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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혼종의 탄생

김성수, 하이브리드, 2003


도대체 이 생명체의 정체를 뭐라 불러야 할까. 다리가 여덟 달린 고릴라 아니면 고릴라의 얼굴을 한 문어. 어쩌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처럼 문어를 통째로 잡아먹고 있는 고릴라인지도 모른다. 이 괴생명체는 아직도 진화를 멈추지 않았는지 머리 위로는 더듬이가 솟아나고 몸통에는 날개까지 달고 있다. 물과 뭍, 하늘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존재는 과연 슈퍼 생명체인가 아니면 그 어느 한 부분도 온전치 않은 끔찍한 기형 생명체에 불과한 것일까.

조잡한 싸구려 모형을 재조립해 탄생시킨 이미지 앞에서 심각한 척 이런 식의 궁금증을 갖는 일이 어쩌면 과대망상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켄타우로스나 인어공주 같은 수많은 전설 속 반인반수는 지금도 여전히 동화와 공상과학 세계를 통해 변형된 캐릭터로 재탄생하고, 이런 생명체에 대한 동경은 상상의 세계를 넘어 유전자 조작으로 현실이 된다.

얼핏 봐도 애들 장난감 같은 피규어를 파란색 용액에 담긴 실험실의 생명체처럼 진지하게 접근한 김성수의 사진은 혼종을 향한 우리들의 끝없는 욕망을 이렇듯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생명체 조작만이 아니라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도무지 정체성을 파악할 길이 없어진 현실 사회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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