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미아 3동 일대 한 재개발지역의 풍경. 2019. ⓒ 임종진
큰길 건너 동네 안 풍경이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신호를 보내왔다. 손으로 휘갈긴 듯 붉은색 글씨로 거칠게 쓰인 현수막들이 한때 이곳의 절박했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서울 우이경전철 삼양역 1번 출구 앞 골목길 초입. 우연히 접한 이끌림의 기운에 응해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고 뒤틀어진 골목길은 미로처럼 어지러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삭막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전제품들, 전깃줄에 흉물스럽게 걸쳐진 전기매트, 자물쇠를 채운 것도 모자라 나무판자에 X자 형태로 못이 박힌 채 봉쇄된 모든 주택과 상가건물들, 벽과 담장 현관문마다 붙여진 출입금지 경고문, 험한 욕설과 이별의 서운함이 담긴 낙서들, 쓰임새를 잃은 채 머루포도 잎새 넝쿨로 완전히 뒤덮인 CCTV 그리고 사람 키 가까운 높이로 온 사방 발 디딜 데를 다 막고 자란 잡초들까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동네 한가운데 선 나는 마치 영화 속 버려진 도시의 한복판에 홀로 선 듯 외롭고 허전했다. 두려움과 고립감에 뒤엉킨 낯선 느낌에 당혹해서일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파리 떼들을 핑계 삼아 천천히 동네를 빠져나왔다.
차량과 행인들이 빚은 소음이 반갑게 느껴질 즈음 한 상가 사이 골목을 가로막은 의자 하나가 눈에 들었다. 사람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 오래도록 주인장의 쉴 몸을 지탱해 주었을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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