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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에 해당되는 글 137건

  1. 2019.04.01 폭력과 거짓의 기념비
  2. 2019.03.25 아말감
  3. 2019.03.11 화이트앨범을 삽니다
  4. 2019.03.04 불면증의 무게
  5. 2019.02.25 카를 라거펠트
  6. 2019.02.18 미래를 위한 그림
  7. 2019.02.11 허니문
  8. 2019.02.07 시계 지우는 사람
  9. 2019.01.28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
  10. 2019.01.21 관용의 배
  11. 2019.01.14 뮤지엄 리그
  12. 2019.01.07 알고 있는 세계 너머
  13. 2018.12.31 서커스단의 리마
  14. 2018.12.26 더 나은 세상
  15. 2018.12.17 얼마나 무거운가
  16. 2018.12.10 뮤트
  17. 2018.12.03 타협하지 않는 자
  18. 2018.11.26 여섯 개의 기도문
  19. 2018.11.19 지금
  20. 2018.11.16 .jpg

아델 압데세메드가 홍콩 탕컨템포러리 아트 개인전에 펼쳐놓은 장면은 핏빛이다. 전시장 가운데 놓인 조각을 둘러싼 붉은 캔버스는 피를 연상시키고,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자극적이다. 아직 제대로 말라붙지 않은 붉은 덩어리가 끈끈하게 흘러내려 바닥까지 떨어진다.

 

알제리 출신인 아델 압데세메드는 내전으로 폭력이 확산되던 1994년 모국을 떠났다. 알제리 정부는 민간인을 상대로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다른 계산을 머리에 담고 전쟁에 가담한 외부자들로 인해 내전은 점점 ‘더러운 전쟁’이 되었다. 극단주의자들의 한계 없는 폭력과 공동체의 울타리 안으로 숨어든 인간의 야만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던 그는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난폭한 이미지를 내세워,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작가가 되었다.

 

아델 압데세메드, 해쇄(Unlock), 2018, 탕컨템포러리 아트 설치 장면.

 

그가 선택한 ‘붉은색’은 영화 현장에서 ‘피’의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물감이다. 그는 캔버스 전면에 연필로 촘촘한 그리드를 그려 넣은 뒤 ‘붉은 피’를 휘저어 바르고 찍었다. ‘금기의 색’이라고 이름 붙인 붉은 캔버스 작업은 뉴스에 넘쳐나는 전쟁과 죽음, 국경을 넘어 매일 퍼져나가는 폭력이 쏟아내는 피의 역사와 연결된다. 그러나 뉴스가 전달하는 정보에는 가짜와 진짜가 모호하게 뒤섞여 있으며, 설사 어떤 정보가 ‘가짜’로 판명되더라도 이미 그 가짜는 현실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현대인이 취하는 정보는 끊임없이 암호화되고, 다시 해킹당하기를 반복하면서 모호함 속으로 정체를 숨긴다고 보았다.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 안에서 인간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작가는 온갖 시각적 방법을 동원해 관객의 감각을 계속 자극한다. 이 메시지를 위해 영화산업의 속성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 그는 드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항공촬영의 핵심이었던 헬리콥터 역시 전시장으로 불러들인다. 짓이겨져 형태를 상실하고 추상조각의 옷을 입은 헬리콥터는 이제, 유혈의 풍경 안에 폭력과 거짓의 기념비처럼 서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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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동부 메인주 핍스버그를 흐르는 뉴 메도스 강 입구에는 미국 원주민들이 1000년 전부터 모여 살았던 가난한 어촌 마을 말라가 섬이 있다. 1794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벤자민 달링이 말라가 섬 인근의 ‘홀스 섬’을 구입하면서 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흑인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혼혈인구가 증가했다. 그들은 1860년대부터 말라가 섬에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혼혈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티어스터 게이츠, Island Modernity Institute and Department of Tourism, 2019, 팔레 드 도쿄 설치 장면.


‘흑인 미국인’인 티어스터 게이츠는 2017년 메인주 콜비 칼리지에 머물면서 이 공동체가 정부와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해체된 역사를 접했다. 1900년대 초,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미국으로 모여 들자, 미국의 기득권자인 앵글로색슨은 그들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의 잣대를 들이대며 ‘외부인’ 배척의 당위성을 획득했다. 앵글로색슨족과 다른 문화와 관습을 가진 이들로 인해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는 논리는 백인과 다른 인종 간의 혼혈을 반대해온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언론은 흑인과의 혼혈인들이 살고 있던 말라가 섬을 향해 인종차별의 활을 쏘았다. 말라가 주민을 ‘특이한 사람들의 이상한 공동체’라고 조롱하면서 이들을 배척하는 논조를 확산시켰다. 말라가 섬을 구입한 메인주는 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먼저 기존의 지역공동체를 해체해야 한다며 1912년, 45명의 주민을 강제로 내쫓았다.


