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메시지, 메시지는 죽음
7분간, 우리 눈앞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들의 삶이 흐른다. 작가 아서 자파 혹은 어떤 개인들이 기록하거나 매스컴이 포착한 영상 안에는 마틴 루서 킹, 마이클 조던, 마이클 잭슨처럼 명성 높은 흑인, 인권을 보장받고자 거리로 나선 흑인, 영웅이 된 흑인, 체포당하는 흑인, 공격당하는 흑인, 춤추고 노래하는 흑인, 결혼하는 흑인, 대통령이 된 흑인이 있다. 그들의 일상은 행복과 분노의 감정을 넘나들고 핍박과 혐오를 거부하는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춤과 음악이 충만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아우른다. “음악은 우리 흑인이 완전히 자신을 실현시킨 공간입니다.” 흑인 예술가 아서 자파는 흑인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가 복음성가에 영감을 받아 만든 힙합 트랙 ‘울트라이트 빔’의 속도 위로 이 순간들의 클립을 올려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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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퍼포머
“뚜껑이 열렸어!” 나는 노란 스커트에 하얀 스니커즈를 신은 흑인 여성이었고, 다른 누구는 또 다른 누가 되어 어둑한 동굴에 모여 있던 그 순간, 동굴이 서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려졌다. 우리는 5m의 거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광활한 대지 위에 있다. “거인들과 하이파이브 하고 싶은데 눈에 초점이 없는 것 같아.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어.” 거인들의 움직임을 좇느라 분주한 우리의 눈은 어디인지 특정할 수 없는, 사막 같은, 대지 같은, 아니면 다른 행성일지도 모를 공간을 두리번거린다. “코로 숨을 쉬니까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광활한 대지인데도 밖으로 나갈 수 없군.” 거인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사막에서 산으로, 도시공원으로, 마티스, 베이컨, 이브 클랭의 작품이 걸려 있는 실내로 이동시킨다. 난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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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외롭게 죽고 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든 그저 숨이 끊겼든, 당신이 외롭게 죽고 난 후, 그 죽음을 알아차린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전기료, 수도료가 연체되고, 끊기고, 기다리다 못한 업체가 당신의 방문을 두드리면, 그때서야 당신의 죽음은 문밖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비밀스러웠던 시간만큼 넘쳐나는 구더기가 당신 곁에서 토실토실 자라고 있을 것이다. 체격이 좋은 당신이라면, 몸에서 흘러나온 기름 ‘쩐내’로 방을 채울 것이다. 겨울이라면,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톡 쏠 것이다. 미술관의 도슨트가 미술을 쉽게 설명해주는 것처럼, 세상 속 난해한 이야기를 조금은 다가가기 쉽게 보여주고 싶은 다큐멘터리 작가팀 ‘더 도슨트’는 그 고독한 죽음의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부’의 작업현장을 영상에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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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랑의 여름
구치의 더블G 로고가 촘촘히 박힌 구치컬렉션으로 치장한 디제이 비너스엑스는 우창의 카메라 앞에서 말한다. “다양성이란 말, 난 별로예요. 계급, 인종…… 다양성이 있지도 않은 단일성의 반대말처럼 쓰이잖아요.” 1988년, 애시드 하우스 뮤직, 레이브 파티가 퍼져나가면서 젊은 클러버들은 ‘해방’, ‘협력’, ‘기성 체제의 거부’라는 선물을 받았다. 그들은 익숙했던 세계와 쿨하게 결별하고, ‘전에 없던 세계’를 행복하게 만날 수 있었던 1988년 무렵의 시절을 ‘두번째 사랑의 여름’이라고 불렀다. 그 여름이 지난 후, 춤추는 방식, 장소, 관계 그 모든 것이 바뀌었고 확실해 보였던 것들도 사라졌다. ‘기성’의 땅 위에 살던 이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변화의 시간이 흘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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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4, 다시’ 이윤정
무대 위에 선 네 사람은 움직인다. 서거나, 걷거나, 돌거나, 달린다. 안고, 눕고, 구르고, 기댄다. 그들의 동작은 서로의 움직임에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영향을 미친다. 하나가 셋에게, 둘이 둘에게, 셋이 하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서로의 동작을 모방하거나 외면하면서 힘의 구도를 드러낸다. 움직임이 지나고 난 자리의 공기는 여전히 흔들리고, 그 파장은 객석에 앉아 있는 몸들에게로 가닿는다. 몸 안에서 살고 있는 한, 그 사이로 얽혀드는 관계와 몸 밖의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어렵다. 이윤정은 몸의 안팎을 흐르는 힘의 구조 안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면서 걸어가는 인생을 선택했다. 그의 몸은 균형을 찾는 찰나의 순간이 전하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안무가 이윤정을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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