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혜가 본능을 이긴다! 팔라스(Pallas)는 아테나의 다른 이름이다. 아테나는 제우스가 혼자서 낳은 딸이다. 제우스는 첫 배우자였던 메티스가 낳은 자식이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될 것이라는 가이아의 예언 때문에 그녀를 삼켜버린다. 달이 차 심한 두통을 호소한 제우스의 머리를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로 찍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테나는 딸바보 제우스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서양미술사에 아테나는 그다지 아름답거나 에로틱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누드로 그려졌던 적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 중성적이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보티첼리의 ‘팔라스와 켄타우로스’에 등장하는 아테나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아테나에 속한다. 화가가 금세공사 출신답게 섬세하게 묘사한 까닭도 있고, 모델이 당대 최고이자 ‘비너스의 탄생’의 모델이.. 더보기 프리다 칼로의 애완동물 프리다 칼로의 정원은 동물원이다. 그녀는 거미원숭이, 고양이, 개, 앵무새, 독수리, 사슴, 칠면조 등 온갖 동물들을 키웠다. 선천적 자궁기형과 교통사고로 인한 골반 장애로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그녀에게 동물들은 아이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칼로는 멕시코의 유명 화가이자 정치인인 디에고 리베라의 세번째 부인이 되었지만, 그를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었다. 리베라의 여성편력이 화려해질수록 아이에 대한 칼로의 집착은 더욱더 강렬해졌던 것! 이혼 후 칼로의 자화상에는 특별히 원숭이가 자주 등장한다. 원숭이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복잡하고 미묘한 역할을 맡는다.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1940·사진)은 거미원숭이와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고, 가시목걸이에는 죽은 벌새가 매달려 있다. 실제로 거미원숭이.. 더보기 만 레이의 선물, 다다이즘적 농담 만 레이는 화가, 사진가, 설치미술가, 영화감독 등 다방면에 걸친 멀티아티스트다. 거의 100년 전 작가인데도 어떤 예술가보다 훨씬 아방가르드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전방위적인 경력 때문이다. 만 레이의 예술세계는 많은 부분 뒤샹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작품 역시 뒤샹의 ‘병 걸이’와 ‘자전거 바퀴’ 등과 연장선에 있다. 만 레이는 미국으로 이민온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독특한 점은 당대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하는 작가들과는 반대로, 1921년 미국에서 파리로 가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 동안 만 레이는 상류사회에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 저녁에는 ‘베니티 페어’의 편집장이 의뢰한 일을 하고, 다음날 오후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초.. 더보기 꽃그림에 관한 단상 나이가 들면 그림 보는 취향이 달라진다. 예전엔 시선이 가지 않던 소재들이 새삼 좋아진다. 그 중 하나가 꽃그림이다. 자기 안의 꽃이 사라지기 때문인 걸까. 꽃그림은 소위 예술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회피하는 장르다. 그래서인지 꽃그림이 미술사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아주 늦다. 17세기 네덜란드에 와서야 비로소 주인공이 되는데, 그전까지 초상화나 성서필사본 말미에 부수적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정물화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도 18세기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후브라켄에 의해서였다. 꽃을 그리는 이유는 아름답고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형태 때문만은 아니다. 단언하건대 꽃은 시들기 때문에 그리는 거다. 시드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리고, 그림으로나마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을 갖고 싶어서 그리는 것이다. 물론.. 더보기 빚쟁이의 느린 그림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20년 화가 생활에 완성작은 50점이 좀 넘고, 남아있는 것은 30점 정도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전작이 거의 걸작 취급을 받았음은 물론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에 의해 자주 도난의 표적이 되었다. 유명 화가치고 아주 적은 수의 작품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그림을 가끔, 그리고 천천히 그렸기 때문일까? 43세까지 살았으니 어림잡아 1년에 2~3점 정도를 그린 셈. 더불어 베르메르의 그림을 볼 때 느끼는 은밀하며 묘연한 느낌의 실체는 무엇일까? 14명의 자녀가 득실거리는 소란스러운 집 안에서 어떻게 한결같이 고요하고 적막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베르메르의 이런 기질과 성향은 범죄자 집안 출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젊은 시절 칼부.. 더보기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 ‘잠자는 뮤즈’, 브론즈, 1910년, 길이 27㎝, 파리국립근대미술관 소장 오래전 처음 파리에 갔을 때, 내가 처음 만난 예술가는 콩스탕탱 브랑쿠시였다. 파리 온 시내에 축제처럼 나부끼던 황금빛 찬란한 깃발광고와 포스터가 바로 브랑쿠시의 ‘잠자는 뮤즈’였다. 그 황금빛 얼굴은 기묘하게도 음울해 보이는 파리의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너무도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침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브랑쿠시 회고전은 니체가 말한 우연이 주는 귀족적인 만남이었던 것일까! 1876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브랑쿠시는 11세 때 가출해 1904년 파리로 온다. 잠시 로댕의 조각에 심취했던 브랑쿠시에게 어느 날 로댕이 다가온다. 전시를 보고 그의 재능에 탄복해 조수 겸 제자가 될 것을 제안했지만 브랑쿠시는 거절했다. 큰 .. 더보기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무엇인가에 몰입한 여자는 아름답다?! 내 지인은 라스베이거스의 슬롯머신 앞에서 도박에 빠져있던 여자에게 홀딱 반해 연애를 한 적이 있노라고 고백했다. 아마도 그 연애는 몰입의 강도만큼 뜨거웠을 것이다. 물론 짧게 끝났겠지만! 