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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문두스 룰루스, ‘The Thinkin Machine’, 2016, 바르셀로나 CCCB 전시 장면.


1200년대의 스페인 마요르카는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공존하던 지역이다. 종교갈등이 빚어내는 충돌은 빈번했지만, 문화교류에 기반한 공생 관계는 유지하던 이곳에서 태어난 라이문두스 룰루스는 정복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아버지 덕에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음유시인이 되어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부유했고, 방종했으며, 세속적”이었던 그의 삶을 바꾼 것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환상이었다. 같은 환상을 다섯 차례 경험한 뒤, 그는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교도’를 만나 개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믿음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신의 속성을 덕, 완전성, 품위, 위대함 등의 개념으로 규정한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한 필연적인 근거를 과학적으로 도출하고, 신앙의 참을 증명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담아 ‘이방인과 세 현자의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수학식, 천문학 도표, 그림을 남겼다. 


그가 서로 다른 종교인들을 대화의 장에 앉히기 위해 선택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 1. 각 종교의 신앙조항을 모두가 인정하는 이성에 근거하여 토론하는 기술, 2. 대화의 과정에서 상호 간 직접적인 반박을 금지하여 적대감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집중하는 경청의 기술, 3. 논쟁적인 대결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평화적으로 대화를 추구하는 기술.


최초로 투표 이론을 정비하여 ‘결선투표제’를 제안하기도 한 룰루스는 중세를 살았던 많은 지식인이 그러하듯 성직자, 수학자, 시인, 발명가, 예술가로 살면서 자신의 신념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했으나, 포교활동을 하던 중 순교하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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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솔저스. 2011. ⓒ 임안나


이 사진은 달콤하고 유혹적인 크림이 혀끝에서 감도는 듯한 촉감을 느끼게 한다. 핑크와 청록의 조합은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화려한 성처럼 우뚝 선 케이크, 그러나 비스듬히 기운 것이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다.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면 핑크빛 꼬마 병정들과 탱크, 기관총이 진격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무기는 추상적일 수 있다. 아마 게임에서나 다뤄봤을 것이다. 그래서 전투는 ‘해볼 만하고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많은 영화가 세계 1·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루지만, 관객은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에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지만, 권력은 현실로 존재하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그동안 정쟁에 이용해 왔으므로 국민들은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임안나 작가는 그동안 무감각해진 전쟁의 공포를 학습하는 작업을 해왔다. 달콤한 핑크색 케이크에 오륜기라도 되는 양 다섯 개의 촛불이 축제의 분위기를 낸다. 작고 예쁜 분홍색 과자 같아서 병사 하나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 맛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알레고리 형식 안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이 두드러져 보인다. 사진은 평상시에 눈여겨보지 못했던 불안을 인식하게 한다. 미니어처 탱크와 병사의 모습 뒤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모든 나쁜 요소들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남북문제, 강대국들의 패권 대결 등.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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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 펜 (20×15㎝)


사진 정리를 하다가 작년 이맘때쯤의 나를 보았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다시 한번 나를 천천히 뒤돌아봅니다. 너무 게으르게 지낸 것은 아닌지, 현명하게 살고 있는지,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해보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가끔씩 이렇게 나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미래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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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천, 분노, 돌에 스텐실, 7.5×19.5×15㎝, 2017년.


처음엔 일본과 중국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8년 ‘한국판화협회’가 조직되고 19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설되면서 한국 현대판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판화에 관한 사회적·예술적 인식이 아주 낮아 회화의 아류나 인쇄물에 삽입되는 보조수단 정도로 치부됐다.


