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신의 껍데기들
어떤 연유로 신내림을 받고, 또 어쩌다 신과 소원해지는지 무당마다 다른 사연이 넘쳐나겠지만, 신기를 잃은 무당은 그간 당집에 애지중지 모셨던 ‘신상’을 내다 버린단다. 관상학에서 말하는 호상, 당대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얼굴을 담아 만들었다는 불상 등 세상의 좋다는 형상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짜깁기해 자신의 신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굿을 해 신령을 모셨을 테지만, 끝이 오면 의미와 정성, 시간을 쏟아부었던 형상들과 가차 없이 이별한다. 그들이 버린 신의 껍데기가 현대인들의 그림자에 주목해온 작가 김형관의 손에 들어왔다. 영험함을 상실한 최영 장군, 산신, 벅수동자, 선재동자 상은 2012년 그의 개인전 전시장에 등장한 이후 창고에 잠들어 있다가 2018년 ‘경기천년 도큐페스타’의 전시, ‘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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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
1984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박이소(당시 이름 박모)는 교회 자선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인 가정의 추수감사절 만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신께 감사하며 다른 인종, 타 문화인에게까지 ‘은혜’를 베푸는 이날, 미국인들은 칠면조, 옥수수, 으깬 감자, 호박파이, 크랜베리 소스를 비롯하여 새 곡물로 만든 푸짐한 음식을 저녁식탁에 올리고, 미소로 동양인을 맞이했을 거다. 요새는 인간의 ‘은혜로움’이 더 멀리 뻗어나간 덕분에, ‘사면식’을 치른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동물원이나 농장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트럼프도 이 사면식에 동참했다 하니, 칠면조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은혜의 상징이다. 그날 이후 박모는 사흘간 밥을 굶었다.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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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 진부하게
때로는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피로도가 고점을 찍는 순간, 회의감, 환멸감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한 설득의 과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된다. 기록매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당대의 정서와 호흡하지 못한다고, 잊을 만하면 끌려나와 사망선고를 당하는 회화는, 당위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사실은, 회화 매체로 작업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붓을 들고 싶은 자기 자신이었다. 예술가가 되기 전 건축을 전공한 빌헬름 사스날은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그는 1972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불어닥친 ‘격변’의 시대에 20대를 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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