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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2020. ⓒ김지연


꽃도 시절을 잘 타고나야 더 빛나게 핀다. 이번 겨울은 포근해서 눈 한번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추위가 없을까 했더니 얼마 전에 눈이 펑펑 내리고 강추위가 지나갔다. 우리 아파트 양지바른 화단의 매화는 이미 한겨울부터 가지 끝에 진주알을 머금은 듯 봉오리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날마다 집을 들고나며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니, 조금 이르지 않니?” 말을 걸어 보는데 눈치도 없이 몇 개의 봉오리를 일찍 터뜨려 놓고는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또 산책길 옆 조그만 텃밭에서 피는 홍매화는 매년 사람들에게 새로운 봄을 알려주는 깜찍하고 가녀린 녀석이다. 이 나무도 피다만 봉오리가 얼어서 피멍이 든 붉은 입술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번 겨울이 따뜻했기에 더 상처가 깊은 모양이다. 그 뒤로도 지나치다보면 꽃만 피어났을 뿐이지 생기를 잃고 있어 안타까웠다.


올봄은 생각지 못한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힘겹다. 이렇게 세상이 어지럽다보니 꽃을 보는 일도 드물어지고 어쩌다 핀 꽃을 보아도 그저 덤덤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스산한 산책길을 걷다가 동네 뒷산 양지바른 곳에 매화 한 그루가 만개한 것을 보고 다가갔다. 무심코 사진을 찍는데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지 끝에 앉는다. 녀석은 주위에 신경도 안 쓰고 유유자적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니며 꽃을 바라보다가 한 잎씩 따먹는 것이다. 아~, 평화! 


그날이 또 그날 같은 특별하지 않은 날들마저 그리워진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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