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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오래된 아파트라 잠을 자려 누우면 온갖 소리가 들려옵니다. 샤워하는 소리, 빨래하는 소리, 싸우는 소리, 애 우는 소리, 티브이 소리, 아래위 좌우 모든 공간에서 이웃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렇게 누워 이웃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수많은 네모난 벌집들 중 한 칸에서 잠들고 있는 애벌레 같다고 느껴집니다. 수많은 이웃들의 소음도 처음에는 신경이 쓰여서 잠을 잘 수 없었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어 그런 소리들이 백색소음이 되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아파트와 수많은 방의 이웃사촌들과 함께 오늘도 편안히 잠을 청해 봅니다. 더보기
예술과 똥 역사를 통틀어 예술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없다. 오히려 당대 권력자를 비롯해 부유한 상인들, 그림을 주문했던 역대 숱한 이들의 품 안에서 안위했다.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들 또한 그 대가를 취하며 창작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자본에 종속된 예술가로 해석하는 건 무리이다. 그들 곁에는 구스타브 카유보트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페기 구겐하임 같은 후원자들이 포진해 있었으며, 이 안목 높은 예술 우군들은 브뤼야스가 쿠르베에게 그러했듯 ‘예술가는 존경받을 만한 권리를 지녔다’고 봤다. 작가들도 자본의 과잉 간섭, 자본으로 인한 예술의 자율성 침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현명하게 이해했다. 쾌감의 대상이자 우리를 더럽히는 배설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똥과 돈을 등치시킨 피.. 더보기
알고 있는 세계 너머 새해,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4호’가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착륙하고, 미국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소행성 ‘베누’ 상공에 도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천체의 궤도 진입에 성공할 때, 미국 우주선 뉴호라이즌스호는 태양계의 경계에 있는 카이퍼 벨트의 소행성 2014 MU69, ‘울티마 툴레’에 접근했다. 행성과 위성의 중력을 이용해 연료를 아끼는 우주항해술 ‘중력도움(flyby)’ 비행을 시도하며 눈사람 모양의 울티마 툴레 사진을 찍어 보낸 뉴호라이즌스호는 역사상 태양계의 가장 끝에서 이루어지는 첫 중력도움 비행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태양계 형성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힌트를 담고 있다는 이 소행성은, 알려진 세상의 경계에 있는 땅을 일컫던 ‘울티마 툴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더보기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 잠시 걸음을 멈췄다. 홀리듯 누군가에게 시선이 갔다. 양손에 낡은 사진앨범을 든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앨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과 탄식의 숨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세월 가득한 당신의 뺨도 발그레 웃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진앨범 빼곡하게 가족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무에 그리 즐거우셨던 걸까. 내친김에 옆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방긋 웃어댔더니 여든세 해를 살아오셨다는 ‘플로라 링가하르’ 할머니의 얼굴에 반가움이 더해진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847㎞ 떨어진 ‘사말 바시아오’ 마을에 사는 할머니는 2013년 태풍 ‘하이옌’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로이 조성된 이곳에서 홀로 살아가신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모두 나갔고 가끔 찾아온단.. 더보기
생각의 그림 머릿속 생각들이 그림으로 나타납니다. 생각이 많을 때는 머릿속 그림들이 넘쳐나 뿜어집니다. 사랑, 우주, 책, 고민, 바다, 음식, 친구, 여행, 모험, 로봇, 괴물, 게임 등등……. 그러나 아무 생각이 없을 때 머릿속에는 텅 빈 하얀 공간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은 생각이 넘쳐날 때보다 더 저를 힘들게 합니다. 머리를 비워야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하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는 것보단, 생각이 많은 것이 저에겐 더 필요합니다. 더보기
설계공모전의 ‘웃픈’ 추억 ‘국회의사당-서울시청사-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독일 국회의사당-파리 퐁피두센터-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차이점으로 전자는 20세기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 후자는 20세기 인류문화유산. 공통점은 모두 설계 공모전을 통해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한 해 세금을 들여 짓는 공공건축물들의 총공사비는 약 30조원에 육박한다. 상당수가 설계 공모를 통하고 있지만 명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웃픈’ 역사적 사건을 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1931년 스탈린은 레닌 사망 후 입지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에트 의회의 건축을 결정하고 설계 공모에 착수한다.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를 필두로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획기적인 제안들이 쏟아졌다. 두 번에 걸친 공모 과정은 불투명했고 당선작으로 무명에 가까운 자국 건축가.. 더보기