그렇다면 독서에 푹 빠진 여자는 어떨까? 그것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모습일까? 똑똑한 남자들은 안다. 그것이 매혹적인 동시에 얼마나 위험한가를 말이다. 책 읽는 여자는 살롱문화가 성행하던 로코코 시대부터 본격 그려지기 시작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빈번히 그려졌다. 당대 귀족과 부르주아 여성들이 독서를 통해 교양 함양은 물론 지적 허영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살롱이었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사회 속의 여성들에게 애초의 책읽기는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지루하고 비천.. 더보기 보나르의 ‘투명한 여자’ 피카소가 ‘얼치기 화가’라고 불렀던 피에르 보나르! 그는 정말 인상주의 화가에 불과했을까? 이미 세계 유수의 미술관 전시를 통해 명예를 회복한 보나르는 19세기 말 프랑스 부르주아의 단란하고 내밀한 가정생활을 즐겨 다룬 앵티미슴(Intimisme·실내화파) 경향을 대표하는 나비파 일원이다. 완성된 자신의 작품에 몰래 덧칠을 해온 것으로 유명한 완벽주의자 보나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한 여자만을 집요하게 그림 속에 담았다는 것이다. 마치 할 일이라고는 그녀를 훔쳐보는 게 전부인 것처럼 400여점의 작품 속에 담았다. 바로 마르트 드 멜리니(1867~1942). 사람들은 그녀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지도 몰랐다. 보나르조차 그녀의 원래 이름이 ‘마리아 부르쟁’이라는 것을 같이 산 지 32년이 지난 후.. 더보기 마티스의 ‘이유있는 변신’ 법조계에 몸담고 있던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화가가 된 것은 순전히 병 때문이었다. 충수염을 앓고 그 합병증으로 1년간을 쉬어야 했던 마티스. 병상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기분전환용으로 그림을 그렸던 그는 그만 미술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마티스는 자신의 평범한 삶에는 빠져 있는 어떤 강력한 힘을 느꼈노라고 토로했다. 바로 어린아이처럼 자발적인 창조적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 마티스가 말년에 또 한번의 장애를 입고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기관지염을 치료하려고 갔던 프랑스 남부의 니스는 빛과 색채에 대한 그의 풍부한 감수성을 더욱 진화시켰고, 그곳에 오래 머무르게 했다. 니스에서 일흔을 넘긴 마티스는 다시 결장암에 걸렸고, 수술받아 생명은 건졌으나 상처가 감.. 더보기 미켈란젤로의 모세가 뿔났다! 미켈란젤로의 ‘모세’(1513~1516년경, 대리석, 높이 254㎝)상은 교황 율리우스 2세 사망 후 그의 유언에 따라 만든 묘당에 안치될 조상 중 하나였다. 이 조각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황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유대인에 분노하는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분노의 서곡이든 분노를 자제하는 모습이든, 이 조각상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모세의 머리에 솟은 뿔이다. 미켈란젤로는 왜 뿔이 난 모세상을 제작한 것일까? 화가 났다고 뿔을 표현할 정도의 수준은 아닐 테고. 구약성서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 석판을 들고 내려오는 모세를 묘사하고 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다가서자 얼굴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광선(ray)에 해당되는 히브리어가 ‘k.. 더보기 모피로 만든 식사 어느 추운 겨울, 차 한 잔이 생각날 때, 이런 차 대접을 받는다면? 뜨거운 물을 부을 수도, 차를 마실 수도 없지만, 기분만큼은 유쾌해졌을까? 독일 태생의 스위스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유일한 여성 초현실주의자였던 메레 오펜하임. 아카데미의 틀에 박힌 교육에 실증을 느낀 그녀는 갤러리와 카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당대의 카페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창작의 산실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동료들과 토론하고 사색하는 등 풍부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매일 드나드는 카페에서 독한 커피 한 잔은 늘 깊고 짙은 인생과 예술에 대한 상징 같은 것이었을 터! 일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피카소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스물두 살의 애송이인 오펜하임이 대선배인 피카소를 만났을 때 털이 있는 팔찌를 하.. 더보기 렘브란트의 이상한 자화상 렘브란트 ‘아틀리에의 화가’ 1626-28 소박한 실내 구석에 한 남자가 서 있다. 화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왠지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를 대표하는 렘브란트다. 바로크 시대에는 빛과 어둠을 강력하게 구분하는 그림이 대대적으로 등장한다.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은 이 방법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본격적인 자화상의 시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아포리즘을 설파한 데카르트가 고국인 프랑스를 떠나 금서를 출판했던 곳도 17세기의 네덜란드다. 그러니 렘브란트가 당시로선 드물게, 아니 지금 생각해도 희귀한, 100여점의 자화상을 그린 것도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 더보기 샤쿤탈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클로델은 로댕과의 폭풍 같은 사랑을 ‘샤쿤탈라’(1888)에 담았다. ‘샤쿤탈라’는 인도의 전설에 나오는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샤쿤탈라와 그녀의 남자가 마술에 걸려서 헤어지는 불행을 겪다가 니르바나에서 다시 만난다는 내용. 클로델은 자신의 연애를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부드럽게 탐닉하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극적인 순간으로 묘사했다. 클로델은 이 작품을 통해 로댕을 완벽하게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색정광인 사티로스의 모습을 한 남자가 여자에게 제 꼬리를 내어준 장면이다. 알다시피 짐승들은 꼬리를 잡히면 영락없이 주인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만다. 어떤 철학자는 사랑하면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어찌 인간이 소유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사실 로댕은 클로델을 자신의 뮤즈로 사랑.. 더보기 이전 1 ···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