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무궁화 열차 안에서 바라본 겨울 들녘 풍경. 2019. 2. ⓒ임종진
오랜만에 무궁화 열차를 탔다.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이 정겨웠다. 약속된 시간이 빠듯한 탓에 다소 조급한 마음이었는데 널찍한 좌석에 앉는 순간 왠지 편안한 느낌이 쑥 들었다. 가는 시간 동안 겨울 끝자락의 들녘을 눈으로 즐겼다. 지역에 갈 일정이 있으면 예외 없이 고속열차를 타는 일이 잦았다. 시간을 줄이고 줄이는 일상이 늘 되풀이되었고 하루 중 또 다른 일정을 끼워 넣기 바빴다. 그래서일까. 오래되어 낡은 데다 느리기까지 한 무궁화 열차 안에서의 느낌이 생경하면서 반가웠다. 모처럼 얻은 여유를 부리며 잠시 후에 서게 될 ‘자리’를 생각했다. 여러 이유로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어찌 보면 연단에 홀로 서서 불특정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거나 생각과 관점을 나누는 자리. 열차의 흔들림에 기대어 그 ‘자리’를 다시 살펴보고 싶었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나의 얘기는 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강연의 주제나 심리적 헤아림만 잘 전달하면 될 일이라던 관습적인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자칫 일방적으로 떠들다가 오기 마련인 그 자리가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아닐까 돌이켜 보게 된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을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어인 일인지 몸의 자세가 곧추세워지고 마음이 단단해졌다. 시간을 쪼개며 살다가 그 시간의 의미를 다시 품어보는 시간. 무궁화 열차는 여전히 흔들리고 창밖 눈풍경은 그대로였다. 문득 세상은 원래 하얗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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