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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청계천 메리야스 차림의 사내가 아랫도리가 시원한 아이의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는다. 숱 많은 검은 머리의 사내는 아직 젊고, 아이는 그런 아빠의 품이 넉넉하여 공중에 뜬 채로도 평온하다. 동네 소박한 식당 앞, 막걸리라도 한 잔 걸쳐 흥이 난 아빠가 춤사위를 대신해 아이를 어르는 여름밤. 그런 평범한 밤일 것이라 착각했다. 대책 없이 떠나야 하는 재개발이 두려워 아이 품에 기댄 채 흐느끼는 여린 아빠라는 사실은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이 한 장의 사진도 오독하는 판에 제멋대로의 해석과 이해가 뒤엉킨 세상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파란만장할 것일까. 어쩌면 아들은 아빠의 팔뚝 안에서 든든했고, 아빠는 그런 아들을 의지해 그 뜨거운 여름날들을 지나온 것만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고 난 뒤 사내가 이내 멀쩡하다.. 더보기
엄마가 엄마에게 5·18 민주항쟁의 첫 희생자는 김경철이었다. 어렸을 적 약을 잘못 먹어 귀가 먼 스물여덟의 농아. 국제양화점에서 신발 만들면서 백일을 갓 넘긴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소박한 가장. 광주버스터미널에서 계엄군들이 그를 학생으로 오인해 둘러쌌을 때 그는 구령을 따라 부르지 못해, 진짜 벙어리가 말을 못한다는 죄로 목숨을 잃었다. 말을 하는 이조차도 말문이 막힐 기막히게 억울한 시절이었다. 이제 그는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1-1이라는 번호로 그날의 끔찍함을 증언한다. 그런 아들 곁에서 소복을 입고 선 어머니 임근단 여사.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머리 위편, 잔디 안에 심어진 진갈색 나무에 유독 눈길이 가곤 한다. 그것은 아직 봄이 먼 날들을 버티다 누렇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가슴속 같기도 하.. 더보기
덧댐과 덧없음 그는 애초에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룰 생각이 없었다. 2001년 불광동으로 작업실을 옮겼을 때만 해도 강홍구에게는 시골과 도시의 경계쯤에 놓인 이 지역이 그저 흥미로웠을 뿐이다. 예상 밖의 근사한 녹지, 그 주변부의 정감어린 촌스러움, 그럼에도 서울시라는 행정 구역이 갖는 도시적 욕망. 이 묘한 지역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작가인 그의 기록 본능을 부추겼다. 그렇기는 해도, 본래 창작 활동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는 딱히 이 기록에 특별한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2004년 은평 뉴타운 계획이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갑자기 매일같이 보던 익숙한 풍경이 살풍경으로 변하면서, 그는 본의 아니게 재개발의 현실을 오랫동안 기록해온 뛰어.. 더보기
고고학 제목은 꽤 거창하다. 거기에 속아 실제 작품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디에 쓰는 건지도 모를 물체들이 고인돌이나 탑처럼 심각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가벼운 말장난에 속은 기분이지만 작품이 풍기는 진지함에 대놓고 딴죽을 걸 수는 없는 상황이랄까.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고고학’을 위해 사진가 권도연은 아이들의 역할 놀이처럼 스스로 고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함께 사는 강아지를 데리고 놀이터로 산책을 나가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팠으니 말이다. 주택가 땅 밑에는 스티로폼, 컴퓨터 부품, 캔 등 고만고만한 물건들이 숨어 있었다. 때로는 땅 위에서 말라비틀어진 무나 지우개 따위를 덤으로 얻기도 했다. 작가의 눈속임은 감쪽같아서 버섯처럼 보이는 고인돌은 스티로폼이고, 무처럼 보이는 녀석.. 더보기
침묵과 낭만 부산만큼 여행의 정석이 난무하는 곳도 드물다. 다들 부산하면 조용필 노랫말 속의 동백섬이나 해운대의 영화제를 자동으로 연결시킨다. 간 김에 자갈치시장에 들르거나 ‘부산오뎅’을 먹는 건 빠뜨릴 수 없는 행사처럼 얘기한다. 이제는 여기에 유행처럼 국제시장까지 한몫 거들고 있다. 이런 식의 답사 코스는 한편으로는 뻔하지만, 유독 사람들이 식지 않고 쉬지 않고 부산에서 얘깃거리를 만들어낸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뎅은 부산 것이 맛있고, 쌀쌀한 날 부산에서 먹는다면 더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굳이 꽃이 펴 있지 않더라도 동백섬에서 갈매기가 슬피 우는 소리를 듣는 일 또한 조용필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상으로 운치 있다. 사진가 이갑철이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부산 사진에는 왜 이.. 더보기