게이츠는 말라가 섬의 역사를 다룬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전시 제목으로 ‘아말감’을 선택했다. 수은과 하나 이상의 다른 금속으로 이루어진 합금인 아말감은 ‘혼혈’과 ‘인종차별주의’를 포괄하는 상징어로 쓰였다. 다른 지역에서 온 나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은 그 자체로 ‘아말감’이다. 그는 섬을 둘러싸고 벌어진 식민의 역사를 매체, 재료를 섞어 표현하면서, 혼합이 탄생시킨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다룬다. 이는 ‘결국 순수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에 닿는다. 관광의 메카를 꿈꾸었던 말라가 섬은 현재 무인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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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러더퍼드 창의 ‘상점’에는 ‘화이트앨범을 삽니다’라는 네온사인 간판이 걸려 있다. 한쪽 벽에는 흰 레코드판을 마치 빈 캔버스처럼 진열해 두었고, 테이블 위에는 시리얼 번호 순서대로 정리해 넣은 박스를 올렸다. 관객은 앨범을 넘겨보고, 공간 한쪽에 마련된 턴테이블에서 음악도 들을 수 있지만, ‘화이트앨범’이라고 불리는 이 레코드판을 구매할 수는 없다. 혹시 그들이 이와 동일한 음반을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러더퍼드 창, 화이트앨범을 삽니다, 2013~2017, 설치, 함부르크 다이토어 미술관 설치 장면

 

영국의 팝 아티스트 리처드 해밀턴이 커버를 디자인한 이 앨범은 1968년 발매된 비틀스의 10번째 레코드다. 아무 그림 없이 하얀 표면에 비틀스의 이름만 새겨 넣은 이 더블 앨범은 300만장이 제작되어 커버 오른쪽 하단에 고유의 시리얼 번호를 달고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0000번은 존 레넌이, 1·2·3번은 다른 비틀스 멤버들의 차지가 되었다.

10대 시절 처음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비틀스의 이 앨범을 본 창은 앨범의 소장자마다 자기 방식으로 이 앨범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떤 재킷에는 날짜가, 어떤 재킷에는 온갖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또 다른 화이트앨범에서 그는 누군가의 연애편지도 발견했다. 작가는 대량생산되어 공급 유통되는 이 ‘공산품’ 같은 하얀 음반이 서로 다른 소장자를 만나 그들의 흔적을 담고, 하나하나 다른 모양을 갖춰가는 현상에 매료되었다. 음악 앨범은 더 많이 복제되어 팔려나갈수록 좋은 법이니, ‘사본’의 확산을 독려하는 마음과, 여전히 원본의 가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예술하는’ 마음 사이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보았다.

 

이제는 음원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듣는 생활에 익숙하지만, 그는 오늘도 온라인 매장과 중고 레코드 가게를 다니며 비틀스의 화이트앨범을 모으고 있다. 현재 2295장을 모아들였으며, 그의 수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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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동은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광장의 풍경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이미지 스트리밍 데이터를 수집하여 컴퓨터로 보내고, 컴퓨터는 그 데이터를 로봇에 전달하고, 로봇은 전달받은 정보로 그림을 그린다. 간혹 인터넷의 버퍼링이 심하거나, 끊어지거나 심지어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 전송이 멈추고 로봇의 붓질도 멈추지만, 그 결과 캔버스 위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기꺼이 예술의 한 부분이 된다.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고요한 풍경에 동선을 그을 때, 로봇의 붓질은 캔버스에 추상적인 선을 쌓는다.

 

류샤오동, 불면증의 무게,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250×300㎝, 리손갤러리(런던) 설치 장면

 

모순과 갈등이 있는 어딘가, 역동적인 현실이 놓여 있는 바로 그곳에 이젤을 설치한 후, 매우 성실한 태도로 풍경과 사람들의 초상을 기록하던 그가 로봇에 붓을 맡긴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묻는다. 화가는 쉼 없이 작업하는 로봇을 통해 놀라움으로 가득 찬 회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타인의 삶을 작업 안에 함부로 요약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로봇의 ‘객관’에 의미를 둔다. 그려야 할 화면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작업의 시작과 끝을 정하는 주체로서의 작가 자신이 로봇 뒤에 있긴 하지만, 기계의 눈과 손을 빌리면, 자신의 태도나 입장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을 수 있다. 작가는 그렇게 ‘객관적’이고 싶다.

 

그는 간혹 로봇의 붓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프로그래밍한 방향과 관계없이 이질적인 선을 긋는 것도 보았다. 30년 이상 빈 캔버스 앞에서 암담함을, 망설임을, 불안함을, 설렘을 느껴왔을 화가는 로봇의 흔들리는 붓질에서 동질감을 발견한다. 작업에 투입되면 일을 멈출 수 없는 로봇의 불면에서는 우울함마저 느낀다. 그래서 그는 이 시리즈의 제목을 ‘불면증의 무게’라고 정했다.

