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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생명나무

이정록, 생명나무, 제주도, 2013


사려니 숲에서 한 그루 나무가 피어나고 있다. 아무렴 꽃도 아닌데 피어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무는 분명 가지마다 주렁주렁 빛을 매단 채 새롭게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깊다 못해 영험한 숲속이나 잔잔하다 못해 그윽한 바닷가처럼 나무가 태어나는 숙연한 장소들은 이 심증을 훨씬 굳히게 만든다. 마치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자연이 온 힘을 쏟아부어 한 그루 나무에 땅 밑의 모든 기운들을 모아주고 있는 듯한 숙연함마저 든다.


이정록은 이렇듯 한 그루 나무를 성스러운 장소로 옮겨와 새롭게 생명을 주는 일을 벌이고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이정록의 행위에 쓰이는 나무 또한 예사로울 수가 없으니, 작가에게 작품 속 나무는 ‘신목’이나 다름없다. 무속신앙에서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나무를 모시듯, 작가는 자연의 깊은 울림이 있는 곳에 나무를 세워두고 자연의 영험함을 그러모으려고 한다. 분명 존재는 하지만 보이지는 않기에 더 놀라운 이 자연의 신비로움을 나무 한 그루가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작가는 나뭇가지마다 불빛을 밝혀준다. 어둠에서부터 찾아오는 빛이야말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영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빛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그윽하다 해도, 그 빛이 포토샵에서 왔다고 하면 좀 시시해질 수도 있다. 이정록의 작품이 놀라운 건, 작가가 직접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은 나무를 골라 숲속까지 옮겨 설치하고, 현장에서 무려 열 단계가 넘는 촬영 조건을 활용해 아날로그 필름 한 장으로 이 풍경을 얻어낸다는 데 있다. 그러니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최소 일주일 품은 들여야 한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다. 자기 식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방법을 터득한 이정록의 발상은 참신하지만, 그 고단한 과정들은 사뭇 종교적인 느낌까지 풍긴다. 그래서 그의 ‘생명나무’는 우리 유전자에 숨겨진 자연을 향한 경배의 마음마저 새롭게 피어나게 만든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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