그럼에도 한국 현대판화의 선각자들은 우리만의 제지술과 인쇄술에 외국의 기술 및 기법을 신속히 접목하면서 자생력을 다졌다. 1970~1980년대엔 독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했고, 1988년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 판화과가 설치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전문 판화가들도 다수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판화는 조형 영역과 표현 영역에서 확연한 색깔을 드러내며 1990년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판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화랑들과 공방, 작가들은 상업판화를 무차별적으로 양산해 판화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으며, 판화만의 특징인 간접성·복수성은 유일성과 희소성을 중시하는 미술시장에서 되레 약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창의와 기법이라는 판화 교육의 이분화 실패, 유통구조의 한계, 가격 형성의 객관성 결여와 같은 제도적 난제들도 판화의 앞날을 어둡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도 판화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멀티플 개념을 ‘복제’로 이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 판화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최근 기획한 대규모 판화전 ‘판화, 판화, 판화’는 시의적절하고 유의미하다. 국내 현대판화의 개념, 매체, 현황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작품들도 전통 판화에서부터 미디어, 설치에 이르는 확장된 판화까지 고루 포진되어 있어 단순한 역사적 나열을 벗어난다. 김구림의 얼룩진 식탁보, 윤동천의 글자 새긴 짱돌처럼 이것도 판화인가 싶을 만큼 논쟁적인 작품도 있다.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이래 최초로 한국 서예를 ‘예술의 무대’로 단독 소환한 전시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향후 공예·건축 등 여타 소외 장르에 대한 소개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제 관람이 수월치는 않지만, 균형감 있는 기획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히는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다. 그야말로 판화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전시를 포함해서 말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piet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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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대로부터. 2019. ⓒ이선민

작가노트를 읽고 난 후에 작가의 나이가 알고 싶어졌다. 쉰둘, 내 눈으로 보면 딸 같은 나이지만 젊은이들이 보면 ‘쉰 세대’에 속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나이는 언제쯤일까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시대’ 안에는 ‘아버지’라는 키워드와 ‘시대’라는 의미가 겹치면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오버랩되고 있다. 작가가 말한 아버지의 시대에는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6·10민주항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전쟁과 상처, 가난과 독재의 시대였다. 그 시대를 거쳐온 아버지는 늘 권위적이고 무뚝뚝했고 외로웠다. 이선민이 찾아 나선 사진작업은 그런 아버지 시대의 마지막 서사인지도 모른다.


윤병천씨(79)는 18세에 충남서산에서 맨몸으로 올라와 보광동 산동네에 살면서 마을 청소를 하다가 한국조명의 선구자인 장병갑 박사의 눈에 띄어 국일 방전관 조수로 들어갔다. 당시의 한국은 전기사정이 열악해서 공장이 멈춘 늦은 밤에야 전기가 들어와서 집 안을 밝히던 시절이었다. 필라멘트 전구에서 형광등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는 형광등 제조 기술을 생산 공장에 전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한 지금은 아들 윤승현씨(49)가 대를 이어 오고 있다.


이선민은 이 시대가 눈길을 주지 않는 ‘연금술사’ 같은 아버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겪어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록하고 있다. 최고의 조명기술자가 필라멘트 전구 하나를 켜고 앉아 있는 모습은 가히 명품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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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아크릴(21×31㎝)


나의 서랍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처음에는 차곡차곡 정리를 잘했었는데 물건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버렸습니다. 이제는 그 많았던 서랍 속 공간이 꽉 차 버렸습니다. 버리기 아까워서,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몰라서, 넣을 데가 없어서, 금방 다시 쓸 거 같아서, 그냥 막 보이는 빈 공간에 집어넣다 보니 이제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새로운 서랍을 만들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공간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서랍을 열어놓고 물구나무서기를 한번 한 다음,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정리해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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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고흐와 고갱, 세잔으로 대표되는 인상파는 고전 미술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능적 감성을 마음껏 표현했다. 서양 미술은 고대 이집트부터 19세기까지 감각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해 왔기에 이 단절은 아주 특이한 사건이다. 이 흐름은 피카소와 마티스, 몬드리안과 바우하우스로 이어져 현대 추상주의 미술과 모더니즘 디자인 양식을 낳았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 한국 미술과 공예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세기 한국 공예의 특징은 달항아리의 재발견이다. 왜 18세기 달항아리가 20세기 한국 공예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말레비치의 ‘흰사각형’과 같은 러시아 절대주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추상 양식으로서 세계 미술의 흐름을 따랐다고 할까.