 

화가가, 어떤 식으로든 계속 새로워지고 모든 것이 쓸모 있는 이 시대에 예술가란 쓸모없는 존재이며, 쓸모없음이야말로 예술가의 존재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동안, 로봇은 불면의 시간을 캔버스에 쌓으며 예술을 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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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6번의 샤넬 컬렉션 쇼, 5번의 펜디 쇼, 2번의 개인 브랜드 쇼 기획은 기본이고, 패션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열고,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브랜드 캠페인을 기획해온, 샤넬보다 더 오래 샤넬을 이끈 카를 라거펠트가 작고했다.

 

카를 라거펠트, 노란 모직 코트, 1954 ⓒKunst-und Ausstellungshalle der Bundersrepublik Deutschland GmbH

 

그는 1954년 국제 양모 사무국(IWS)에서 주최한 공모전 코트 부문에서 수상하며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호주산 양모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시장을 확장하기 위한 이 프로그램은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통해 업계의 비전을 확산시키기 위한 유용한 전략이었다. 발망의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오트 쿠튀르에서 옷의 정석은 배울 수 있었지만, 지루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기성복’ 디자이너의 길을 택한다. 이후 대담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그는 패션산업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혁신이 필요하던 샤넬은 부정적인 여론에도 그를 영입했고, 그는 샤넬의 새 시대를 열고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패션은 예전 것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명분으로, ‘시즌’에 맞춰 빠른 속도로 계속 다시 태어나야 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우울증, 약물중독, 자살유혹에 시달릴 때, 라거펠트는 커피도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며 ‘운동선수’처럼, ‘숨을 쉬는 것처럼’ 건강하게 일을 했다. 동시에 논란을 불러오는 언행도 이어나갔다.

 

그의 사망을 두고 세계 최대 규모의 동물보호단체 PETA의 공동창립자인 잉그리드 뉴 커크는 “그의 죽음은 모피, 이국적인 가죽을 갈망하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까칠한’ 조의문을 남겼다. 패션 황제의 죽음을 안티모피캠페인에 이용한다는 비난이 이어진다. 자신이 한 모든 일에 후회도, 회환도 없다는 라거펠트는 이제 떠났다. 새 시대가 그냥 오지는 않겠지만, 한 시대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떠나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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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그림,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설치 전경 ⓒ데이비드 힐드

 

누군가가 지금 이 시대, 이 세상은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마저도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면,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 사람의 평가로부터 초연하게, 자기 확신과 미래 비전만으로도 뒤틀리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으려면 어떤 능력을 연마해야 할까.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출중한 예술가 지망생들이 진학하던 왕립미술학교에 입학, 우등생으로 졸업한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평가받는 시점을 스스로 유예시키기로 했다. 풍경화·삽화·초상화에 능했던 그는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생명과 우주가 만들어내는 유대감을 비롯한 영적인 세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근거를 놓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기하학적 무늬, 생명체의 패턴, 문자를 혼용한 도상을 활용해 다른 영역과의 소통가능성을 실험했고 이는 추상화의 형식으로 구현됐다.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지 않는 태도로 작업에 매진한 그는 예술과 정신성, 정치, 과학 시스템 사이의 관계망을 탐색하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형태를 찾아나갔다. 하지만 그가 구현한 추상적 회화는 당시의 미술계 안에서는 해독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영역이었다.

 

시대가 아직 그의 작품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 작가는 사후 20년간 작품을 봉인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980년대 중반 이후 1200여점에 이르는 그의 추상화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자 전문가들은 그를 ‘추상화의 대부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앞서 추상미술을 선보였던 선구자’라고 추앙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 앞에서 관객들은 역사 뒤편에 묻혀 있다가 화려하게 등장한 한 여성 예술가의 인생극장에 탄복한다. 이 장면이 작가가 기대한 ‘자신’을 알아주는 시대와의 조우일까. 작가만이 알 일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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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리 몽고메리, 허니문, 2018, 4K 디지털 비디오, 2분50초, 뉴욕 타임스스퀘어 설치, (사진촬영: Ka-Man Tse)

 

건물 입면 대부분을 전광판으로 뒤덮은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시공간 안에서 현실감을 장착하는 건 어색하다.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이다 못해 ‘우주의 중심’이고자 한다는 이 ‘세계의 교차로’에 들어서면, 빠른 섬광을 날리며 롤리팝처럼 돌아가는 현란한 광고 영상에 시선을 빼앗겨 생각을 멈추기 일쑤다.

 

타임스스퀘어 연합이 뉴욕 광고 클럽과 제휴하여 광고용 전광판에 ‘예술’을 담기 시작한 것은 더 다양한 홍보 콘텐츠를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능하고도 불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와 배양하고, 활용도 만점의 콘텐츠로 성장시키는 역량을 과시하여, 100년 이상 오락, 문화, 도시 생활의 아이콘으로 군림해 온 타임스스퀘어의 창의성과 에너지를 무한 작동시킨다. 이 모든 작업은 파트너들에게 여기 전광판이 그들의 브랜드를 가장 효과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이곳에서 최고의 사업성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타임스스퀘어는 전 세계 다른 도시에 ‘프랜차이즈’를 흩뿌리며 지구상 가장 화려하고 활기찬 상업지구로서 영생을 누릴 태세다.

