긴다.

다만 오른쪽으로 눈에 들어오는 원자력 발전소의 육중한 존재감이 조금 거슬릴 뿐이다. 사진 속 일상은 이 생뚱맞은 콘크리트의 돔에 아무런 이질감도 느끼지 않는 눈치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설 때마다 그토록 무수한 반대 여론에 부딪혔건만, 막상 사진으로 보니 아무 일도 없어 보인다. 콘크리트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평범한’ 어촌 마을일 뿐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바닷가 마을들을 쫓아다니며 기록한 정주하의 사진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홍보하는 사진일 수 없는 이유는, 보면 볼수록 까닭 모를 불안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중립적 시선은 사건 전야 같은 불길함을 더욱 가중시킨다. 지극히 평화로운 한낮의 바닷가 풍경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은폐된 불안함이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저 바벨탑이 괴물로 변하는 순간을 상상하는 일은 끔찍하다. 그러나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다만 함께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그 가능성을 잊게 될 뿐이다.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게 된 공포는 그래서 더 끔찍하고 두렵다. 체르노빌도 후쿠시마도 아무렇지 않은 어느 날에 그 숨어 있던 공포가 현실이 되었다. 작가가 작품 제목을 <불안, 불-안>이라고 붙인 이유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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