유령 도시 얼마 전 익숙한 거리의 가게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를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포털사이트에서 거리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월하게 가게 이름을 찾고 나자, 분명 이제는 없어져 버린 옆 가게도 함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아주 잠시, 뭔가 비현실적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정작 몸은 컴퓨터 앞에 있는데 실제로는 과거로 돌아가 그 거리에 서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 영상이 과거에 촬영된 것이 아니라 ‘실’시간 이미지라고 느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 그 거리에 서 있다고 착각할 만큼 눈앞에 보이는 화면을 더 믿었던 셈이다. 어쩌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시간으로 거리가 스캔되고 있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있으면서도 그곳을 보.. 더보기
가족 앨범 뭐니 뭐니 해도 사진의 탄생이 우리에게 선물한 최고는 가족사진이다. 물론 대형 카메라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버텨야 간신히 얻을 수 있던 초기의 비싼 사진관 사진과, 누르기만 하면 나머지는 카메라가 다 알아서 해주는 ‘똑딱이’ 카메라 시대의 가족사진은 그 위상도 성격도 많이 다르다. 필름 카메라가 중산층의 필수품이던 시절을 거쳐 스마트폰 시대 우리의 모든 기념일은 이제 낱낱이 기록된다. 그러므로 가족사진은 개인의 작은 역사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양식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거대한 시각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비록 누구나 찍기에 너무 흔하고 세속적인 사진으로 치부되지만, 사진가들도 가족이라는 주제를 많이 다룬다. 그러나 사진가가 찍은 가족사진이 사진관 사진만큼이나 기술적으로 더 아름답고 완벽할 거라.. 더보기
소소산수 겨우내 이 사진을 책장에 걸쳐 두고 함께 봄을 기다렸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정말 봄이다. 오히려 눈 내리는 겨울은 참을 만한데, 요즘처럼 사방에서 봄 기운이 보일락 말락하면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낸다. 한껏 연둣빛이 오른 새순도 보고 싶고, 제멋대로 흐드러지는 진달래도 그리워진다. 김진호가 찍은 사진 속에서는 그런 봄이 이제 막 오고 있다. 콘크리트 담장 아래로는 진분홍 꽃이 줄지어 피었다. 실제로 가보면 촌스러울 새파란 지붕도 진분홍과 짝을 이루니 꽤 개성있어 보인다. 길 건너 논밭은 빈혈을 앓듯 아직 푸석한 걸로 보아 꽤 이른 봄인 듯한데, 유독 파랑 지붕 집 뒤편만 꽃놀이가 한창이다. 산수유며 매화, 수선화까지가 한꺼번에 유난스럽기는 어려운 일, 어쩌면 부지런한 집주인이 장에서 구해다 꾸며놓은 .. 더보기
혼종의 탄생 도대체 이 생명체의 정체를 뭐라 불러야 할까. 다리가 여덟 달린 고릴라 아니면 고릴라의 얼굴을 한 문어. 어쩌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처럼 문어를 통째로 잡아먹고 있는 고릴라인지도 모른다. 이 괴생명체는 아직도 진화를 멈추지 않았는지 머리 위로는 더듬이가 솟아나고 몸통에는 날개까지 달고 있다. 물과 뭍, 하늘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존재는 과연 슈퍼 생명체인가 아니면 그 어느 한 부분도 온전치 않은 끔찍한 기형 생명체에 불과한 것일까. 조잡한 싸구려 모형을 재조립해 탄생시킨 이미지 앞에서 심각한 척 이런 식의 궁금증을 갖는 일이 어쩌면 과대망상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켄타우로스나 인어공주 같은 수많은 전설 속 반인반수는 지금도 여전히 동화와 공상과학 세계를 통해 변형된 캐릭터로 재탄.. 더보기
수정아파트 수정아파트는 작고 낡은 아파트다. 도시개발 바람을 타던 1969년 부산의 대표적인 서민 아파트로 들어섰다. 세월이 흘러 연탄보일러가 도시가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복도 끝 공용을 써야 하고 부엌은 어정쩡한 입식 구조를 하고 있다. 이제 이런 구식의 원조 원룸에는 대개가 아파트만큼이나 나이가 꽉 찬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남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내 집 살이를 택한 어르신들이나 싼 세를 찾아 중심부에서 밀려난 이들이 둥지를 튼다. 윤창수는 2011년부터 사진기를 들고 이 열일곱 동짜리 아파트를 드나들었다. 아파트와 같은 해에 태어나 이십대의 청춘을 그곳에 부렸던 인연이 처음에는 그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억이 버무려진 긴 오후의 우수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다 정이 든 할머니가.. 더보기
이스탄불의 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이조차도 카르티에 브레송은 기억할 만큼 그는 이제 국내에서도 두꺼운 관객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라 귈레르 전시 또한 놓쳐서는 안된다. 비록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아라 귈레르는 터키를 대표하는 국민 사진가다. 자신을 매그넘 회원으로 추천해 준 20년 터울의 카르티에 브레송과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이기도 하다. 아라 귈레르는 포토저널리스트로서 세상 여기저기를 누비며 무려 200만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스탄불의 눈’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대표작은 단연코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도시 이스탄불의 풍경이다. 아라 귈레르는 1928년에 태어나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한 19.. 더보기
