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 고깃덩어리 사이에 있는 인물, 캔버스에 오일, 1954년
베이컨은 항상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살아있다는 것을 정육점의 고기와 같이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통받는 인간은 동물이고, 고통받는 동물은 인간”이라고 했던 베이컨은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모자라 실제 소 갈빗대를 들고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스스로 잔혹한 초상이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루시앙 프로이트(프로이트의 손자)와 더불어 영국 구상미술의 독보적 존재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동명인 근대경험론 철학의 선구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후손이다.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을 가진 그가 엄청난 동물적 영리함과 감각적 지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조상의 유전자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베이컨은 엄마 옷을 입고 화장을 하다가 아버지한테 쫓겨나 속기사, 하인, 요리사, 디자이너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게 된다. 말 조련사인 아버지의 조수와 첫 성관계를 맺은 그가 동성애자가 된 것은 숙명이었을까. 더군다나 주요 전시를 앞두고 동성애인들이 하나씩 사망(혹은 자살)한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증후다.
베이컨 작품의 독창성은 ‘기(氣)’ 혹은 ‘감각’을 그렸다는 점이다. 질 들뢰즈의 말처럼 그는 “신경계에 직접 호소하는”, “감각을 신경계에 직접 전달하는” 새로운 기법의 회화를 탄생시켰다. 이런 기법을 통해 베이컨은 인간 본성의 짙은 어둠을 감각적으로 피력함으로써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와 쾌락을 그려냈던 것이다.
피카소 전시를 보고 매료돼 화가가 된 그를 피카소 이상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내게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베이컨의 친구이자 미술평론가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데이비드 실베스터가 25년간 베이컨을 인터뷰한 책이 출간된 것이다. 이번 주말, 이 아슬아슬하고 난삽한 인터뷰에 접속해 당신의 무뎌진 감각적인 지성을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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