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베클리 테페 조각, 모아이, 돌하르방. (왼쪽부터)
창세기의 에덴동산이 실제로 존재할까. 굳이 찾는다면 가장 유력한 곳 중 하나가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로 꼽히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상류다. 이곳에 인류 최초의 신전이라 불리는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가 있다. 해발 760m 언덕 정상에 묻혀 있던 괴베클리 테페는 1963년 미국과 터키의 공동조사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유적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연대(年代)다. 괴베클리 테페는 약 1만5000년 전부터 기원전 8000년까지 유지되었는데 이 시기 인류는 수렵채집에서 농경문명으로 전환되었다.
유적에서 야생동물의 뼈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본래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을 것이다. 유적 곳곳에 약 200개의 T자형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큰 것은 높이가 거의 6m다. 돌기둥을 세우기 위해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괴베클리 테페는 여러 부족이 공유하는 신전이거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기둥에는 사자, 독수리, 전갈 등 동물들이 새겨져 있는데 신격화된 대상일 것이다.
유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 모양의 돌기둥이다. 반인반수가 아닌 온전한 사람을 조각했다. 사람 조각은 손을 배꼽 쪽으로 가지런히 모아 예의를 갖춘 느낌이다. 요즘도 어려운 자리에서 사람들은 배꼽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배꼽 손 형식은 앞으로 등장하는 사람 조각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이 된다. ‘프로토타입’이란 디자인 용어로 대량생산을 위한 최초의 시안이다.
‘배꼽 손 사람’ 돌조각은 이후 다른 문명에서 종종 발견된다. 이스트섬의 ‘모아이’가 그렇다. 제주도 ‘돌하르방’도 비슷하다. 1만년 전 조각과 태평양 한가운데와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있는 섬의 조각이 모두 ‘배꼽 손’ 형식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프로토타입의 영향일까. 이 조각들의 형식이 비슷하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다. 분명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숭고한 대상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 자세가 아닐까.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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