 

타임스스퀘어 아트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2012년 시작한 미드나이트 모먼트는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곳곳에 밤 11시57분부터 자정까지 영상 작품을 상영하는 프로젝트다. 올해 2월 작품을 상영 중인 버지니아 리 몽고메리는 꿀이 흐르는 달을 들고나왔다. 화면을 가득 채운 하얀 달은 여인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그 위로 금빛의 꿀물이 흘러내린다. 주변의 광고판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달팽이인 양 느리게, 끈끈하게 흘러내리는 꿀물은 시간의 뒤꿈치라도 붙잡은 모양새다.

 

“우리는 종종 현실보다 더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달을 붙잡는 영감은 꿈에서 나왔다. 꿈에서 나는 달을 만지고 평화를 찾았다. 타임스스퀘어는 너무 빨리 움직인다. 허니문이 속도를 줄이라고 부탁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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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간대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국제공항에서 시계는 사람들을 통제한다. 시간대를 넘나드는 동안 신체 시간이 엉켜버린 이들은, 시계에 의지하지 않고는 시간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 국제선 라운지에서 유럽 대륙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여행객이라면, 천장에 매달린 대형 시계 속 노동자의 안내에 따라 현재 시간을 확인한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그는 3m 높이의 시계 안에서 1분마다 분침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현재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마르텐 바스, 리얼 타임, 2016 스히폴 공항 설치 ⓒ마르텐 바스

 

롤러로 시곗바늘을 그린 뒤, 잠시 시계 안을 서성이거나 구석에 세워둔 붉은색 양동이에 노란 걸레를 헹구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다음 1분이 다가올 즈음이면 다시 노란 걸레를 들고 분침을 지운다. 롤러는 다음 ‘분’으로 향한다. 언제 출근과 퇴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노동은 진행 중이며, 그의 뒷모습이 시계 뒤편, 그가 출퇴근할 때마다 여닫을 게 분명한 출입구 작은 창문으로 아련하게 흔들린다.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마르텐 바스는 스히폴 공항이 개장 100주년을 맞이하던 2016년, 국제선 라운지에 ‘리얼 타임’이라는 제목의 이 시계를 설치했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실제 시간의 길이가 같을 때를 ‘리얼 타임’이라고 칭한다. 나는 시곗바늘이 말 그대로 실제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 비디오 작업을 통해 시계의 콘셉트로 ‘리얼 타임’을 활용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시계 안에서는 오히려 실제 시간이 추상화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12시간 퍼포먼스 영상 ‘리얼 타임’으로 흐르는 시간의 실체성을 되찾고 싶었다.

 

퍼포머의 푸른색 작업복은 공항의 청소노동자를 상징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청소노동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 시계 안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근면성실함 덕분에 ‘시간의 실체성’이 노동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서 흐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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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메카스(1922~2019)의 편집실에는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작품을 완성하고 남은 필름조각을 담은 통이 잔뜩 있었다. 90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둔 2012년 어느 날, 그는 이 빛바랜 푸티지 가운데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의 장면들을 추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로 한다.

 

요나스 메카스,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 Out-Takes from the Life of a Happy Man, 2012, 68분 ⓒ요나스 메카스

 

그의 작업이 늘 그렇듯, 필름통에서 건져 올린 가족의 일상, 친구의 모습, 도시며 자연의 소소한 풍경, 고향 리투아니아로의 여행 장면이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인 질서’에 따라 연결되어 한 편의 서정시처럼 흐른다. 한때는 ‘완성작’에 적합하지 않아 잘려나갔던 장면이지만, 카메라가 스치듯 포착한 그 모든 순간은, 삭제되었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아름답다.

 

오래된 필름을 편집하면서 그는 지금은 사라진 것들, 떠나간 사람들을 만났다. 그 장면들을 만지며 그는, 사라진 것들이 남긴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지나간 시간을 향한 회한에 잠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지나간 시간의 이미지를 그는 이를 ‘기억’이라고도, ‘과거’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메카스에게 그가 기록한 이미지는 ‘기억’이 아니라 모두 지금 여기에 있는 진짜다. “기억은 가버리지만 이미지는 여기 있으니, 당신이 보는 것, 보는 모든 순간, 여기가 진짜다.” 그는 영상에 이런 내레이션을 담았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전쟁 난민으로 떠돌다 미국으로 이주,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를 개척했던 요나스 메카스가 지난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결코 과거를 찍지 않고, 찍을 수도 없고, 찍고 싶지도 않다. 나는 늘 지금 있다”고 말하던 그의 ‘진짜’를 만날 수 있는 건 기억을 붙잡아주는 이미지 덕분이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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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에밀리아 카바코프, 관용의 배, 2005년부터 진행 중, 혼합재료, 설치 ⓒThe ship of Tolerance


