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치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1424~1425년, 피렌체 산타미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브란카치예배당.
쫓겨난 이들의 비참한 심경을 이렇게도 침통하게 표현한 그림이 있을까? 창세기 3장 8-24절에 따르면, 하느님은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인간에게 판결을 내린다.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과 남편에의 종속을, 남자에게는 노동의 형벌을 명한다. 하느님은 천사인 케루빔에게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일을 맡겼고, 케루빔은 불칼을 들고 그들을 쫓아내며 성스러운 장소를 지키고 있다.
1425년 마사치오는 피렌체의 실크 상인 브란카치 가문의 가족 예배당을 위해 ‘낙원추방’을 그렸다.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슬퍼하는 아담과 허공을 응시하며 넋이 나간 이브의 표정은 진정 압권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브의 포즈는 마치 비너스가 취하는 ‘비너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까지 하다. 비너스와 이브가 이렇게 중첩되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후대에 벌거벗은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볼썽사납다는 이유로 무화과 나뭇잎을 덧칠한 적이 있었으나, 다시 원래대로 복원해서 현재의 올 누드 상태가 되었다. 원근법을 최초로 사용했던 마사치오는 이 그림을 통해 조각적인 모델링, 명암법, 그림자, 측면에서 바라본 아치, 단축법을 사용한 케루빔 등 이전까지 볼 수 없던 기법들을 강화하였다. 까마득한 후배인 미켈란젤로가 그의 작품을 보고 크게 매료되었을 정도다.
수년 전 피렌체를 다시 방문했을 때, 물어물어 브란카치예배당을 찾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마사치오의 그 유명한 ‘성전세’ 옆에 그려진 ‘낙원추방’을 보고, 나 역시 메두사 같은 충격 먹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금세 아담과 이브의 참담한 기분이 감정이입되었고, 어느새 마사치오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그렇게 하여 그가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지저분한 톰’이라는 별명 외에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사실과 스물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요절했다는 것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미켈란젤로만큼 오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가슴이 저려온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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