달항아리 이전에는 청화백자가 있었다. 청화백자의 화려한 그림들은 청나라 그림책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를 모방했다. 청화백자 이전에는 고려청자가 있었다. 고려청자의 도상들도 12세기 북송의 영향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고려청자와 청화백자, 달항아리는 모두 중국과 러시아의 미술 양식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도자기에는 서양 인상파처럼 자신의 본능적 감성을 마음껏 표현한 그림이 없을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해주백자(사진)에는 독특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주로 물고기와 꽃이 소재인데 필체가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이다. 그림 양식도 독특해서 어디의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아! 한국에도 인상파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해주백자를 보면 이중섭과 박수근이 떠오른다. 이들은 서양의 표현 기법을 가져왔지만 소재와 표현만큼은 무척 개인적이다. 해주백자 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한 사람의 장인으로서 자신의 본능적 감성을 맘껏 표현했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주변 나라들을 모방하는 기존 관행과 단절한 이 무명의 장인들이야말로 ‘한국의 인상파’라 불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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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5, 캔버스에 유채, 79.5×79.5㎝,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 ‘검은 사각형’에는 두 개의 그림층이 숨어 있다. 가장 아래에는 입체 미래주의 화풍의 그림이, 그 위로는 회화의 의미를 고민하던 그가 새로운 형식을 실험한 흔적이 있다. 물질이 지배하는 현실세계를 재현하는 역할로부터 회화를 독립시키고 싶었던 그는 고민이 축적된 캔버스를 검은색으로 덮은 작품 ‘검은 사각형’을 발표하면서 재현을 벗어난 순수표현을 주창하는 ‘절대주의’를 탄생시켰다.


철저한 무에서 시작할 때 비로소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말레비치의 도전은 예술의 낡은 병폐를 묵인하고 추종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검은 사각형’의 의미를 확장시키며 자신의 예술관을 설파했다.


‘검은 사각형’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2015년, 연구자들은 검은 사각형 주변 흰 테두리에서 “어두운 동굴 속 흑인들의 전투”라는 글귀를 찾아냈다. 말레비치가 남긴 이 글로부터 학자들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알레가 1882년 발표한 작품을 떠올렸다.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시대의 엄숙주의를 풍자하던 예술가 알레는 검은 직사각형 아래로 “어두운 동굴에서 흑인들의 전투”라고 써놓은 작품을 발표했다. ‘너무 어두워서 분간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로도 해석한다는 이 문구를 말레비치가 작품 한쪽에 적어놓은 것으로 보아, 그가 알레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지난 화요일, 인스타그램의 타임라인에 두 예술가의 작품을 닮은 검은 사각형이 차올랐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갈등이 표면화되고, 사람들은 검은 사각형으로 지지의 마음을 전했다. 검은 사각형은 또 하나 무거운 의미를 짊어졌으니, 이제 어둠을 걷어내고 분별을 세울 시간이 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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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다방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카페다. 아니 카페 그 이상이었다. 아침에 모닝커피를 시키면 단골손님에게 계란 노른자 하나를 동동 띄워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다방에서 사무를 본다. 


이들의 호칭은 대개 ‘사장님’이다. 이들을 만나러 온 손님이 드나드니 매상도 올라가고, 때때로 마담이나 여종업원에게 쌍화탕도 사주고 여러 인생사도 들려준다. 이를테면 한국식 ‘살롱’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다방은 어느 때부턴가 ‘티켓 다방’의 형태를 띠며 ‘불온’한 공간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사라져가는 향수의 공간으로 변했다. 지금은 도시 한구석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100원짜리 내기 화투도 치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방에 내려가서 지인과 잠시 이야기할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 ‘산골다방’이었다. 마담은 권태로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다방 안은 벽이며 천장이며 소파며 심지어 커피 잔까지 모두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2000원짜리 ‘다방커피’ 한 잔씩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마담이 슬그머니 우리 곁에 앉았다. 손님은 없고 마담의 신세한탄을 들어주다가 점심때가 되자 우리에게 식사를 권한다. 


