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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성당 양화대교 북단에는 천주교의 성지이자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는 절두산 순교성당이 있다. 강변북로를 달리며 서강대교에서 양화대교 쪽으로 진행하다보면 우측으로 독특한 형상을 한 절두산 순교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였다. 이 양화나루에는 지형이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과 유사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고 이름 지어진 높이 20m의 언덕이 있었다. 양화나루터는 이 잠두봉과 어울려 빼어난 풍치로 이름이 높았다. 이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조선의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은 이곳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고 시를 짓는가 하면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꼭 들를 만큼 유명한 명승지였다. 그러나 이 언덕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1만명에 가까운 천주교인들이 .. 더보기
K76-3613 포토저널리스트 아녜스 데르비. 프랑스 작은 도시에서 양부모의 외동딸이자 그 동네의 유일한 동양 아이로 자랐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녀가 한국에서 자신의 생모를 찾아나선 건 3년 전. 출생의 비밀을 아는 일이 생모와 자신에게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으나 과연 한국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을 수나 있을는지도 미지수였다.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가 자신의 입양 서류를 뒤지는 한편, 여러 가지 사연으로 자식을 입양시킨 채 평생 부채감에 시달려온 어머니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 분주함 사이로, 문득 거리에서 엄마와 아이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눈에 밟혔고, 과거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딛고 훌쩍 발전해 버린 한국의 풍경이 낯설어지기도 했다. 발길을 멈추게 한 그 순간들 또한 즐겨 쓰는 낡은 롤라이 필름 카메라에 담겼.. 더보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모텔이 복합적인 인상을 풍긴 지 오래다. 호텔보다는 저렴하지만, 여관보다는 촌스럽지 않은 곳. 여기에 세심하게 준비한 성인 용품과 주차장 가림막에 힘입어 모텔이라는 말 앞에는 늘 ‘러브’가 생략된 것처럼 여겨졌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모텔 밖에서는 동침이 불가능한 이들이 찾아오는 욕망의 해방구 혹은 사랑의 도피처. 요즘에는 모텔도 진화해서 혼텔족이 찾는다거나 친구들끼리의 파티가 가능한 이색 공간이라는 수식도 따라붙는다. 이렇든 저렇든 모텔은 넓지만 정작 내가 소유한 공간은 없는 갈 곳 없는 대도시에서 사생활이 보장된 하룻밤짜리 사적 공간인 셈이다. 이색 모텔 문화는 대만도 예외가 아니다. 수첸첸은 체크아웃이 끝난 직후의 모텔 방을 수년 동안 기록했다. 대부분은 방값이 꽤 비싼 러브 모텔이다. 숙박업체의 투.. 더보기
북극곰 프로젝트 수컷 북극곰의 평균 몸무게는 500킬로그램. 그 육중한 몸으로 빙하 위를 헤엄치듯 가볍게 달려 물범을 포획하는 지구상 최강의 포식자다. 영하 40도 극한의 온도에서 번식이 가능한 유일한 육식 동물을 야생에서 눈앞에 마주한다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에 가깝다. 동물원에서 북극곰이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건 아마도 이 역설 때문일 것이다. 가장 두려운 대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호기심. 동물원의 격리 시설이 북극곰의 공격성을 차단하는 순간, 관람객들에게 이 포식자는 한없이 순하고 느긋한 지구상 최고의 귀염둥이로 둔갑한다. 사진가 로성원은 유럽과 중국의 동물원과 수족관 25곳을 찾아 북극곰이 인공적으로 서식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모순에 집중했다. 동물원은 갇힌 북극곰에.. 더보기
대원군을 유혹한 석파정 길가의 나무들도 얼마 남지 않은 마른 잎들을 떨어내느라 부산하다. 멀어져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얼마 전 부암동에 있는 서울미술관을 찾았다. 박스형 건물로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미술관에 발길을 들여놓는다. 내년 1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특별기획전 ‘비밀의 화원’이 비중있게 전시되고 있다. 영국의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집필한 동화 내용을 바탕으로 국내외 작가 20여명의 시선을 모은 전시회이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옥상으로 올라가니 도로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인왕산의 동북쪽 사면을 배경으로 경사지를 따라 층층이 자리 잡은 멋진 한옥 여러 채가 주변의 수목들과 함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이 흥선대원군이 흠뻑 빠져 빼앗다시피 한 석파정(石.. 더보기
