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걸음을 멈췄다. 홀리듯 누군가에게 시선이 갔다. 양손에 낡은 사진앨범을 든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앨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과 탄식의 숨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세월 가득한 당신의 뺨도 발그레 웃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진앨범 빼곡하게 가족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무에 그리 즐거우셨던 걸까. 내친김에 옆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방긋 웃어댔더니 여든세 해를 살아오셨다는 ‘플로라 링가하르’ 할머니의 얼굴에 반가움이 더해진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847㎞ 떨어진 ‘사말 바시아오’ 마을에 사는 할머니는 2013년 태풍 ‘하이옌’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로이 조성된 이곳에서 홀로 살아가신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모두 나갔고 가끔 찾아온단다. 적적한 삶 속에서 잠시 추억을 되살려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 낡은 사진앨범을 고이 쥐고 있는 당신의 굽은 손마디에 한없이 눈길이 머문다. 더 이상 훼방꾼이 되고 싶지 않아 마당을 벗어나는데 할머니는 다시 앨범 속으로 눈을 묻으며 웃고 계셨다.
세상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출 때가 그렇게 있다. 시선이 고인 그곳에는 어김없이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 별다를 것 없는 일이건만 가슴이 뜨끈해지는 특별한 순간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누군가의 ‘오늘 하루’는 평범하지만 늘 특별하다.
<임종진 |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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