시골다방에서 우리 일행은 마담의 권유로 백반을 시켜 먹었다. 마담언니가 한사코 돈을 내버린다. 다방커피 한 잔에 2000원을 받아가지고 이래서야 언제 돈을 벌 것인가. 그러나 마담은 한때 남도 지방에서 밥깨나 먹는 부농의 집에서 태어났다고, 그래서 아끼는 것보다 써야 마음이 편하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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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 펜(29×18㎝)


지금 하는 일은 있지만 해보고 싶은 것은 여러 개 있습니다.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을 찾아내는 탐험가, 모두에게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 조그만 예쁜 가게를 운영하는 게으른 주인 등등. 그러나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인생이 주욱 평탄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어떤 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니다. 고민에 정답은 없지만, 그때가 되면 내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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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옥수동 고가 하부 틈 속 놀이터. 도시 속 다양한 여백의 공간에서 어린이는 자신만의 틈을 찾아 노는 체험을 통해 누구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을 배운다. 만아츠만액츠


엇비슷한 아파트들로 도시가 빼곡히 채워지기 이전 주택들로 이루어진 나의 동네는 모든 집들이 각기 다른 놀이터였다. 담장과 집의 틈, 계단 아래 틈, 다락, 벽장 안의 틈, 지하창고. 자신만의 놀이로 채울 수 있는 실로 다양하고 풍성한 틈들이 있었다. 주변 곳곳에 규정되지 않은 틈을 나만의 개성적인 놀이터로 활용한 것이, 돌이켜보면 오늘날 건축가로서 창의적인 발상을 하게 만든 중요한 밑거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서의 ‘틈’이란 한자로 ‘사이 간(間)’에 해당한다. 건축은 인간(人間)이 앞으로 보낼 시간(時間)을 위한 공간(空間)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사람들 사이의 틈’, 시간은 ‘순간순간 사이의 틈’, 공간이란 ‘관계 짓기를 위한 틈’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이 중요한 ‘틈’들을 얼마나 의미 있게 채우며 살아갈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늘 건축가로서 고민하는 것이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다. 어린이도 대부분 시설의 중요한 이용자이므로 어떻게든 나는 항상 호기심이 가득 넘치는 이들을 위해 아무리 딱딱한 건축이라도 재미있는 ‘틈’을 담아내려 애쓴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가 무색하게 매번 현실에서 틈새는 잠재적 사고의 요인으로서 철저히 배척당한다. 관리자에 의해 갑자기 답답한 난간 벽이 들어서거나, 커다란 화분으로 생뚱맞게 채워지고 만다. 우리 사회와 교육은 늘 어린이의 창의력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성과 창의성을 키우도록 하는 발상과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배제하고 철저하게 관리된 환경에서 마음껏 뛰어놀라는 것은 모순이다. 올라가다 넘어지면 위험하다는 것도 모르고 자라는 아이가 자기관리 능력을 스스로 체득할 수 있을까. 과잉보호 속에서 아이가 살아 있는 긴장감을 느끼고, 스스로 뭔가를 궁리하고 타개하는 창조력을 키울 수 있을까.


<비밀기지 만들기>의 저자 오가타 다카히로는 이렇게 말한다. “위기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은 실제 위험에 둔감하다.” 창의적인 놀이터란 크고 작은 다양한 위험들을 경험하는 일과 같다. 어린이들의 가장 큰 불행은 일상 속에서 마음껏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공간적 틈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여기저기 틈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또 산과 들로 확장되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어른이 정해준 규칙이나 틀이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스스로 궁리해서 놀이를 만들고 또 다소의 상처를 입으며 건강하게 성장했다. 자연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고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아픔이 뒤따른다는 것도 배웠다.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어린이를 과보호의 테두리 속에 억압하는 부모와 사회 시스템이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립성을 방해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진만 건축가 jojinm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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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쳉, 특사 삼부작, 2015~2017. ⓒ이안 쳉