공기와 사진 문화예술가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캠핑촌을 운영하고 있다. 캠핑촌 입주 작가로 변해 연일 노숙을 하고 있는 사진가 노순택이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렸다. 신영복 선생의 제자인 보리 이상필 선생이 문화촌으로 변한 그곳에 참여했다가 써준 붓글씨. 사진이 일상이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분단과 공기와 사진을 동일선상에 놓고 나니 그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공기야 없으면 살 수가 없고, 분단이야 사라져야만 더 잘 살 수 있으나 사진의 역할은 그 간극 사이에서 과연 뭘까. 공기가 돼버린 분단처럼 실체는 있으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든 가시화시켜내는 게 사진의 몫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에는 가장 쓰임이 많은 표현 매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사진은 권력.. 더보기
놓다, 보다 매일 다녀서 발길이 빠삭한 숲에서도 예기치 않은 일들은 일어난다. 인적이 없어 나만의 숲 같지만, 누군가에게도 그곳은 비밀의 화원일 터. 다음날 와보면 그사이에 다녀간 이들이 내려놓고 간 흔적들을 자양분 삼아 숲은 한 움큼 더 웃자라 있다. 어느 날엔가 그 숲 나뭇가지에 빨강 넥타이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진녹색을 배경으로 매달린 빨강 천, 제멋대로 자라는 식물과 격식의 상징인 타이, 양복 차림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등장과 실종.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물 하나가 더해지자 숲은 수많은 이야기의 단서를 제공하는 무대로 돌변했다. 그때부터였다. 김지연이 무언가를 숲에다 놓은 것은. 그러고는 찬찬히 그것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행위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어머니에 관한 유.. 더보기
꿀잠 잠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잠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하고 평등하다. 그것은 죽음 다음으로 생명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완전한 멈춤의 순간이다. 다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 필수적인 몸과 마음의 정지 상태. 생을 이어간다는 의미의 생계는 달리 말하면 밥과 잠을 챙기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생계가 망가진 이들에게 잠잘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질 리가 없다. 쪽잠이나 한뎃잠은 가능할지 몰라도 편한 잠은 사치에 가깝다. 64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은 늘 이 생계의 위험에 시달린다. 그들이 요구하는 고용의 안정은 복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삶의 조건으로서 밥과 잠인 셈이다. 2009년 용산 참사 때 시작한 후로, 사진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 온 ‘빛에 빚지다-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의 201.. 더보기
가을의 끝자락을 품은 인왕산 아름다운 10월도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났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얄미운 것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멀어져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가을에 젖어 있는 서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 단풍이 곱게 물든 서울의 주변 산은 이러한 갈망을 갖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어머니의 품처럼 다가온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둘레길을 모두 완성하였다.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 등 내사산(內四山) 및 한양도성을 잇는 ‘내사산둘레길’(한양도성길 18.6㎞)과 관악산, 북한산, 수락산, 아차산 등을 잇는 서울 외곽의 ‘외사산둘레길’(157㎞)이 그것이다. 이렇게 멋지게 조성된 둘레길을 찾는다는 것은 타오르는 단풍의 계절에는 더.. 더보기
사이드 B 이민지가 아르바이트를 간 곳은 토익 시험장이었다. 전공을 바꿔 사진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고, 딱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눌 수 없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길목에서 그도 일자리가 필요했다. 시험장으로 쓰인 어느 교실, 수험표에 알알이 박힌 증명사진들은 마치 취업 원서까지를 겨냥한 듯 반듯했다. 검은색 정장에 깔끔한 머리 모양은 개성 없이 복제된 청춘들 같았다. 토익이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능력을 점수화시키는 방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험에 몰두하는 얼굴들은 증명사진보다는 훨씬 다채로웠다. 그 순간 자신을 포함해 그 공간에 있는 수험생과, 또 그들과 엇비슷한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작업 제목은 ‘사이드 B’. B급 인생, 중심이 아닌 변방으로서의 ‘Beside’ 등 알파벳 B로 시.. 더보기