미래고고학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 미래에 대한 온갖 예측이 난무한다. 분명한 건 우리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숱한 직업, 음식, 복장, 풍경, 날씨 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언어와 인종까지도. 그 소멸한 대상의 상당수는 멀고 가까운 미래에 어쩌면 박물관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라진 문화를 유물로 만들 때 힘의 논리도 작용할까. 과거 아프리카와 이집트 문명을 기꺼이 자신들의 안방으로 들여온 서구처럼. 더 극단적으로는 누군가는 그 박물관 안에서 전통을 재현한다는 명분으로 살아가게 될까. 파리에 살고 있는 이대성의 ‘미래고고학’은 이처럼 조금은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몽골 풍경이다. 하필 왜 몽골일까. 급속한 사막화와 도시화로 유목의 전통이 거의 멈춰버린 이곳이야말로 인류.. 더보기
시인과 사진가의 우정 일본에서 소포가 왔다. 처음 보는 이름이다. 겉봉을 열자 보자기가 나온다. 소탈한 무명천 보자기인데 마치 이제 막 묶어서 보낸 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다. 보자기 안에는 원고지에 붓펜으로 쓴 편지 한 통과 흑백 사진들이 담겨 있다. 빼어난 필체의 편지는 곡진하고, 프린트는 한 점 한 점 정교하다. 혼자였는데도 보자기를 풀 때부터 마지막 사진을 덮을 때까지 예를 갖추듯 조심스러웠다. 보낸 이와 사진 속 주인공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12년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 권철은 일본 한센병 시인 텟짱의 사연을 이렇듯 정성스럽게 전해왔다. 텟짱의 본명은 사쿠라이 데쓰오. 열여덟 살 때인 1941년 한센병 요양원에 강제 수용된 뒤 2011년 생을 등지고서야 고향에 묻힌 한센병 회복자. 요양원.. 더보기
밤에 밤은 천의 얼굴이다. 그때는 한없이 울적거리다가도 어느 한순간 생각이 가볍고 명료해진다. 깊은 어둠 속에서 마음은 무서움과 그리움 사이를 줄타기도 한다. 단지 해가 사라진 시간이라고 하기에 밤은 너무도 묘해서 달밤은 해가 뜬 낮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윤아미가 밤을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자신에게 빗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에게 밤은 숨겨진 또 다른 내가 출현하는 시간이다. 감정이든 사람이든 숨길 때는 뭔가 사연이 있기 마련. 너무 아끼거나 남 앞에 드러내기 멋쩍을 때 우리는 은연중에 감춰 버릇한다. 그러므로 윤아미가 밤에 만나는, 혹은 밤에만 꺼내놓는 자신은 공인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상상의 세계에 사는 아이처럼 엉뚱하고 짓궂기도 하고 .. 더보기
포토제닉 드로잉 예쁘다 이 꽃. 아니 더 정확하게는 꽃 사진이. 꽃을 너무 꽃같이 찍은 사진을 두고 예쁘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불멸의 생명력을 가졌다 한들 향기도 입체감도 없이 인화지 위에 핀 꽃이 어찌 실물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 속에 핀 꽃은 진짜 꽃과는 다른 매력을 가져야만 한다. 사진가 구성수의 야생화는 얼핏 보면 수수하지만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자태의 뽐낸다. 우선 찰흙판에 꽃을 얹고 고무판으로 눌러 음각을 만든다. 이 위에 다시 석고시멘트를 부어 굳히면 화석처럼 꽃의 가느다란 형태까지가 모두 살아있는 양각 부조가 된다. 이 위에 본래 야생화가 지닌 색감으로 색을 칠한 뒤 사진으로 촬영한다. 찰흙판에 눌린 꽃은 꽃밥이며 꽃잎, 이파리들이 독특한 모양으로 .. 더보기
그 겨울, 한강 몹시 흐린 날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우울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흐린 눈발 속 행인들은 죄다 어두운 무색옷을 걸쳤다. 옷의 두께가 시린 생을 다 녹이지는 못하는지 몸은 계속해서 움츠러들고 있다. 숨을 곳도, 가려줄 곳도 없는 탁 트인 한강 위로 귓불을 휘감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지금의 한강대교인 한강인도교 위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사실은 기막힌 구도 덕분이겠지만, 사진 속 풍경이 하도 추워서 저 멀리 한강철교가 정말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저 멀리 점점이 사라지는 행렬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저 뿌연 풍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무겁고 축축하고 어두운 겨울 날씨는 엄연한 현실이다. 눈 위로는 그 현실에 순응한 혹은 거역한 발자국들이 .. 더보기
