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즐라 카메리치 & 안리 살라, 1395일의 흑백, 2011, 각 65분, 43분 46초 ⓒ밀로미르 코바체비츠 스트라슈니
색깔 있는 옷은 입지 말 것. 화려한 색은 건물 꼭대기 곳곳에 몸을 숨긴 채 거리로 총구를 겨눈 저격수에게 손쉬운 타깃이다. 일상을 사는 시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를 걷는다. 어느 날은 3777발의 포탄이 시내로 떨어졌다. 건물 아래 골목길에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다가 한 사람씩 거리를 가로지르며 목적지로 달려간다. 그렇게 그들,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시민들은 매 순간 죽음을 각오하는, 길 위에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1395일을 살았다.
이슬람교인 보스니아계,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가톨릭 신자인 크로아티아계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보스니아가 갈등에 휩싸인 것은 서로가 다른 삶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세르비아계는 그들과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 다른 민족을 ‘청소’하기로 한다. 그들은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한 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유엔에 따르면 사라예보에서는 1992년 4월5일부터 1996년 2월29일 사이, 시민이 43만5000명에서 30만명으로 줄어들었고, 1만명이 살해되고, 5만6000명 이상이 다쳤다. 학교, 도서관 같은 도시의 공공건물, 기반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집들도 한없이 파괴되었다.
참담한 시절은 어떻게든 마무리되었으나 거리는, 도시는 그 참혹함을 기억했다. 예술이 상처의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어떤 태도에서 출발해야 할까.
보스니아 출신의 작가 세즐라 카메리치와 알바니아 출신 작가 안리 살라는 이 역사를 각자의 관점으로 카메라에 담아 두 편의 영상을 제작했다. 골목에 몸을 숨긴 채, 거리로 달려 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은 어쩐지 담담하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니까. 다음 골목에 안전히 도착한 그들은 가쁜 숨을 내쉰다. 오늘도 살았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계속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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