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소소산수 연작 중 충남 당진, 2013
겨우내 이 사진을 책장에 걸쳐 두고 함께 봄을 기다렸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정말 봄이다. 오히려 눈 내리는 겨울은 참을 만한데, 요즘처럼 사방에서 봄 기운이 보일락 말락하면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낸다. 한껏 연둣빛이 오른 새순도 보고 싶고, 제멋대로 흐드러지는 진달래도 그리워진다. 김진호가 찍은 사진 속에서는 그런 봄이 이제 막 오고 있다. 콘크리트 담장 아래로는 진분홍 꽃이 줄지어 피었다. 실제로 가보면 촌스러울 새파란 지붕도 진분홍과 짝을 이루니 꽤 개성있어 보인다. 길 건너 논밭은 빈혈을 앓듯 아직 푸석한 걸로 보아 꽤 이른 봄인 듯한데, 유독 파랑 지붕 집 뒤편만 꽃놀이가 한창이다. 산수유며 매화, 수선화까지가 한꺼번에 유난스럽기는 어려운 일, 어쩌면 부지런한 집주인이 장에서 구해다 꾸며놓은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정갈한 시골집인데 한편으로는 세트장 같기도 한 이색적인 봄뜰.
김진호의 ‘소소산수’는 말 그대로 별 볼일 없이 소소한 자연 풍경을 담는다. 기차만 타고 다녀봐도 우리나라 국토가 광활하지도 화려하지도 못하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챈다. 얕은 산세가 운치 있게 이어지다가도 공동묘지가 나오고, 논밭이 꽤 넓게 펼쳐진다 싶다가도 축사가 볼품없이 들어온다. 김진호는 이런 시시한 풍경을 가식없이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경’ 산수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들면 예뻐보인다고, 촌스럽고 어설픈 김진호의 사진 속 산수가 오히려 더 그립고 반가울 때가 많다. 특히 꽃 피는 봄이 기다려지는 요즘일수록.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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