일리야와 에밀리아 카바코프는 다른 대륙, 서로 다른 문화환경에서 성장하고 다른 정체성을 가진 어린이들을 예술언어로 교육하고 연결하는 작업을 기획했다. ‘관용의 배’라고 명명한 이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민족의 어린이들과 예술가들이 ‘관용’을 주제로 3~4주 워크숍을 하고, 어린이들의 그림으로 돛을 만들어 배에 달고 출항시키는 과정으로 진행한다. 이 작업의 바탕에는 인류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을 지켜나갈 수 있는가 하는 카바코프의 질문이 담겨 있다. 더불어 이 작업은 분열된 공동체를 예술의 이름으로, 어린이의 순수함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시도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작가들은 문화권마다 관용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 두루 살필 수 있는 워크숍을 통해 참가자들이 자신과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어린이들은 워크숍 과정에서 다른 문화, 다른 인종,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토론하면서 관용의 의미에 다가선다.


2005년 이집트 시와를 시작으로 베네치아, 마이애미, 아바나, 모스크바, 브루클린, 로마, 로스토크, 시카고, 런던 등지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각 지역의 정치적 문화적 현실에 따라 작가들에게 난제를 안겨줬다. 세상에 관용이 실재하는지 아니면 ‘이름’만 남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그래도 작가와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조율하며 기념비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에 함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간 모양이다. 


카바코프는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한들, 세상은 전처럼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관용의 배에 함께 오른다면,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오지 않겠냐는 희망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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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뮤지엄 리그, 2018, 각 182.9×20.3㎝(36장) ⓒ메이드인카텔랜드


옛날에, 독일 출신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면, 요새,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모든 사람이 컬렉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목표를 위해 그는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야심찬 아이디어에 뿌리를 둔 소소한 프로젝트들을 진행 중이다. 예산이나 수장고에 대한 고민 없이도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도록 그는 하루 한 개 포스팅을 한 뒤 다음날 삭제해서 결국 매일 한 점의 ‘작품’만 전시하고, 한 점씩 배포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 중이고, 메이드인카텔랜드의 웹사이트에서 자화상을 활용한 ‘얼간이 죽이기’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뉴욕의 구겐하임, 바젤의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베를린의 함부르크 반호프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함께 ‘모두를 위한 예술’ 파일럿 프로젝트 ‘뮤지엄 리그’를 선보였다.


축구팀을 소유할 재력은 없지만, 사랑은 넘치는 이들이라면, 구단을 상징하는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응원에 몰두할 일이다. 카텔란은 축구팬들이 경기장에 모여 축구 사랑을 표현하고 응원하는 것처럼 아트 러버들이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응원할 수 있도록 뮤지엄의 상징성을 담은 스카프를 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제 “미술관은 공동체 의식, 정체성, 열정, 믿음, 자부심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예술 공간이 있으며, 이를 지지하고 소속감을 나누고 싶어 한다”.


작가는 이 스카프 작품 ‘뮤지엄 리그’가 일상의 미술 애호가와 극소수의 컬렉터 사이에 놓여 있는 전통적인 장벽을 허물 수 있기를 바란단다. 더 나아가 예술이 예술에 대한 기존의 견고한 관념을 넘어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남들은 ‘아트상품’이라고 부를 법한 스카프를 ‘예술’의 이름으로 ‘뮤지엄숍’에 배치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시대가 바뀌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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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시아 크와다, 라인랜드(LinienLand), 2018, 취리히 하우스 콘스트럭티브 미술관 설치전경, ⓒ알리시아 크와다

 

새해,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4호’가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착륙하고, 미국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소행성 ‘베누’ 상공에 도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천체의 궤도 진입에 성공할 때, 미국 우주선 뉴호라이즌스호는 태양계의 경계에 있는 카이퍼 벨트의 소행성 2014 MU69, ‘울티마 툴레’에 접근했다. 행성과 위성의 중력을 이용해 연료를 아끼는 우주항해술 ‘중력도움(flyby)’ 비행을 시도하며 눈사람 모양의 울티마 툴레 사진을 찍어 보낸 뉴호라이즌스호는 역사상 태양계의 가장 끝에서 이루어지는 첫 중력도움 비행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태양계 형성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힌트를 담고 있다는 이 소행성은, 알려진 세상의 경계에 있는 땅을 일컫던 ‘울티마 툴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렇게 새해맞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도전은 우주 곳곳에서 펼쳐졌다.

