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빈, 분수의 꼭짓점, 하늘 그리고 기타 등등, 2019, 스티로폼, 레진, 핸디코트, 안료, 유화, 90×45×210㎝ 두산갤러리 제공
‘분수’는 물의 판타지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을 숙명으로 알았던 물이 모처럼 하늘로 솟아오른다. 분수의 힘에 의지해 시원하게 하늘을 가르지만, 중력과 속도의 영향을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정점에 다다르면 이내 땅으로 쏟아져 내린다. 하늘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는 물줄기를 보며 권현빈은 물방울이 가장 높이 치솟아 ‘하늘을 톡톡 치는’ 순간에 시선을 멈췄다. 물방울이 분수의 꼭짓점에 닿는 순간은 너무 짧다.
정점은 한계점의 다른 말이다. 정점에 도달하면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물줄기는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법칙을 전한다. 간혹 어떤 물방울은 변수를 만나 정해진 동선에서 벗어나거나, 조금 더 높은 하늘을 찍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물방울도 결국은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분수의 포물선 위로 서로 다른 물방울이 쉼없이 교체되고 있으니, 모든 물줄기는 다 다르다. 물줄기들을 지켜보며 작가는 거의 비슷해 차이를 읽어낼 수 없는 장면들, 그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는 감각들을 떠올려 보았다. 유사함을 같음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감각은 세상의 미묘한 차이가 가져오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다. 집중해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는 체적의 98%가 공기고 단지 2%만이 수지로 이루어진 스티로폼에 분수가 포물선을 그리던 어느 날의 풍경을 담았다. 하얀 스티로폼 위로 포물선이 지나가고, 하늘이 비치고, 구름이 파고들었다. 높이 솟구쳤다 떨어져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물방울이, 거품으로 부풀려 물보다 가벼운 스티로폼에 흔적을 남겼다. 좀처럼 썩지 않아 자연의 생리를 거스르는 스티로폼이 물과, 하늘과, 바람의 흔적을 기억하니,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은 기억 가능한 세상, 예측 가능한 세상 밖으로 천천히 뻗어나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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