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대화의 기술 1200년대의 스페인 마요르카는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공존하던 지역이다. 종교갈등이 빚어내는 충돌은 빈번했지만, 문화교류에 기반한 공생 관계는 유지하던 이곳에서 태어난 라이문두스 룰루스는 정복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아버지 덕에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음유시인이 되어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부유했고, 방종했으며, 세속적”이었던 그의 삶을 바꾼 것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환상이었다. 같은 환상을 다섯 차례 경험한 뒤, 그는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교도’를 만나 개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믿음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신의 속성을 덕, 완전성, 품위, 위대함 등의 개념으로 규정한 그는 신의 존재.. 더보기
로맨틱 솔저스 이 사진은 달콤하고 유혹적인 크림이 혀끝에서 감도는 듯한 촉감을 느끼게 한다. 핑크와 청록의 조합은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화려한 성처럼 우뚝 선 케이크, 그러나 비스듬히 기운 것이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다.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면 핑크빛 꼬마 병정들과 탱크, 기관총이 진격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무기는 추상적일 수 있다. 아마 게임에서나 다뤄봤을 것이다. 그래서 전투는 ‘해볼 만하고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많은 영화가 세계 1·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루지만, 관객은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에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지만, 권력은 현실로 존재하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그동안 정쟁에.. 더보기
나를 봅니다 사진 정리를 하다가 작년 이맘때쯤의 나를 보았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다시 한번 나를 천천히 뒤돌아봅니다. 너무 게으르게 지낸 것은 아닌지, 현명하게 살고 있는지,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해보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가끔씩 이렇게 나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미래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더보기
판화의 귀환 처음엔 일본과 중국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8년 ‘한국판화협회’가 조직되고 19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설되면서 한국 현대판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판화에 관한 사회적·예술적 인식이 아주 낮아 회화의 아류나 인쇄물에 삽입되는 보조수단 정도로 치부됐다. 그럼에도 한국 현대판화의 선각자들은 우리만의 제지술과 인쇄술에 외국의 기술 및 기법을 신속히 접목하면서 자생력을 다졌다. 1970~1980년대엔 독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했고, 1988년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 판화과가 설치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전문 판화가들도 다수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판화는 조형 영역과 표현 영역에서 확연한 색깔을 드러내며 1990년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판화에 대한 대중의 .. 더보기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가노트를 읽고 난 후에 작가의 나이가 알고 싶어졌다. 쉰둘, 내 눈으로 보면 딸 같은 나이지만 젊은이들이 보면 ‘쉰 세대’에 속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나이는 언제쯤일까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시대’ 안에는 ‘아버지’라는 키워드와 ‘시대’라는 의미가 겹치면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오버랩되고 있다. 작가가 말한 아버지의 시대에는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6·10민주항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전쟁과 상처, 가난과 독재의 시대였다. 그 시대를 거쳐온 아버지는 늘 권위적이고 무뚝뚝했고 외로웠다. 이선민이 찾아 나선 사진작업은 그런 아버지 시대의 마지막 서사인지도 모른다. 윤병천씨(79)는 18세에 충남서산에서 맨몸으로 올라와 보광동 산동네에 살면서 마을 청소를 하다가 한국.. 더보기
내 서랍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의 서랍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처음에는 차곡차곡 정리를 잘했었는데 물건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버렸습니다. 이제는 그 많았던 서랍 속 공간이 꽉 차 버렸습니다. 버리기 아까워서,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몰라서, 넣을 데가 없어서, 금방 다시 쓸 거 같아서, 그냥 막 보이는 빈 공간에 집어넣다 보니 이제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새로운 서랍을 만들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공간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서랍을 열어놓고 물구나무서기를 한번 한 다음,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정리해야겠습니다. 더보기
한국의 인상파, 해주백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고흐와 고갱, 세잔으로 대표되는 인상파는 고전 미술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능적 감성을 마음껏 표현했다. 서양 미술은 고대 이집트부터 19세기까지 감각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해 왔기에 이 단절은 아주 특이한 사건이다. 이 흐름은 피카소와 마티스, 몬드리안과 바우하우스로 이어져 현대 추상주의 미술과 모더니즘 디자인 양식을 낳았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 한국 미술과 공예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세기 한국 공예의 특징은 달항아리의 재발견이다. 왜 18세기 달항아리가 20세기 한국 공예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말레비치의 ‘흰사각형’과 같은 러시아 절대주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추상 양식으로.. 더보기
