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 대공분실을 다시 찾아 자신이 고문당했던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고 김태룡씨. 2017.
영화 <1987>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지 않을까. 알려진 바와 같이 이곳은 32년 전 대학생인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사망한 곳이면서, 오래도록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수사를 빙자한 고문으로 극심한 고통이 가해진 비극의 현장이다. 평소 찾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던 이곳은 영화가 ‘뜬’ 후 수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개봉 이전부터 이곳을 찾았던 한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
1979년 삼척고정간첩사건 피해자 고 김태룡씨. 그는 군부정권 시기 수도 없이 조작된 간첩사건의 한 희생양이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받은 실제 당사자다. 간첩이라는 사회적 매장의 그늘 아래 모진 삶을 살아온 그는 2017년 2월 38년 만에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치욕스러운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던 그는 격한 공포와 분노의 감정을 토해 냈었다. 이후 반복적으로 현장을 찾으면서 심리적 트라우마를 덜어내기까지 그가 보여준 자기회복의 과정은 처연하면서도 대단한 용기 그 자체였다. 대법원 무죄판결로 간첩의 오명을 벗어내기도 했다.
온전히 자기 삶의 가치를 회복해가던 그는 지난해 말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또 다른 ‘김태룡’을 위해서라도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고 싶다.
<임종진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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