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아파트는 작고 낡은 아파트다. 도시개발 바람을 타던 1969년 부산의 대표적인 서민 아파트로 들어섰다. 세월이 흘러 연탄보일러가 도시가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복도 끝 공용을 써야 하고 부엌은 어정쩡한 입식 구조를 하고 있다. 이제 이런 구식의 원조 원룸에는 대개가 아파트만큼이나 나이가 꽉 찬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남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내 집 살이를 택한 어르신들이나 싼 세를 찾아 중심부에서 밀려난 이들이 둥지를 튼다.
윤창수, 수정아파트, 2013
윤창수는 2011년부터 사진기를 들고 이 열일곱 동짜리 아파트를 드나들었다. 아파트와 같은 해에 태어나 이십대의 청춘을 그곳에 부렸던 인연이 처음에는 그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억이 버무려진 긴 오후의 우수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다 정이 든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어주기 시작했고, 그분이 옆집을 소개하는 식으로 ‘신원’이 보증되면서 넘을 수 있는 문턱이 많아졌다.
그런 그가 집안에서 찍은 것은 단순히 주민들의 얼굴만이 아니다. 부엌 살림살이, 안방, 옷장 속, 심지어 밥상까지 그는 마치 수정아파트의 기록원처럼 집집마다 같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기록했다. 카메라를 들고 뒤로 물러서기도 힘든 작은 곳에서 윤창수가 채집한 사진들은 판박이 같은 아파트의 판박이 같지 않은 살림,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지만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 현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사진은 장판이며 옷장 모양, 세탁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과, 무얼 입고 무얼 먹고사는지의 형편까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노란 비닐 장판 위 수저 한 벌이 놓인 단출한 밥상 앞에서는 콘크리트 속에 감춰진 우리 시대의 속살과 마주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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