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안나,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02, 2011
현대 문명의 특성을 속도의 질주로 보고 있는 속도사상가 폴 비릴리오에게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더 멀리 더 빨리 보고자 하는 지각의 병참학과 맞닿아 있다.
적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해 선제공격을 하는 것만이 가장 효율적인 승리인 것처럼, 우리는 인공위성과 감시카메라와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현실 사회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시각적 점령을 욕망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이 스펙터클해진다. 영화는 전쟁처럼, 전쟁은 영화처럼 시각적 강렬함을 흉내 내고, 결국 그 둘은 현실이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한다.
임안나의 ‘클라이맥스의 재구성’은 이 스펙터클 사회에 대한 시각적 은유다. 영화에서만 보던 무기들의 실제 몸값과 놀라운 파괴력을 알았을 때 작가가 가진 놀라움은 영화보다도 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미래파의 창시자 마리네티가 이미 1920년대에 장갑차를 두고 기계화된 초인적 육신이라고 찬양했듯이 첨단의 능력을 갖춘 무기는 웅장하면서도 매끄러운 외연을 자랑함과 동시에 위압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음과 동시에 인간을 위협한다.
작가는 군더더기와도 같은 설명을 모두 배제한 채 이러한 무기에 대한 초상을 시도한다. 영화 제작에 쓰는 조명까지를 사진에 포함시킴으로써, 마치 영화 촬영의 한 장면인 것처럼 극적으로 연출할 뿐이다. 그 속에서 무기는 본래의 탄생 목적을 감춘 채 한편으로는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대상으로까지 비친다. 그러나 기계와 속도에 대한 동경은 영화처럼 찬란하지만, 결국 그 조명이 꺼지면 클라이맥스가 끝난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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