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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VR 퍼포머

질 조뱅 & 알타님 스튜디오, VR-I, 2017, 20분 ⓒCie Gilles Jobin


“뚜껑이 열렸어!” 나는 노란 스커트에 하얀 스니커즈를 신은 흑인 여성이었고, 다른 누구는 또 다른 누가 되어 어둑한 동굴에 모여 있던 그 순간, 동굴이 서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려졌다. 우리는 5m의 거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광활한 대지 위에 있다. “거인들과 하이파이브 하고 싶은데 눈에 초점이 없는 것 같아.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어.” 거인들의 움직임을 좇느라 분주한 우리의 눈은 어디인지 특정할 수 없는, 사막 같은, 대지 같은, 아니면 다른 행성일지도 모를 공간을 두리번거린다. “코로 숨을 쉬니까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광활한 대지인데도 밖으로 나갈 수 없군.” 거인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사막에서 산으로, 도시공원으로, 마티스, 베이컨, 이브 클랭의 작품이 걸려 있는 실내로 이동시킨다. 난쟁이가 된 댄서들이 좌대처럼 솟아오른 바닥 위에서 춤을 춘다. 또 다른 댄서들은 공간을 가로지른다. 내 몸을 쑥 통과해버리는 그들의 몸을 만질 수는 없지만,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우리도 몸을 움직였다.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을 탐구해 온 안무가 질 조뱅은 알타님 스튜디오와 협력하여 가상현실의 공간 안으로 춤을 넣었다.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보디를 통해 몸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질 조뱅은 가상현실의 세계 안에서 안무 언어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디지털 보디를 입은 관객은 가상의 공간에서 안무의 일부로 흡수되었고, 그 세계 안으로 들어왔을 때, 더 크게 공감했다.


“여러분들의 움직임으로 가상현실 안에서 펼쳐지는 무용 자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회색 매트 바깥으로 나가지 마시고, 지나치게 달리거나 바닥을 구르는 행동은 하지 마시고 마음껏 즐기세요.” 20분의 시간이 흐른 후, ‘컴퓨터’ 배낭을 짊어지고, 고글에 헤드셋을 쓰고, 손과 발에 트래킹 센서를 부착한 우리들은 회색 매트가 깔린 전시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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