서커스단의 리마 “나의 이름은 리마/ 계단 위를 걷고/ 링을 뛰어넘고/ 죽은 척을 해도/ 알고 싶은 것은/ 이 안에 있지 않아” ‘쇼타임’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철창문이 열리자, 얼룩말 리마는 빛나는 서커스 장내를 달리며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왈츠 박자에 맞춰 관중들이 들썩이고, 피에로가 흥을 돋우는 사이, 리마의 묘기는 서커스장의 울타리를 넘고, 조련사를 뿌리치고, 도로를 질주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너도 알잖아/ 갇혀있는 그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는걸” 지난 12월17일, 인간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의 화려함을 만끽하는 사이,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얼룩말 4마리가 크리스마스 서커스에서 탈출해 도심을 달렸다. 엘베 강가를 그림처럼 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 얼룩말의 자유는 짧았.. 더보기
총천연색 우주 끝을 알 수 없는 검은색 우주공간이 총천연색이면 어떨까요? 초록색 우주공간에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별들이 떠있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우주선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알록달록 예쁜 우주. 무섭고 징그러운 외계인이 아닌 귀엽고 예쁜 외계인들이 가득한 우주. 모든 것이 비밀인 것 같은 검은색 속에 숨어있는 우주가 아닌 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 총천연색 그림책 같은 우주였다면, 우리 인간들은 좀 더 빨리 우주로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더보기
나만 마음껏 엄지와 검지 사이에 놓인 거울은 매우 작다. 손바닥보다 작은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려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 같다. 더욱이 손에 주름이 가득하다면, 손목에 링거를 꽂고 있다면 그 좁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조준하는 것 자체가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링거를 꽂은 손목을 움직여 거울을 잡고 얼굴을 매만지는 일은 특별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또 턱과 목의 주름에 비해 지나치게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노인이라도 환자라도 포기할 수 없는 카랑카랑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안초롱 작가의 할머니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입원한 할머니의 병실에서 촬영했다. 작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진 속 할머니는 암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머리를 감고, 환자복도 갈아입고, 화장까지 하셨다고 한다. 도.. 더보기
더 나은 세상 “열기에 반응하는 잉크를 사용했어요. 신체로부터 나온 열기가 모이면 신체 아래 숨은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2018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의 현대커미션 작가로 선정된 타니아 브루게라가 터빈홀에 설치한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바닥에 눕거나, 손을 댄다. 그들의 온기가 바닥에 닿으면 비로소 형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의 몸이 닿은 부분의 형상으로 보일 뿐이다. 바닥 아래 숨겨진 내용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필요하다. 내 몸 하나로는 전체를 드러낼 수 없다. 작가는 사람들의 온기를 모아야만 전체가 보이는 이 작품이 우리가 살아 있는 시간을 은유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동의하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한다고 해도.. 더보기
삐뚤어진 눈 동그란 나무쟁반을 보니 갑자기 동그랗고 예쁜 얼굴을 그리고 싶어져서 후다닥 급하게 그렸습니다. 대충 다 그리고 난 뒤 다시 보니 이런, 눈이 삐뚤어져 있습니다. 완성하기 전에 한 번 뒤에서 그림 전체를 보았어야 했는데, 너무 작은 부분만 신경 써 그리다가 삐뚤어진 얼굴이 되었습니다. 눈이 삐뚤어져서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대로 봐줄 만한 거 같기도 합니다. 거울 속에 비친 저의 얼굴을 살펴봅니다. 자세히 보니 저의 눈도 삐뚤어져 있습니다. 삐뚤어져 있지만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똑같은 것은 없다고 합니다. 조금은 다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면서 그렇게 맞춰가는 듯합니다. 더보기
고문과 테니스 사진 속 높은 건물의 5층을 보자. 유난히 창문이 좁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예 창문을 없앤 것도 아니고, 겨우 팔 하나 들어갈 좁은 창문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건물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통했던 치안본부, 5층은 고문실로 사용됐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을 거둔 509호에도, 김근태 전 의원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던 515호에도 저 좁은 창문으로 한 줌의 햇빛이 들어왔다. 사람이 사람에게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해도, 햇빛과 하늘은 변함없이 반짝였을 것이다. 아예 창문을 없애 세상과 단절되는 것보다 감질나게 보이는 세상에 더 모욕적인 고립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5층에는 창문만 작은 것이 아니다. 방마다 욕조도 120㎝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당시 백형조 치안본부 대공5차장은 “피의자가 피곤.. 더보기
망월사 설경 다사다난했던 무술년도 저물어간다. 한 해의 끝자락이자 지난 3년간 격주로 게재하였던 경향신문의 원고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1년 반 정도의 기간에는 서울을, 그리고 이후 1년 반가량을 경기도 북부와 서부 지역을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의정부 지역에 대한 소개로 3년 원고의 대미를 마치게 되었다. 겨울 시즌에 걸맞게 의정부에서 설경이 아름다운 곳을 찾았다. 자료검색을 하니 도봉산의 주봉들을 배경으로 한 망월사 설경 사진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설경 그림을 그려놓고 현장의 느낌을 담기 위해 지난 토요일 오후 답사에 나섰다. 의정부 초입에 망월사역이 있어 의정부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망월사는 익숙한 이름이다. 가까이 있다 해도 지금껏 찾아본 일이 없었는데 원고 핑계로 발길을 내밀었다. 망월사역 바로 뒤로 .. 더보기
