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기념일

무릇 ‘작품’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이 사진은 모든 것을 한 번에 말해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 속 그 분은 지금 ‘개’가 되어 있다. 배경에 즐비한 버선과 목걸이로 보아 그 분은 여자도 좀 밝힌 듯하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평소 사는 멋을 좀 아는 분이었을 텐데 완전히 망가졌다. 술이 원수라거나 ‘망년회’가 한 해를 망친다는 진부한 교훈을 위한 좋은 사례 같기도 하다. 사진가 난다의 ‘기념일’ 연작은 이렇듯 각종 기념일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와 은유로 가득하다.

 

작가는 기념일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면서, 굳이 직설과 독설을 감추지 않는다. 어버이날의 엄마는 제단에 바쳐진 살찐 ‘돼지’처럼 보이며, 생일을 맞이한 아이는 ‘괴물’처럼 비친다. 사진 속 인물과 상황은 과장된 나머지 결국 보는 우리에게 유쾌함을 넘어 불편함까지를 선사한다. 배경색들은 어둡다 못해 무겁고, 소품이며 등장인물에게서는 어떤 세련됨도 찾을 수 없다. ‘망년회’ 사진에서만 보더라도 여자는 스타킹이 아니라 싸구려 버선으로 풍자되고, 주인공의 파국은 손에 들린 싸구려 양주에서 끝이 난다.

 

 

 

난다, 망년회, 2012

 

작가는 물신주의에 찌들어 각종 기념일을 강박처럼 치르는 외롭고 허무한 군상들을 이런 식으로 까발린다. 그녀의 직설화법은 사회적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각종 의식, 혹은 그 의식을 치름으로써 잘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우리의 속물근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핵심은 그녀의 방법론이다. 날것 같고 원색적인 주제를 다룰 때조차도 작품은 뭔가 고상하고 세련되어야 할 것 같은 예술 엄숙주의를 여지없이 비켜나기 때문이다. 첫눈에는 수월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헷갈리는 게 만드는 고약한 사진은 사회와 예술의 통념에 맞서는 작가의 두둑한 배짱에서 나온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양들  (0) 2014.01.03
달빛 없는 밤  (0) 2013.12.27
안보관광  (0) 2013.12.13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0) 2013.12.06
아무렇지 않은 날  (0) 2013.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