다들, 이런 세상이 올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다만 그 시점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을 뿐. 그렇다면, 온난화로 지구의 육지 태반이 물에 잠긴다는 날 역시 오긴 하겠다. 그날은 우리의 예상보다 가까운 미래일 수 있다. 다양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미래를 예측할 테지만, 다양한 정보값이, 다양한 변수와 엮여 계산하는 미래의 사건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에 기대 설마 그날이 올 리 없다는 믿음은 성장하고,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금껏 해왔던 방식 그대로 지키려는 용기 내지는 만용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이런 ‘신념’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우리는 생태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없더라도 생태계는 작동하죠.” 미술과 인지과학을 전공한 작가 이안 쳉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유기체의 세계를 보며,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돌아봤다. 그는 생태계의 주체는 결코 인간이 아니며, 무한한 변화 역시 인간이 속해 있는 생태계에만 한정된 원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태계를 컴퓨터 안에 창조했다. 사람, 동물, 나무 등의 움직임을 캡처하여 기본 데이터를 확보한 뒤, 여기에 비디오 게임 엔진을 더하여 라이브 시뮬레이션 작업을 탄생시켰다.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은 인간의 신경망처럼 작동하면서 정보를 엮고, 캐릭터를 성장시킨다. 캐릭터는 급기야 스스로 행동양식을 만들고 성격을 구축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들 삶의 환경을 만들어간다. 또 하나의 우주를 여는 컴퓨터는 이제 ‘메커니즘’을 벗어나 생태계가 되었고, 그곳에 인간은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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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영산강연작. 2020. ⓒ김지연


영산강을 찍으러 가다가 광주 동하에 들렀더니 ‘만귀정’이라는 조선시대 정자가 보인다. 중학교 때 친구가 살던 동네이기도 했는데 자주 놀러가면서도 이 정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다녔다. 정자는 나와는 관계없는 한량들이나 놀던 곳으로 알았다. 우연히 들렀지만 이제 보니 경치도 좋고 정자도 수려했다. 공사 중인지 연못에 물이 없어 운치를 더하지는 않았는데 정자의 기초석이 훤칠하게 높아 디딤돌을 딛고서야 난간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디딤돌은 차돌처럼 야무지고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돌았다.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이 자리에서 ‘아무개’들의 발디딤 노릇을 했으리라. 원래부터 야무진 놈을 가져다 놓았겠지만 누군가의 발에 다지고 다져진 몸매일 것이다. 마당을 건너 토방이 있고 토방 위에는 디딤돌이 놓이는 것이 한옥의 전형일 것이다. 디딤돌 위에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가족의 출타 여부를 알리기도 했다. 이제는 서양식 주택과 아파트 생활에 밀려 한옥 마당의 디딤돌은 사라지고 없다.


하기야 모두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이니 누구를 위해서 발디딤이 되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누군가가 자기를 딛고 올라선다는 것이 꺼려져야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밝히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스스로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이만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자취를 알 수 없는 옛 친구 집을 훑어보다가 정자 아래서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디딤돌이 눈에 들어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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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 펜(24×24㎝)


뿔이 났습니다. 온몸에서 나도 모르게 하나둘씩 뿔이 불쑥불쑥 솟아났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고 몰랑거렸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크고 딱딱하고 날카로워졌습니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화가 날 때마다 뿔은 점점 더 커지고 많아졌습니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느긋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은 해보지만, 갑자기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화를 다스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여기저기 솟아나 있는 이 보기 싫은 뿔들은 이제 나의 얼굴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화낼 일이 줄어들었을 때, 뿔들이 닳고 닳아서 둥글둥글해지거나 부서져서 작아졌을 때, 그때서야 다시 나의 본모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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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강남스타일 말춤 조형물, 삼성동 코엑스 앞, 2016.


기존 공공미술의 목적은 예술 향유 확장, 문화 소외지역 환경 개선 및 지역공동체 화두의 예술적 실천에 있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들의 다수는 무엇보다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을 중시한다. 정부의 국정과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문예진흥법이 제정될 당시 생겨나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건축물미술작품제도’를 비롯해, 오늘날 여러 지자체에서 앞다퉈 시행 중인 공공미술 사업 역시 같은 맥락이다. 모두 예술가의 일자리 배양을 통한 소득증대라는 속뜻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긍정적인 의도와 투입되는 막대한 세금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다는 점이다. 공적 영역은 진입이 까다롭고 민간 건축주가 발주하는 사적 영역에선 미술인들에게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나마 뭐라도 하나 설치하려면 거간꾼들이 이리저리 떼어가는 통에 경제적 이익도 거의 없다. 


