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2002. ⓒ김영경
2002년은 월드컵축구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덩달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한밤중에도 동네가 들썩들썩했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모두 풀이 죽어 있을 때 축구 경기 하나가 온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우리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에도 좌우가 갈라서는 오늘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김영경은 저물어가는 대도시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거대한 도시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의 프레임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정직한 기록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작가 특유의 색감에 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사진에 색깔로써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필터나 컴퓨터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황량한 도시의 감각을 그녀 특유의 색감으로 살리고 있다.
월드컵 열기는 사라지고 가을이 왔다. 함성이 사라진 도시의 한 종합경기장은 텅 비어 있다. 교교한 정적이 흐르고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 붉은 아스콘 바닥은 빨간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것은 아픔도 슬픔도 아닌 그저 낯선 시간의 풍경이다. 경기장 옆 아파트 벽면의 그림에서 황홀했던 시간의 흔적을 잠시 엿볼 수 있다.
나라 안팎을 돌아보니 온통 암울한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오늘의 고통도 시간과 함께 도도한 세월의 강물이 되어 흘러가리라 믿는다.
<김지연 |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