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화, Miss H, 2010
영화이론가 자크 오몽은 세상에는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각자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얼굴은 감정의 집합소, 소통을 위한 최전방의 신체, 나를 나이도록 만드는 동시에 남이 나와 다름을 깨닫게 하는 철학적 대상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얼굴은 욕망 혹은 소비의 또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얼굴은 흔히 우리가 걸친 옷, 지닌 물건과 같은 말로 비친다.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 그 모습을 확인하는 내 얼굴을 위해 우리는 치장하고 소유하고 집착한다. 김국화의 ‘얼굴 없는 얼굴’은 이 사물들로 얼굴을 대체한 작업이다. 작가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물건, 매일 들고 다니는 소품들로 얼굴을 감싼 채 그들의 얼굴 없는 초상 작업을 만들었다. 얼굴 가득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자석을 붙이고 있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물건들의 얼굴’에 관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얼굴 가득 덧입혀진 물건은 구매 능력이나 보관할 공간에 대한 대책도 없이 소유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전형적인 모습 같아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물건이 보여주는 특징을 힌트 삼아 사진 속 인물의 취향과 성격을 짐작해 보고 싶은 묘한 심리적 충동도 경험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물건들이 수백 가지의 얼굴을 감추고 사는 우리의 내면을 전부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물을 통해 보여지는 얼굴은 물리적으로는 두껍지만, 사실은 빈 껍질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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