특히 공공미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공공의 공간에서 마구잡이로 펼쳐지는 프로젝트들은 그 자체로 예산낭비이기 일쑤이고, 건축주와 이중계약으로 재료비 정도만 받고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은 예술인 소득은커녕 시민들에게 심리적·정서적 고통을 유발하는 작품들만 양산하는 원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처음 공공미술 관련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


진정 예술가들을 위한다면 정부와 지자체부터 다분히 정치적이고 형식적이며 전시성이 강한 공공미술 사업을 멈추고 보다 근본적인 복지 마련에 관심을 두는 게 옳다. 예술인 자녀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거나, 예술가 직업전환 프로그램 구축, 예술인연금과 예술인금고와 같이 예술 복지 초석을 다지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문화체육관광부가 10년 전부터 주최하고 있는 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연간 예산 20억원이면 100만원씩 2000명의 미술인들에게 창작비를 지원할 수 있다. 평균 억대를 넘나들지만 조악하기 짝이 없는 상징조형물 하나 세울 돈이면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작업실이나 전·월세 지원도 가능하다.


일자리 창출은 시장과 산업이 연계된 관점에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같은 예산이라도 예술가의 입장에서 실천하는 정책의 변화와 함께 지원방식의 변화 또한 요구된다. 적어도 예술인을 용역으로 전락시키는 환경미화사업을 통한 단발성 일자리 생성은 의미가 없다. 


밝고 건강한 문화예술의 미래를 위한다면 예술적 비전과 창작동기 부여, 미적 성과를 제공하는 방향에서의 예술정책이 훨씬 건설적이다. 인심 쓰듯 돈 몇 푼 쥐여주며 머릿수나 채우는 보여주기식 공공미술 사업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piet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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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르 카르탄슨, 방문자들, 2012, 9채널 비디오 설치 ⓒ라그나르 카르탄슨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저 방문객일까. 타인의 삶에 잠시 동행하다가 다시 자기의 길 위로 돌아와 홀로 걷는,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고독자일까.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르 카르탄슨은 아내와 헤어진 후 그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만나면 헤어지고, 시작하면 끝나는 삶의 질서는 여기저기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뉴욕에 머물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뉴욕시 북쪽 허드슨 밸리에 있는 오래된 맨션을 만났다.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맨션에는 43개의 방이 있었지만, 아무도 살지 않았다. 집주인의 가족, 지인들이 종종 들러 쉬었다 가는 은신처로 운영 중이었다. 카르탄슨은 이곳에서 보헤미안의 향기를 느꼈다.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에 얽매일 필요 없는 이 느슨한 공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는 먼저, ‘전처’가 쓴 시 ‘내 여성의 길’로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고향 레이캬비크 출신 뮤지션 8명을 뉴욕의 맨션으로 초대했다. 서로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조금은 황폐하지만 낭만적인 맨션에 모였다. 정원, 다락방, 거실, 주방 등에 자리 잡은 이들은 헤드폰을 낀 채 ‘내 여성의 길’ 연주를 시작했다. 화장실을 택한 카르탄슨은 욕조에 누워 기타를 친다.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타인의 연주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파트에 집중할 때면, 그는 진한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동료의 연주 소리가 그를 고독에서 길어올렸지만, 다시 곧 외로워졌다. 작가는 ‘인생’이라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는 이 방문자들의 시간을 담아 9채널 영상 설치 작품을 완성하고, 작품 제목으로 스웨덴 팝 밴드 아바가 마지막으로 남긴 공식 앨범의 타이틀 ‘방문자들’을 선택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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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연작. 2020. ⓒ김지연


