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를 맨 청년, 기원전 570년경, 아크로폴리스박물관, 그리스
내 서재에 걸려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언제나 질문하게 한다. 도대체 저 묘연한 미소의 근원과 정체는 무엇인가? 물론 그 미소는 학구적으로는 해석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 때로는 문제를 풀지 않는 편이 옳다.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기원전 2세기쯤 알렉산더 대왕의 간다라 정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을 비롯해 석굴암의 본존불,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는 고대 그리스의 아르카익 스마일과 닮아있다. 분명 최초의 불상들은 그리스 조각들처럼 서구인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헤어스타일과 의상도 그리스식이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한반도까지 전파되었으리라.
고대 그리스 미술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는데, 기하학적 시기(B.C. 1100~800년), 아르카익기(B.C. 600~480년), 고전기(B.C. 480~323년), 헬레니즘기(B.C. 323~146년)이다. 아르카익기에는 인체 크기의 등신대 조각상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젊은 남자 누드입상인 코우로스(Kouros)와 옷 입은 여자입상인 코레(kore)라고 부르는 조각이 탄생한다. 이 조각들은 이집트의 조각양식을 답습, 정면입상(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주먹을 쥐고 있는)의 형태다. 몸은 엄격하게 표현이 절제되어있는데, 얼굴은 아주 자연스럽다.
이 시기 조각상의 미소를 아르카익 스마일(archaic smile)이라고 부른다. ‘아르카익’은 우리말로 ‘고풍의, 낡은 식의’라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고졸(古拙)하다는 의미로,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다는 것. 심지어 좀 어눌하고 서툰데도 꽤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아르카익 스마일은 입꼬리가 올라간,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표현된다. 이런 모습은 신비하게도 고전기나 헬레니즘기 조각의 얼굴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활기와 생명력이 있고, 정취가 느껴진다. 팍팍한 현대에 살면서 이런 아르카익한 미소를 보는 일이 점점 없어져간다. 그런 얼굴을 만나는 일이 어려워졌다면, 내 얼굴에서 그 미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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