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피동사물

프랑스 시민은 1789년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냈다. 세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허수아비로서의 시민은 비로소 모두가 평등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진정한 자유는 당시에도 온전히 지켜지지는 못했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만들어진 최초의 혁명 헌법은 ‘능동시민’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평균 3일치의 임금을 한 해 세금으로 낼 수 있는 남자만이 오직 능동성을 인정받았다. 반대로 능동적으로 세금을 낼 수 있는 여성도, 능동적으로 투표를 행사할 수 있는 남자도 모두 ‘피동시민’으로 전락했다. 피동은 스스로가 상태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애초 성립할 수 없는 모순 조건이자, 배제와 차별의 폭력성을 전제로 한다.


뒤집어보면 이 피동의 운명이 꼭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안초롱은 몇 해 전부터 피동 상태에 있는 물체를 관찰해오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외부의 힘으로 인해 찢어지거나 부러지거나 밟히거나 터져있었다. 각각의 사진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낸 예문과 짝을 지었다. 이 문장 또한 피동 상태와 관련 있는 말들이다. 예를 들면 무엇인가 뜯겨나간 흔적이 역력한 포스터 사진에는 “안 다친 데 없이 죄 뜯긴 수난녀는 너무도 섧고 너무도 분했다”는 소설가 오유권의 문장이 딸려 있다. 섧고 분한 주체가 포스터인지, 안초롱인지, 바라보는 이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누군가는 이 피동 상태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느끼고 있을 터이다. 총선이 끝난 직후여서인가. ‘피동사물’은 피동의 능동성에 대한 고찰 같기도 하다. 피동사물이든, 피동시민이든 밟히면 제 몸을 일그러뜨려서라도 감각적으로 반응한다. 오래전 프랑스도 피동시민의 이 능동적 선택을 두려워했던 것이리라.

송수정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  (0) 2016.04.28
기념비의 역사  (0) 2016.04.21
뮤지엄 아나토미  (0) 2016.04.07
변신  (0) 2016.03.31
당신이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던 50가지  (0) 201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