떠도는 나날들 바슐라르가 말했다. 집은 인간 존재 최초의 세계라고.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집이 온전치 않으면 인간의 존재가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승훈도 그랬다. 어쩌다 보니 서울에 살면서 유년 시절을 포함, 18번의 이사를 겪었다. 자발적인 이주가 아니라 떠밀리는 표류에 가까웠기에 그는 ‘겪었다’는 표현에 방점을 찍는다. 우연히 살던 동네에 들렀다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곳에서 향수를 넘어 일종의 당혹감을 느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서울에서 재개발의 바람조차 비껴간다는 것은 무능력과 소외의 다른 표현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동네는 그대로여도, 그곳 낡아가는 건물에는 사람들이 들고나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곳을 나와서는 새집으로 옮겨가는 데 성공했을까. 이승훈이 18곳의 좌표를 찍어 보니.. 더보기
부용지의 가을 이제 제법 가을이 깊이 영글었다. 여름이 무더웠던 탓인지 10월이 한참 지났음에도 지난주까지는 여전히 녹음이 짙었는데 이제는 가로수에서도 강한 단풍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돈화문을 거쳐 창덕궁 경내로 들어서면 수백년 묵은 고목들이 전해오는 가을 내음은 도시민의 피로를 한순간 사라지게 하리라. 자연 지형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운 배치로 이루어진 창덕궁의 궁궐 건축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자연스레 뒤쪽의 후원으로 발걸음을 잇는다. 창덕궁의 후원(後苑)은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 불렀으며 비원(秘苑)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불렀던 용어이다. 지세를 그대로 살리면서 인위적인 면을 최소화하는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후원 중 가장 빼어난 .. 더보기
키스 이 장면은 낯익고도 낯설다. 서양 미술의 오랜 전통 속, 사랑에 빠진 두 남자의 한순간인가 싶다가도 쉽게 들어설 수 없는 누군가의 집, 비밀스러운 일상을 목격하는 듯한 주춤거림을 갖게 한다. 사진의 흐릿하고 부드러운 입자는 몽환적이고도 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쩌면 본디 사랑이란 이 흐릿함만큼이나 유약하고, 그래서 더욱 갈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벽에 걸린 그림 속 여인은 고통이자 기쁨인 사랑의 모순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연인끼리의 입맞춤을 애잔한 연민의 시선으로 지켜볼 뿐이다. 그 순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섞이고, 사랑을 둘러싼 통속적인 금기도 허물어져 내린다. 김미현은 1985년부터 파리에 살고 있는 사진가다. 정물부터 풍경, 다큐멘터리까지 그녀의 사진들은 부드러운데도 묘하게 .. 더보기
이것은 옷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옷이 아니다. 옷은 모든 입체감을 상실한 채 스스로 배경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면 배경이 옷을 집어삼켜 스스로 옷이 되려는 매트리스적 찰나라고 해야 할까. 옷의 환영 혹은 옷의 변장은 이 옷을 걸쳤을 누군가의 존재감을 옅게 만든다.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서의 옷은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채 도판처럼 나열될 뿐이다. 시각 놀이와도 같은 이 착시를 위해 양호상은 1950~1980년대의 옷 천 벌을 수집했다. 복고풍을 택한 건 유행 또한 시대가 요구한 소비의 방식이었음을 드러내고 싶었던 탓이다. 개성은 때로 유행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인정받는다. 작가는 촬영한 옷의 배경을 지우고, 대신 옷의 패턴을 복사해.. 더보기
창덕궁의 가을 내음 가을이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섰다. 주위의 녹음들이 형형색색 색동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이즈음, 서울에서 가장 가을의 향기를 잘 맡을 수 있는 창덕궁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현대빌딩과 아라리오 미술관(구 공간 사옥)을 지나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다다른다. 주위에 큰 건물들이 바싹 붙어 있어서일까? 광화문의 웅장함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아늑하게 느껴지는 포근한 돈화문의 모습이다.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렸다.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궁궐이다. 이 궁은 조선 초부터 많은 임금들이 법궁인 경복궁을 대신하여 찾았던 곳으로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868년 재건될 때까지.. 더보기