 

폴란드 작가 알리시아 크와다에게는 ‘현실’ 자체가 미지의 세계다. 특히, 우리가 늘 회전하고 있는 둥근 돌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다. 배우긴 했지만 전혀 의식할 수 없는 지구의 자전, 공전은 작가에게 알고 있는 세계 너머의 무엇이다. 그는 ‘미지의 현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관계들, 특히 시공간과 중력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예술의 이름으로 시각화했다. 45억년 세월의 압력 끝에 탄생했을 돌을 행성 모양으로 다듬고, 강철을 갈고 닦아 행성계를 만든다. 그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온 다른 크기의 ‘행성’을 3차원의 격자 구조물 곳곳에 배치하여 지금 여기, 아니면 우주의 끝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평행우주를 떠올린다. 그 안에서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이미 알고 있는 돌과 철로 만든 이 시스템은 이제 “내 작품은 내가 이해하기를 멈추는 지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작가의 말을 따라, 알고 있는 세계 저편의 문을 연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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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리마/ 계단 위를 걷고/ 링을 뛰어넘고/ 죽은 척을 해도/ 알고 싶은 것은/ 이 안에 있지 않아”

 

‘쇼타임’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철창문이 열리자, 얼룩말 리마는 빛나는 서커스 장내를 달리며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왈츠 박자에 맞춰 관중들이 들썩이고, 피에로가 흥을 돋우는 사이, 리마의 묘기는 서커스장의 울타리를 넘고, 조련사를 뿌리치고, 도로를 질주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검은밤, 스튜디오 답지, 리마, 2018, 인터랙티브 뮤직비디오, 3분30초

 

“너도 알잖아/ 갇혀있는 그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는걸”

지난 12월17일, 인간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의 화려함을 만끽하는 사이,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얼룩말 4마리가 크리스마스 서커스에서 탈출해 도심을 달렸다. 엘베 강가를 그림처럼 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 얼룩말의 자유는 짧았다. 경찰과 조련사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한 그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한 명의 경찰이 얼룩말의 발길질에 부상을 당했고, 한 마리의 얼룩말이 죽었다. 전문가는 스트레스를 그 원인으로 진단했다.

 

2015년 필라델피아의 서커스단을 탈출한 두 마리의 얼룩말도 도로를 달리는 모험을 감행했다. 사람들은 이 얼룩말의 탈주를 응원했으나, 그들은 곧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브뤼셀 시민들도 서커스단에서 빠져나와 도심을 누비는 세 마리의 얼룩말을 마주했다. 그들로 인해 도심의 교통은 금세 혼잡해져버렸지만, 이내 정리되었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김유석, 도재명, 안정주, 전소정이 결성한 밴드 ‘검은밤’은 서커스를 탈출하는 얼룩말의 실화를 모티브로 ‘리마’를 만들었고 게임스튜디오 답지는 게임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리마의 탈출과정을 담고 있는 이 게임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리마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를 끝까지 들을 수 없고, 그의 탈출을 응원할 수 없으며, 그의 운명도 확인할 수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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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에 반응하는 잉크를 사용했어요. 신체로부터 나온 열기가 모이면 신체 아래 숨은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2018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의 현대커미션 작가로 선정된 타니아 브루게라가 터빈홀에 설치한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바닥에 눕거나, 손을 댄다. 그들의 온기가 바닥에 닿으면 비로소 형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의 몸이 닿은 부분의 형상으로 보일 뿐이다. 바닥 아래 숨겨진 내용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필요하다. 내 몸 하나로는 전체를 드러낼 수 없다.

 

작가는 사람들의 온기를 모아야만 전체가 보이는 이 작품이 우리가 살아 있는 시간을 은유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동의하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한다고 해도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반영”이라고 말한다.

 

타니아 브루게라, 2018, 테이트모던 퍼포먼스 장면, (Guy Bell/Rex/Shutterstock ) ⓒ현대커미션, 테이트 모던

 

그는 이 작업에 참여하는 관객들이 “우리는 어떻게 이민자를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 사회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협상할 수 있는가” “우리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와 만나기를 기대한다.

 

어디에서 영감을 받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부당함’이라고 답변한 그는, 최근 여러 예술가, 활동가와 함께 모국 쿠바에서 예술적 표현을 제한하는 새로운 규제에 저항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고, 3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더 나은 쿠바,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과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켜나가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30년째, 이렇게 ‘행동’ 중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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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기부의 계절이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후원자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로 시작하는 메일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보다 조금만 후원금을 늘려준다면, 더 많은 이들이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부독려의 문구가 무겁다.

 

뱅크시, 얼마나 무거운가, 2015, 혼합재료, 90×38×42㎝ ⓒ뱅크시 (출처 www.choose.love)

 

12월 초,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는 그의 작품 한 점을 난민 구호 단체 ‘사랑을 선택하자’에 기부했다. 난민들이 배에 타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원격조종이 가능한 일종의 장난감이다. 그가 2015년에 약 한 달간 운영한 ‘음울한 테마파크 디즈멀랜드’에 설치했던 이 작품은, 관객이 동전을 넣으면 비로소 ‘지중해 보트 연못’ 안에서 움직였다. 폐관 직후 디즈멀랜드의 자재들을 난민 수용소로 보냈던 그는, ‘꿈의 보트’라는 푯말이 붙은 이 작품을 난민을 돕기 위한 후원금 마련 행사에 보냈다.