암에 관한 백과사전식 해부 암은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공포다. 이 공포는 극심한 통증, 끝없는 두려움, 슬픈 이별이라는 말들을 동반한다. 분명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세포지만, 내 몸의 일부라 하기에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어 헛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덩어리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 의술이라는 이름을 빌려 병원은 수술도 하고 처방도 하지만, 그 과정은 이성적이다 못해 차갑고 냉정하게만 느껴진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병을 핑계 삼아 마음이 분열을 시작하는 이유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의사에게 암은 무엇일까. 그것은 낱낱이 파헤쳐야만 하는 연구와 정복의 대상이다.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외과의사 노상익은 자신의 블로그에 암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수기로 써내려간 진단서를 비롯해 처방 내용, 환자의 병력, 수술 마지막 단계.. 더보기
50년 동안의 약속 눈빛은 사진집을 내는 작고 오래된 출판사다. 원래 순한 사람들이 사고를 치면 꽤 집요하고 대책 없는 법이다. 책 만드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중년의 이규상 대표는 이런 축에 든다.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귀한 자료를 발굴해 책으로 엮어내는 우직함이 대단하다. 특히 다큐멘터리사진의 기록성에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눈빛이 북콘서트를 열었다. 11권의 사진집과 함께 눈빛작가선 10권을 내놓은 올 한 해의 결실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이날은 출판사 대표보다도 더 고집스러운 한 분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원로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 마침 이날은 선생의 대표작 사진집의 출판 기념회 자리이기도 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 미나마타시의 질소 공장에서 배출한 수은에 마을 주민들이 중독된 사.. 더보기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선비 복장을 한 가수 싸이가 조선 팔도를 여행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긴 하나 시점은 다양하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의 시선에서 기록한 유적지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김일성광장 앞 인민군 행렬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의 손에는 대한제국이 만든 로켓이 들려있고, 그 옆에는 레이디 가가가 찬조 출연을 한다. 작품 한쪽에는 싸이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불렀을 법한 랩풍의 가사들이 적혀있다. 북한의 선전 문구 같기도 하고, 시조 한 소절 같기도 한 문장들은 시대 풍자와 한탄으로 가득하다. 사진가 이상현이 트렁크 갤러리에서 최근에 선보인 전시 제목은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얼핏 산만해 보이는 이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의외로 명료하다. 구한말 우리가 로켓을 가질 만큼 강력했다면 식민지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며.. 더보기
팔 굽혀 펴기 이제 막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변화의 바람은 문화 예술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10년 사이 중국에는 수준급 사진 행사가 꽤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지메일은 연결이 쉽지 않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차단된 사회다. 통 크다는 얘기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행사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지만 한편으로는 내로라하는 작가나 기획자들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미심쩍은 검열이 존재한다. 작가들은 이 예민한 부분에 대해 어디까지 저항을 감행할까. 그리고 정부는 이런 작가들과 어떤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주고받을까. 이 대목은 중국 예술에 대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사진가 오지항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저항하는 경우다. 패션사진가이자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나체 퍼포먼스다. 그의 사진은 얼핏 보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