오 캐나다 행동파 사진가 나오미 해리스. 16년 동안 캐나다를 떠나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럴수록 캐나다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깊어져 갔다. 그것은 진지한 조국애라든지 어두운 자국의 역사를 파헤치려는 냉소적 책임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만약 책임감이 있었다면, 미국의 다양한 문화적 단면을 기록하는 떠돌이 사진가로서 한번쯤은 자신의 나라를 순례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촬영기는 이베이에서 구입한 중고차의 미터기가 드넓은 캐나다 땅을 4번 횡단한 만큼의 숫자를 기록했을 때에야 끝이 났다. 얼핏 보기에 대장정의 결과물은 흥미로운 여행 과정만큼이나 경쾌하다. 가죽 재킷과 터번 차림의 시크교도 모터사이클 클럽부터 얼음 여왕으로 선발된 긴 망토 옷의 백인 할머니까지 아무.. 더보기
기호 1번 선거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책 싸움이 맞긴 한 것일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미국 대선의 전개 과정은 선거의 당락이 사회 교과서의 가르침처럼 순진하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대권가도를 향한 파렴치한 권력의 움직임을 다룬 영화 만 봐도 선거는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두뇌 싸움이자 심리전이다. 그 전쟁의 가장 표면에서는 2 대 8의 가르마와 파란색 넥타이로 상징되는 이미지 메이킹과 홍보 전략이 작동한다. 최대한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모습으로 비치기 위해 후보들은 머리 모양과 옷 색깔은 물론이고 미소 짓는 입의 크기까지 신중을 기해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이제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었다면, 유권자들의 눈에 가장 효과적으로 많이 띄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고도.. 더보기
경복궁의 가을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던 기록적인 폭염도 이제 서늘한 바람 앞에 흔적을 감췄다. 푸르렀던 녹음도 서서히 형형색색의 색깔로 몸단장하는 시간이다. 상큼한 이 계절, 도시의 공간감을 느껴볼 수 있는 광화문광장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좀 더 넓은 모습을 보기 위해 광화문광장의 주변 건물 높은 곳에 올라 북쪽을 바라본다. 광화문과 뒤쪽에 펼쳐져 있는 경복궁이 북악산을 등에 지고 멋진 풍광으로 나를 맞이한다. 경복궁(景福宮)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된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정궁)이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온 백성들이 큰 복을 누리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 궁은 백악산(북악산)을 배경으로 좌측에는 낙산, 우측에는 인왕산이 있고 앞쪽으로 청계천이 흐르는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 더보기
TV가 나를 본다 오늘도 텔레비전이 눈을 유혹한다. 솔직히 딱히 뭘 보려고 한 건 아니지만 텔레비전에서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튀어나와 내 눈을 꼬셔주면 좋겠다.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널브러질 수 있을 텐데. 그 생각 없는 순간을 비집고 고민거리도 잠시 들어왔다 나가며 정리가 되고, 무작정 바라보던 화면이 점점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워져서 몰입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 그사이 앉아 있던 내 몸은 점점 무너져 내려 마침내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과 잠 사이를 오락가락할지도 모른다. 만약 텔레비전에 눈이 달려 그런 나를 바라본다면, 텔레비전은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따분하다고 생각할까. 대략 지구 인구의 60% 정도가 텔레비전을 본다 하니 전 세계 40억명은 그런 내 모습과 얼마만큼 닮아 있을까. 프랑.. 더보기
도쿄 앵무새 감각적인 색감과 구도로 짧은 시간 빠르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젊은 사진가 미즈타니 요시노리. 그가 처음 도쿄에 살기 시작했을 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대도시의 문화나 사람이 아니라 앵무새였다. 빨강 주둥이에 연두색 몸을 한 앵무새 떼가 집 앞 나무와 전깃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앵무새가 머무는 하늘만 본다면 그곳은 도쿄가 아니라 히치콕 영화 속의 장면이거나 열대 지방이어야만 했다. 이 새들이 풍기는 야릇한 분위기에 홀려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기를 1년, 은행잎의 빛깔이 녹색에서 노랑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포착한 것은 물론 그는 앵무새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비밀도 알아냈다. 저녁이면 다 같이 둥지로 날아와 밤을 보낸 뒤, 아침이면 무리를 나눠 움직이는 이 앵무새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