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말은 들을수록 기분이 좋다. 그것은 순리에 따라 사물의 핵심에 다가갔다는 뜻이니 진정한 내공이 있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본래 ‘자연’이라는 것 자체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진가 박형렬은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던 어느 날, 산에 올라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연들이 죄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인공 자연’이라는 말이 흔해진 요즘 나무는 콘크리트 화단 속에서 자라고, 땅은 1평 단위로 셈해지는 부동산이 되었다. 이제는 자연조차도 부자연스러운 괴물이 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박형렬의 ‘포획된 자연’은 이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꼬집는 작업이다. 거대한 자연을 조몰락거리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헛심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우스꽝스러운 혹은 힘든 대지예술을 펼친다. 흙으로 집채만 한 공을 만들어 굴리고, 모래로 바둑판 모양을 만들어 사방에 깔아 놓거나, 바위에다 소유를 의미하는 빨강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놓는 식이다. 이 행위들을 위해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핏 보면 즐기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보면 고생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주제는 무거운데 작품을 보는 마음이 무겁지 않은 이유는 작업을 위해 그가 펼치는 허무한 일회성 ‘자연 사냥 놀이’의 풍자적인 분위기 덕분이다. 그럼에도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천들을 펼쳤다가 걷어내는 그의 수고스러움은 자연에게 미안한 나머지 스스로 시시포스가 돼버린 작가에 대해 연민마저 갖게 한다. 그를 그렇게 만든 공범인 듯해서 마음이 살짝 찔린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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