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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24시간 사이코

더글러스 고든, 24시간 사이코, 1993,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24시간. ⓒ더글러스 고든


하루하루 별일 없이 사는 것이 기적에 가까워 보일 만큼, 세상은 상상 이상의 사건 사고가 넘친다.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들, 잔혹한 결정들, 자기모순이 선명하지만 자신의 허물에는 한없이 자비로운 비열하고 뻔뻔한 존재들에 둘러싸인 채 24시간 생활하다보니 어느 새, 윤리라든가, 상식, 사회질서가 견인하는 ‘올바른’ 가치는 나약한 개인을 통제하고자 강한 자들이 늘어놓은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 앞에 도착한다.


이제 비일상은 일상이, 비정상은 정상이, 사악함은 선함이 되었다. 비상한 속도와 현란한 편집으로 전개되는 세상의 격랑에 휩쓸린 채, 보라는 것을 보고, 들으라는 것을 듣고,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면서 ‘나’를 방치한다.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기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거리가 필요할 텐데, 과연 그 의지를 세울 수 있을까. 속도를 놓친 뒤 차라리 포기하고 방치하는 나른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더글러스 고든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를 러닝타임 109분에서 24시간으로 늘어뜨려 선보였을 때, 관객은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칭송받는 샤워실 살인사건 앞에 1시간가량 노출되었다. 개인의 욕망을 따라 공금을 횡령해 피신한 마리온이, 낯선 모텔에서 머물던 하룻밤 사이 맞닥뜨린 비극 앞에서 관객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선과 악, 상식과 논리, 사회 통념을 떠올렸다. 공포에 휩싸였다.


히치콕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곁에 서 있는 인간적인 괴물을 제시하고자, 숏을 잘게 나누어 충돌시키고, 날카로운 음향효과를 사용하는 등, 온갖 영화적 장치를 사용하여 기획한 장면의 의도는 더글러스 고든의 손 안에서 뒤틀렸다. 초당 24프레임으로 흐르던 장면이 초당 2프레임으로 늘어지면서, 긴장감을 연출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리듬감은 무너졌고, 이미지가 한 컷 한 컷 드러나면서 공포를 조성하는 전략은 노출되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히치콕이 통제하는 감정의 흐름에서 해방된 관객은 이제 더글러스 고든이 통제하는 시간 속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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