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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어둠을 이기고

서울심야산보. 2019. ⓒ 김동욱


김동욱의 사진은 기록적이고 지시적이다. 그가 지정한 프레임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의 대도시다. 대낮의 혼잡함 속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함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서울의 밤 풍경에 주목했다.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고 흔적과 기억만 남은 적막한 풍경을 장 노출로 찍어서 야간 조명이 인조 보석처럼 반짝인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외젠 아제’의 풍경처럼 초현실적인 아우라를 보여준다. 거기다 건물의 건립연도와 이력까지 조사해서 밝혀준다. 


여기까지 보면 일상성의 낯설게 보기, 기록, 흑백의 장중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예시한 사진 같기도 하다. 밝은 대낮인데도 한밤중 풍경처럼 적막한 낯선 모습의 거리. 사람의 웃음소리가 잦아든 동네, 셔터를 내린 수많은 상가, 불 꺼진 건물, 금속가게 셔터에 그려진 낙서 등은 자칫 현재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김동욱이 촬영한 시기에는 이 교교한 밤이 내일이면 어느 때와 다름없이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밝은 아침이 오고 또 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약속 같은 미래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아침은 과연 오는 것인가 하는 염려를 품고 잠이 든다. 하지만 어떤 사악한 질병과 의도도 우리 국민의 굳건한 의지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우리는 늘 당당히 맞서 이겨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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