얼마나 무거운가 바야흐로 기부의 계절이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후원자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로 시작하는 메일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보다 조금만 후원금을 늘려준다면, 더 많은 이들이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부독려의 문구가 무겁다. 12월 초,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는 그의 작품 한 점을 난민 구호 단체 ‘사랑을 선택하자’에 기부했다. 난민들이 배에 타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원격조종이 가능한 일종의 장난감이다. 그가 2015년에 약 한 달간 운영한 ‘음울한 테마파크 디즈멀랜드’에 설치했던 이 작품은, 관객이 동전을 넣으면 비로소 ‘지중해 보트 연못’ 안에서 움직였다. 폐관 직후 디즈멀랜드의 자재들을 난민 수용소로 보냈던 그는, ‘꿈의 보트’라는 푯말이 붙은 이 작품을 난민을 돕기 위한 후원금 마련 행사.. 더보기
꿈속에서 무서운 꿈에 잠이 깹니다. 책과 만화 그리고 영화에서 보았던 무서운 괴물들이 더 크고 강력해져서 꿈속에 나타납니다. 상상 속의 괴물들이 내가 알고 있는 공간에 나타나니 더더욱 무서워집니다. 괴물들한테 쫓기다가 잡아먹힐 순간에 잠이 깹니다. 그러곤 무서운 꿈 꿨다며, 눈 비비며 걸어와 아빠 손 꼭 잡고 다시 잠이 듭니다. 씩씩한 딸은 다시 꿈속에서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지 연신 아빠를 발로 차며 잠 못 들게 합니다. 더보기
뮤트 “이 작품은 실패다.” 차이콥스키는 1888년 5번 교향곡의 초연을 마친 후, 자신의 음악에 대해 스스로 혹평을 던졌다. 그 자신도 느낀 것처럼, 이 곡은 “조악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그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나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중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이 곡을 사랑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대포의 포격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아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들을 위로한 곡으로 더 유명해졌다. 홍콩 출신으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작가 삼손영은 독일 쾰른의 플로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전곡 연주를 요청했다. 이때 그가 덧붙인 하나의 조건은 연주는 하되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 더보기
남은 것은 사랑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돈이 없으면 사랑도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뜨거운 사랑을 해도 돈이 없으면 시간만 보내다가 사랑은 식어버립니다. 돈이 없으니 사랑이 없어지고, 결혼을 못하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출산율은 점점 최악으로 내려가고 사회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젊음과 노력과 사랑만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더보기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그런 밤들이 있다. 라디오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의 목소리가 연이어 흐르는 밤. 짙은 어둠 속에 퍼지는 죽은 자의 노래가 산 자의 입으로 옮아가는 밤. 입술이 더듬은 노랫말에서 오래된 이미지가 쏟아지는 밤. 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330장의 사진과 67페이지의 문장 그리고 60분의 음악으로 구성된 김주원의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은 죽은 자와 산 자, 말과 이미지, 기억과 과거가 끝말잇기처럼 이어지고 ‘수신되지 않는 신호’처럼 끊어진다. 가령, 첫 조카의 생일축하를 위해 풍선을 매달던 아버지가 다음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조카의 생일을 기념하는 사진은 돌연 죽음을 환기하는 이미지가 된다. 아버지가 숨을 거둔 후에도 풍선에는 그의 숨이 남았을 것이다. 삶과 .. 더보기
의정부제일교회 포천에서 축석고개를 넘어 의정부로 넘어가다 보면 대로변 우측으로 현대식 교회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몇 가지 형태의 박스들이 중앙에 삽입된 원추형의 매스와 어우러진 절제되고 세련된 감각이 발길을 멈춰 세운다. 도로변에서 바라보이는 원추형 매스에 ‘의정부제일교회’라 씌어 있는 이 교회는 설립 72주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2009년 지금의 자리로 신축 이전하여 자리 잡고 있다. 신축 당시 교회 구성원들은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 등 미래의 비전을 품은 교회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교회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몇몇 건축가들을 초청해 설계안을 모집하고 선정하는 이른바 지명현상 설계경기를 실시했다. 최종안으로 올라 온 두 개의 안에 대하여 전 교인들이 참여하는 투표를 거쳐 결국 이충기 서울시.. 더보기
타협하지 않는 자 2003년 어느 날, 함부르크시 관계자가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오래된 코코아 보관 창고 사진을 들고 스위스의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와 드 뫼롱을 찾았다. 사진 속 벽돌 건물을 들여다보던 그들은 이내 건물 위에 파도처럼 바람처럼 일렁이는 드로잉을 하나 얹었다. 그 드로잉은 14년 후에 함부르크의 랜드마크 엘브필하모니로 탄생한다. 새로운 랜드마크의 등장은 순조롭지 않았다. 2010년으로 약속한 개관은 2017년에야 이루어졌고, 1억8600만유로로 책정했던 건축비는 7억8900만유로까지 늘어났다. 공사가 중단되고, 책임자가 교체되고, 공사기간이 늘어지고, 예산이 증가할 때마다 정치적 공방이 줄을 이었고, 시민사회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콘서트홀은 그저 “상류계층의 퇴폐적 기념비” 아니냐는 비판, 다른 프로젝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