 

‘기부’와 더불어 뱅크시의 오리지널 작품을 획득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런던의 ‘난민 돕기 팝업 매장’이나 온라인 사이트(www.choose.love)를 통해 최하 2파운드를 기부한다. 그러면 당신은 작품의 무게, 즉 배의 무게를 추측하여 적어낼 수 있다.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면, 그만큼 더 ‘추측’해볼 수 있다. ‘무선 조종할 수 있고, 최고 속도 3노트에, 배터리가 포함되어 있으며, 난민으로 가득 찬’ 이 배의 실제 무게에 가장 가까운 답을 제시한 기부자가 바로 이 ‘꿈의 보트’를 소유한다.

 

현재 이 내용을 올려놓은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는 배의 무게를 추측하는 다양한 댓글이 달리고 있다. 사람들은 배의 무게가 물리적 무게인지, 도덕의 무게인지, 양심의 무게인지, 사회적 부담인지를 두고 많은 말을 쏟아내는 중이다. 무게를 추측해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니치 표준시로 12월22일 오후 8시까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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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삼손영, 소리죽인 상황 #22: 소리죽인 차이콥스키의 5번, 2018, 12채널 사운드 설치, 단채널 비디오 ⓒ삼손영

 

“이 작품은 실패다.” 차이콥스키는 1888년 5번 교향곡의 초연을 마친 후, 자신의 음악에 대해 스스로 혹평을 던졌다. 그 자신도 느낀 것처럼, 이 곡은 “조악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그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나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중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이 곡을 사랑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대포의 포격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아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들을 위로한 곡으로 더 유명해졌다.

 

홍콩 출신으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작가 삼손영은 독일 쾰른의 플로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전곡 연주를 요청했다. 이때 그가 덧붙인 하나의 조건은 연주는 하되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연주자들은 바이올린의 활을 켜고, 클라리넷을 불지만 ‘선율’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악보를 넘기는 소리, 현을 긁는 소리, 연주자의 숨소리만이 12채널의 스피커를 통해 공간을 가득 채울 뿐이다.

 

그렇게 오케스트라는 ‘영혼을 담아서’ 연주를 시작해 ‘노래하듯 자유롭게’, ‘달콤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전개하다가 왈츠를 연주한다. 이어서 팀파니와 현악기, 금관악기가 강렬하게 질주하며 알레그로로 장엄하고 위풍당당하게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연주 안에 ‘음’은 없다. 숨죽인 상황 안에서 관객들은 문득, 정말 억압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의 화려함이 은폐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린다. 그래서 삼손영의 ‘음악없음’은 역설적으로 그 ‘음악’의 감정에 더 집중시킨다. 청각을 다시 상상하고 구성하는 이 시간 속에서 ‘소리없음’은 ‘침묵’일 수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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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어느 날, 함부르크시 관계자가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오래된 코코아 보관 창고 사진을 들고 스위스의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와 드 뫼롱을 찾았다.

 

사진 속 벽돌 건물을 들여다보던 그들은 이내 건물 위에 파도처럼 바람처럼 일렁이는 드로잉을 하나 얹었다. 그 드로잉은 14년 후에 함부르크의 랜드마크 엘브필하모니로 탄생한다.

 

헤르조그와 드 뫼롱, 엘브필하모니 드로잉, 2003 ⓒ헤르조그와 드 뫼롱

 

새로운 랜드마크의 등장은 순조롭지 않았다. 2010년으로 약속한 개관은 2017년에야 이루어졌고, 1억8600만유로로 책정했던 건축비는 7억8900만유로까지 늘어났다. 공사가 중단되고, 책임자가 교체되고, 공사기간이 늘어지고, 예산이 증가할 때마다 정치적 공방이 줄을 이었고, 시민사회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콘서트홀은 그저 “상류계층의 퇴폐적 기념비” 아니냐는 비판, 다른 프로젝트들이 예산 절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엘브필하모니 프로젝트만이 끝없이 예산을 지출하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사회 안에서 갈등과 분노를 키워나갔다.

 

그 사이 건축가들은 그들이 디자인한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쓰고 있었다.

 

흡족한 빛의 굴절률을 가진 전구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전 세계를 뒤져 찾아낸 유리공방에서 홀 천장용 전구 1000개를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완벽한 소리를 위해서 이미 시공을 마친 1만개의 음향 패널 틈새를 모두 메웠다.

 

엘브필하모니를 통해 이곳이 그저 유서 깊은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 그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건축물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자 했다. “이 건물이 우리의 모든 경력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현혹했으니 이 총체적 난국을 책임져야 했다.” 책임을 지기 위해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타협하지 않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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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알버스, 여섯 개의 기도문, 1966~1967, The Jewish Museum, New York, Gift of the Albert A. List Family, JM, 테이트 모던 제공

 

세상은 조금씩 살기 좋아지고 있는 걸까. 지금 여기에서 그 믿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조금 앞서’ 기념하면서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애니 알버스(1899~1994)의 개인전을 열었다. 직물을 ‘공예’에서 ‘예술 형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그는, 바우하우스의 학생이자 선생이었다.