반세기를 훌쩍 지나 고향을 찾았다. 도(道)의 경계만 건너면 닫는 거리인데 그곳으로 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우리 시대가 그렇듯 만고풍상을 겪은 땅,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는데 아픈 기억만 떠올랐기에 찾지 않은 것일까. 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내 아파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옛집은 어찌 됐는지 물었다. “아직 그대로 있어야.”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찾아간 옛집은 의외로 골격이 살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둔 것 같기도 했다. 빈집이 많은 동네를 빠져나오니 영산강이 보였다. 잊고 있었던 터라 갑자기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어제는 마음먹고 사진작업을 시작하려고 찾아갔다. 비가 온 뒤라선지 영산강에는 탁한 물결이 넘실거렸다. 강변을 지나다가 들판에 있는 밀밭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예전에는 영산강 유역이 온통 평야여서 여름에는 보리와 밀, 가을에는 벼가 익어 들판을 그득하게 채웠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언제 흰 쌀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있나 생각했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가도 들녘이 텅 빈 느낌이다. 논농사 대신에 밭농사가 늘어나고 대지는 비닐하우스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비가 내려도 멈출 사이 없이 흘러가버린 무심한 땅에 인적은 드물다.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에 서 있자니 흐르는 시간이 부질없는데, 바람은 다시 밀려와 들녘으로 물결처럼 퍼져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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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 펜(45×53㎝)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잠에서 깨어 보니 온갖 이상한 생물들이 주위에 가득합니다. 어느 책이나 영화에서 많이 본 괴물들도 있고, 처음 보는 너무나 징그러운 생명체도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전한 곳을 찾아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무섭고 징그러운 괴물들은 저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또 하나의 이상한 괴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지 그냥 쳐다보고 지나쳐 버립니다. 저도 처음에는 무서워서 구석에 숨어 있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니 자연스럽게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있는 한 마리 평범한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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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날, 2006-20083채널 HD 비디오, 6채널 지향성 사운드환경, 15분 ⓒ스마다 드레이푸스


시린 눈밭에 서서, 병풍처럼 펼쳐진 겨울산을 향해, 이제는 세상을 떠난 연인에게 안부를 묻는 외침이 쓸쓸했던 영화가 떠오른다.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도 애틋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던 감각이야말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요소였다. 공기를 진동시키며 귀를 건드리기 때문일까. 사람이 외부세계와 접촉할 때 사용하는 감각의 비율 가운데 10% 안팎을 차지한다는 청각은 꽤 촉각적이다. 그 접촉이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드는 것 같다.


“너는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란다. 내 영혼과 피보다 더 사랑하는 너를 신이 지켜줄 거야.” “목소리를 들으니 좋아요.” 해발 1000m의 골란고원에 올라선 이들은, 일년 중 단 하루, ‘어머니의날’에만 설치하는 마이크를 통해 국경 저편 가족에게 안부를 전한다. 2006년 무렵의 일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격전이 벌어지던 시기, 시리아의 땅이었으나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 일대에 살던 시리아인들은 대학교 진학을 위해서만 이 지역을 벗어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등으로 갈 수 있었다. 국경 간의 왕래가 허락되지 않는 전시 상황 속에서, 주둔군은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일년 중 하루, 특별한 상봉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그들은 목소리로 만났다.


고원 아래를 뿌옇게 채운 안개를 타고 부모와 자식의 목소리가 오간다. 혹여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목청 높여 외치는 떨리는 목소리는, ‘첨단’의 시대인데도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실어나른다. 갈등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이어야 할 텐데 늘 다른 목적에 복무하니, 여전히 제대로 가 닿지 못한 목소리는 고원을 떠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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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5·18을 생각한다> 중. 1998. ⓒ김민정


1970~1980년대에 서울에서 광주 사투리를 쓰면서 산다는 것은 거의 전과자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는 일이었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던 1960년대 초등교육을 받은 나는 ‘동학혁명’을 ‘동학란’으로 배웠다. 괜히 농민들이 봉기를 해서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여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결과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과정은 몹시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눈물 나는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단순히 외세의 힘으로 얻은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때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한 총기 난사나 지역봉쇄, 언론통제 등 전두환 정권의 악행에 앞서, 길에 나서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 한 덩이를 쥐여주던 광주 어머니들의 손길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시민군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던 택시기사들의 그 몸부림을 먼저 떠올린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은 5월26일 밤 어머니 김길자씨와의 통화에서 ‘엄마, 아무래도 창근이가 죽은 거 같아요. 긍께 창근이 생각해서라도 여기서 조금만 더 심부름하고 갈게’라고 하더니 27일 새벽에 도청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고 사진가 김민정은 사진집 <5·18을 생각한다>에서 기술하고 있다. 당시 희생자들은 ‘내 친구’ ‘내 이웃’이 이유 없이 구타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분연히 함께 일어섰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숭고한 믿음과 선에 대한 실천적 의지였기 때문에 5월의 정신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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