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썸네일형 리스트형 프랑스 건축법 제1조 건물은 단지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구조물이 아니며, 도시는 길과 건물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이자 과거와 현재의 비밀이 담긴 책이며, 그 속에 영위된 오랜 삶들이 층층이 쌓인 드라마이다. 도시의 매력은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의 고유한 기억들이 도시 곳곳의 장소와 건축물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고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장소와 건축은 어떤 매체나 형식을 능가하는 기억의 저장고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미래를 재생산하는 기억 그 자체다. 불과 열흘 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일부가 화재로 사라졌을 때 전 세계인들이 애달파하며 안타까움과 슬픔을 표시한 것은 그 건축에 축적된 인류 역사의 무수한 기억들이 연기와 함께 사라지는 광경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붕과 인상적인 첨탑을.. 더보기 도시의 지하 건축역사상 인류 태고의 주거공간은 동굴이었다. 비바람을 막고 음식을 저장하고 불을 피울 수 있는 동굴 속 공간은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외부세계와 구분되는 정적인 공간이다. 그곳에서 비로소 인류의 문명은 진화하였고 또한 문명의 발전에 상응하여 지하공간은 변화되었다. 기술의 발달로 땅속 바위를 파내는 일의 어려움이 해소된 뒤에도 한동안 지하공간은 소음이 큰 발전소나 기계 시설을 배치하는 장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도시 생활의 다양한 복합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도시의 인구 집중에 따른 가용 토지 부족, 공기오염이나 자외선·방사능·전자파·지구온난화의 문제 등으로 인해 부각된 지하공간의 장점이 자리하고 있다. 지상에 비해 지하공간은 항온·항습성, 방음성, 내진성과 같은 에너지 절약 차원과 지.. 더보기 어려움을 활용하는 법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은 한국 근현대 건축의 최고를 뽑을 때 늘 단골로 선정된다. 창덕궁 옆, 계동 현대 사옥에 바로 붙어 있는, 시간을 뛰어넘은 듯 아담하면서도 고색창연한 이 건축물은 고 김수근 선생(1931~1986)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내외부가 단절 없이 흐르며 풍요로운 한국적인 건축미와 세련된 재료 활용으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사업 난조로 은행의 빚에 몰려 집과 땅이 여러 차례 경매에 부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그 땅에 지금의 공간사옥을 신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당시 나는 안간힘을 다해 지었지요. 주위에서는 나의 어리석음에 조소까지 보냈습니다. 은행에 넘.. 더보기 일점호화주의적 건축 일본 사상가이자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가 1967년 처음 자신의 글에 사용한 일점호화주의(一點豪華主義)란 이것저것 평균화시켜 생각하지 말고 하나에 몰입하자는 가치론이다. 예를 들어 이불 한 장으로 아무 곳에서나 자도 상관없으니 일단은 꿈꾸던 스포츠카부터 사고, 사흘 동안을 빵과 우유 한 병으로 버틴 뒤 나흘째는 미슐랭급 레스토랑에 가는 식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양복이나 주거비용, 식비 등에 일정하게 배분하지 말고 자기 존재 중 쏟아부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한 점을 골라 그곳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특별한 자신만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그에게 있어 지극히 사상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나는 일점호화주의가 사상적인 행위라는 데 공감한다. 균형 잡힌 타성 속에서.. 더보기 건축물의 다섯번째 입면 ‘옥상’ 몇 해 전 뉴욕과 런던 도심 일대 건물 옥상에서 목욕과 영화감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목욕탕 극장(Hot tub cinema) 행사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이 이색 행사는 방치되었던 건물 옥상을 시민에게 개방하여 소형 튜브 욕조를 다수 설치하고 그 안에 누워 밤하늘의 별과 도시 야경을 배경으로 영화와 음료를 즐기는 것이었다. 새로운 문화 플랫폼으로서 옥상이 수용하는 콘텐츠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며,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 또한 한계가 없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20세기 이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종을 이루었던 경사지붕이 역사적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바로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방수법의 대두였다. 전자는 평활하고 거주성이 주어진 옥상이 가능토록, 후자 덕분에 빗물이 머물지 못하는 가파른 물매의 경사지붕이.. 더보기 문화가 흐르는 고가 하부 우리나라 최초의 고가차도는 1968년 만들어진 940m 길이의 아현고가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도로를 공중으로 들어 올린 고가차도는 근대화의 찬란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전국구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환경적으로 집과 거리에 그림자를 만들고 사회적으로 지역을 단절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고가를 허물고 아래 하천을 복원하거나 구조를 보강해 상부에 공원을 만드는 수고를 하고 있다. 이런 급진적 시도들을 전반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능상 철거가 쉽지 않은 고가가 서울에만 180여개에 달한다. 고가 아래 그림자를 드리우는 면적으로 따져보면 여의도의 절반, 축구장 200여개에 맞먹는 규모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고가 하부 공간은 주로 노.. 더보기 건축가의 역할 비가 내리치는 어느 저녁, 현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 사무실에 그가 설계한 위스콘신의 윙스프레드 주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중요한 손님들을 초대한 식사 도중에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져 난감한데, 어떻게 된 거죠?” 라이트는 당황한 기색 없이 “식탁 위에만 빗물이 떨어집니까?”라고 물었다. “그렇소. 음식들 바로 위에!”라는 대답을 들은 라이트는 “그렇다면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식탁을 옮기시고 식사를 계속하십시오”라고 했다. “…?” 건축가의 황당한 처방에도 집주인은 이후 라이트가 설계한 집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빗물이 조금 새는 것쯤이야 시공기술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후 간단히 해결됐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긴 것은 그 집의 공간적 가치였던 것이.. 더보기 20세기 그들의 이상과 21세기 우리의 망상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와 어떠한 기능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간(Universal Space)’. 위대한 근대 건축가로 칭송받는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의 주된 건축적 사상이다. 지난 20세기 건축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 두 가지 생각에 기초했다. 전자는 철저한 기능 분리에 따른 고밀도화, 후자는 특색 없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모습으로 우리의 거주 풍경을 지배하였다. 르코르뷔지에는 1925년 역사 도시 파리 한복판에 거대한 간선도로에 인접하고 빛과 녹음이 풍부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을 상상하고 설계했다. 그는 이를 이상적인 미래 도시로 보았다. 이보다 3년 앞선 1922년 미스 반데어로에는 베를린의 낮은 석조 건물들 사이에 유리로 된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의 초고층 건축물을..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