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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무연고지

빈방에 서다 연작, 2015. ⓒ김지연


주소가 사라진 집과 골목과 동네의 풍경이 도시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거쳐간 사람들은 연고지를 잃게 되고 이곳은 유령의 공간이 된다. 치솟은 빌딩의 그림자가 되어 흉터처럼 남아 있는 곳. 도시는 날로 발전하는 반면에 폐허의 공간은 늘어나고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버린 채 빈집이 그대로 방치된 동네에 들어서면 공포와 아픔을 함께 느낀다. 


사람들은 떠났어도 왜 그들의 체취는 방 구석구석의 먼지와 때로 남아서 탄식처럼 다가오는가. 한때는 ‘보금자리’라고 여겨 동고동락했던 침실과 주방은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공간이 되어 사람을 배척하고 있다. 더러는 새 아파트로 떠나고 가난한 자와 늙은이들만 뭉그적거리다가 퇴출당한 곳. 그리하여 빈집은 번지수가 사라지고 ‘연고’가 끊기는 곳이 되고 만다. 


고급아파트가 늘어나고 서울 어느 지역의 집 한 채는 수십억원에 거래된다는 뉴스가 경제면을 장식하는데, 이런 빈집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빈집에 들어설 때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이 느껴져서 그들이 새겨두고 간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와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을 떠올린다. 


나는 단순히 빈집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두고 간 가족사와 그들을 둘러싼 시대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다. 희망이 없는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곳은 없다. 어쩌면 인간이 먼저 절망하고 있을 뿐이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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