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라멜라스, 시간, 2020, 온라인퍼포먼스 캡처 이미지. ⓒ 데이비드 라멜라스
고백건대, 관객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기는 늘 어려웠다. 관객을 모시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에 온갖 콘텐츠를 끊임없이 올려야 했다. 전시 자체의 기획보다 전시로부터 파생되는 프로그램 기획이 중요했고, 온라인에 노출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가공하는 일이 중요했다. 조명발 좋은 전시장은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었다. 오프라인은 마치 온라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도대체 전시장에서 전시를 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고민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의 경험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신앙 같은 믿음으로 전시장을 꾸리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그때도 온라인의 힘이 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터넷이 오프라인을, 보완이 아니라 대체하려는 모양을 보니, 이 상황이 장기화되더라도 인류의 삶은 약간의 전환기를 지날 뿐 계속 운영되겠구나 싶다.
최근, 작가 데이비드 라멜라스는 1970년 첫선을 보였던 퍼포먼스를 온라인에서 재공연했다. 눈밭에 일렬로 늘어선 18명의 사람이 차례차례 옆 사람에게 현재시간을 말하는 이 퍼포먼스는, 아르헨티나에서 영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던 작가가, 자신의 지리적 위치가 달라지면서 ‘시간’의 정의와 ‘국제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무렵 구상했다. 세계가 놀라울 만큼 하나로 연결된 덕분에 좀처럼 수습하기 어려운 이 상황을 직면하며 그는 이 작업 ‘시간’을 온라인으로 올렸다. 퍼포머들은 눈밭에 일렬로 늘어서는 대신 각자 집에서 카메라 앞에 앉았다. 화상통신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급부상한 줌과 유튜브가 퍼포먼스를 도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온라인에 접속한 이들은, 자신이 있는 장소의 시간을 자신이 선택한 언어로 말하며 시간과 그 경험을 공유했다. ‘지금 여기’ 온라인에서.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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