 

공식적인 교육제도 안에서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여성들의 입학을 허용한 바우하우스는 진보적 교육기관이었다. 공예와 순수예술 간에는 경계가 없고, 성차별도 없다고 강조하며 자유와 혁신을 이야기하던 바우하우스였지만, 여성이 남성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은 교묘한 명분을 들어 완곡하게 막았다. 이곳을 졸업한 후 ‘전문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대다수의 여학생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라고 언급되는 ‘직조 공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애니 알버스 역시 바라던 회화 대신 직조를 전공한다. 그는 평면회화와 직조를 연결시킨 ‘회화적 직조’라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직조를 사용해 짜임새 있는 딱딱한 패턴의 시각적 어휘를 개발하여 독자적인 기하추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회화’를 놓지 않기 위한 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회화적 직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여섯 개의 기도문’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내용을 담아 베이지색, 검은색, 흰색, 은색의 수직 태피스트리 6점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수직과 수평으로 중첩되는 선들은 그 무엇도 선명하게 발언하지 않지만, 작가는 그 선들의 매듭과 엉킴 사이사이에 언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언어가 쉽게 왜곡할 수 있는 감정들을 직조해 나갔다. 그 사이에는 여성의 ‘창의성’을 외면하던 바우하우스를 향한 ‘어떤’ 감정의 실타래도 꼬여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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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지금’은 언제인가. ‘당신이 가진 것은 시간뿐’이라고 말했던 작가 샹탈 애커만은 ‘지금’의 이름으로 사막의 풍경을 소환한다. 허공에 V자 형태로 매달린 다섯 개의 스크린에서는 마치 달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처럼, 각각 다른 속도와 시점으로 덜컹거리는 사막이 흘러가는 중이다. 그 안에서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전시장은 간간이 암전에 가까운 어둠에 휩싸였다가, 곧이어 붉은 모래, 바위 절벽이 펼쳐지는 예의 그 사막 풍경을 거칠게 흘려 보낸다.

 

샹탈 애커만, 지금, 2015, 멀티플 채널 HD 비디오 설치, ⓒ샹탈 애커만

 

다섯 개의 스크린 사이로 시선이 겹치고 흔들리는 가운데, 문득 파란 하늘이 화면을 채울 때면, 사막의 바위와 모래는 더 건조하고 거칠게만 보인다. 텅 빈 사막에 시선을 준 사이, 전시장 안에는 두려움 가득한 울부짖음, 엔진 소음, 동물의 괴성이 만드는 불협화음이 차오른다.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영상 사이를 뚫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성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전쟁과 죽음의 장면이 떠오른다. 애커만은 하늘과 모래가 끝없이 출렁이는 빈 사막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가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은 늘, 야만과 유혈의 신호다”라는 말을 보탰다.

 

“영상 앞에서 관객은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또한 시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저항감을 느끼는 이유다.” 그는 관객이 그의 영상 앞에서 온몸으로 흘러가는 매 시간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공허한 사막에서 샹탈 애커만이 보았을 ‘지금’은 반성 없는 인류의 과거가 무한 반복되는 ‘지금’일까, 그 결과 어쩌면 땅 위의 생명이 소멸한 ‘지금’은 아닐까. 스치는 풍경들의 스산함이 암시하는 ‘지금’은 어둡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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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영화 <서치>는 실종된 딸의 행적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줄거리만 들어도 몇몇 영화들이 떠오를 만큼 익숙한 장면이 예상된다. 그러나 영화는 신선한 형식과 참신한 화면 구성으로 스토리 라인을 풀어낸다.

 

영화 <서치>의 한 장면.

 

영화 내내 전지적 시점으로, 장면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가 없다. 모든 장면이 액자 구성처럼 PC 모니터와 모바일 액정, CCTV 등의 또 다른 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진과 동영상은 구글부터 인스타그램, 텀블러,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해 생산되고 재생된다. 가족사진 또한 카메라로 촬영되지 않고 모니터 캠을 통해 캡처된다. 그리고 인화해 가족앨범에 보관하지 않고, 컴퓨터 바탕화면이 되거나 폴더에 저장된다. 보기 힘든 망자의 사진은 검색 제한을 걸거나 온라인 메모리얼 사이트에 업로드한다. 이처럼 영화는 윈도 XP 화면으로 시작해 시종일관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 환경을 현실감 있게 제시한다.

 

특히, 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얻은 단서들이 쌓여가는 바탕화면이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사진은 다른 문서들(PDF, HTML, RTF)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전송되거나 삭제될 수 있는 파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찍히기보다 캡처되고, 간직하기보다 전송되며, 기념하기보다 인증되는 하나의 데이터. 예기치 않게 영화에서 지금 여기, 사진의 정체성을 실감하게 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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