블랙아웃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 ‘검은 사각형’에는 두 개의 그림층이 숨어 있다. 가장 아래에는 입체 미래주의 화풍의 그림이, 그 위로는 회화의 의미를 고민하던 그가 새로운 형식을 실험한 흔적이 있다. 물질이 지배하는 현실세계를 재현하는 역할로부터 회화를 독립시키고 싶었던 그는 고민이 축적된 캔버스를 검은색으로 덮은 작품 ‘검은 사각형’을 발표하면서 재현을 벗어난 순수표현을 주창하는 ‘절대주의’를 탄생시켰다. 철저한 무에서 시작할 때 비로소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말레비치의 도전은 예술의 낡은 병폐를 묵인하고 추종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검은 사각형’의 의미를 확장시키며 자신의 예술관을 설파했다. ‘검은 사각형’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2015년, 연구자들.. 더보기
산골다방 다방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카페다. 아니 카페 그 이상이었다. 아침에 모닝커피를 시키면 단골손님에게 계란 노른자 하나를 동동 띄워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다방에서 사무를 본다. 이들의 호칭은 대개 ‘사장님’이다. 이들을 만나러 온 손님이 드나드니 매상도 올라가고, 때때로 마담이나 여종업원에게 쌍화탕도 사주고 여러 인생사도 들려준다. 이를테면 한국식 ‘살롱’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다방은 어느 때부턴가 ‘티켓 다방’의 형태를 띠며 ‘불온’한 공간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사라져가는 향수의 공간으로 변했다. 지금은 도시 한구석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100원짜리 내기 화투도 치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방에 내려가서 지인과 잠시 이야기할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 ‘산골다방’이었다. 마담은 권태로운.. 더보기
해보고 싶은 것들 지금 하는 일은 있지만 해보고 싶은 것은 여러 개 있습니다.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을 찾아내는 탐험가, 모두에게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 조그만 예쁜 가게를 운영하는 게으른 주인 등등. 그러나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인생이 주욱 평탄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어떤 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니다. 고민에 정답은 없지만, 그때가 되면 내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보기
틈은 창의성의 근원 엇비슷한 아파트들로 도시가 빼곡히 채워지기 이전 주택들로 이루어진 나의 동네는 모든 집들이 각기 다른 놀이터였다. 담장과 집의 틈, 계단 아래 틈, 다락, 벽장 안의 틈, 지하창고. 자신만의 놀이로 채울 수 있는 실로 다양하고 풍성한 틈들이 있었다. 주변 곳곳에 규정되지 않은 틈을 나만의 개성적인 놀이터로 활용한 것이, 돌이켜보면 오늘날 건축가로서 창의적인 발상을 하게 만든 중요한 밑거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서의 ‘틈’이란 한자로 ‘사이 간(間)’에 해당한다. 건축은 인간(人間)이 앞으로 보낼 시간(時間)을 위한 공간(空間)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사람들 사이의 틈’, 시간은 ‘순간순간 사이의 틈’, 공간이란 ‘관계 짓기를 위한 틈’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이 중요한 ‘틈’들을 얼마나 의.. 더보기
인간 없는 생태계 다들, 이런 세상이 올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다만 그 시점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을 뿐. 그렇다면, 온난화로 지구의 육지 태반이 물에 잠긴다는 날 역시 오긴 하겠다. 그날은 우리의 예상보다 가까운 미래일 수 있다. 다양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미래를 예측할 테지만, 다양한 정보값이, 다양한 변수와 엮여 계산하는 미래의 사건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에 기대 설마 그날이 올 리 없다는 믿음은 성장하고,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금껏 해왔던 방식 그대로 지키려는 용기 내지는 만용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이런 ‘신념’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우리는 생태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없더라도 생태계는 작동하죠.” 미술과 인지과학을 .. 더보기
디딤돌 영산강을 찍으러 가다가 광주 동하에 들렀더니 ‘만귀정’이라는 조선시대 정자가 보인다. 중학교 때 친구가 살던 동네이기도 했는데 자주 놀러가면서도 이 정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다녔다. 정자는 나와는 관계없는 한량들이나 놀던 곳으로 알았다. 우연히 들렀지만 이제 보니 경치도 좋고 정자도 수려했다. 공사 중인지 연못에 물이 없어 운치를 더하지는 않았는데 정자의 기초석이 훤칠하게 높아 디딤돌을 딛고서야 난간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디딤돌은 차돌처럼 야무지고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돌았다.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이 자리에서 ‘아무개’들의 발디딤 노릇을 했으리라. 원래부터 야무진 놈을 가져다 놓았겠지만 누군가의 발에 다지고 다져진 몸매일 것이다. 마당을 건너 토방이 있고 토방 위에는 디딤돌이 놓이는 것이 한옥.. 더보기
[생각그림]뿔났다 뿔이 났습니다. 온몸에서 나도 모르게 하나둘씩 뿔이 불쑥불쑥 솟아났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고 몰랑거렸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크고 딱딱하고 날카로워졌습니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화가 날 때마다 뿔은 점점 더 커지고 많아졌습니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느긋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은 해보지만, 갑자기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화를 다스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여기저기 솟아나 있는 이 보기 싫은 뿔들은 이제 나의 얼굴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화낼 일이 줄어들었을 때, 뿔들이 닳고 닳아서 둥글둥글해지거나 부서져서 작아졌을 때, 그때서야 다시 나의 본모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더보기
공공미술과 허울뿐인 예술가 일자리 기존 공공미술의 목적은 예술 향유 확장, 문화 소외지역 환경 개선 및 지역공동체 화두의 예술적 실천에 있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들의 다수는 무엇보다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을 중시한다. 정부의 국정과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문예진흥법이 제정될 당시 생겨나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건축물미술작품제도’를 비롯해, 오늘날 여러 지자체에서 앞다퉈 시행 중인 공공미술 사업 역시 같은 맥락이다. 모두 예술가의 일자리 배양을 통한 소득증대라는 속뜻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긍정적인 의도와 투입되는 막대한 세금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다는 점이다. 공적 영역은 진입이 까다롭고 민간 건축주가 발주하는 사적 영역에선 미술인들에게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나마 뭐라도 하나 설치하려면 .. 더보기
방문자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저 방문객일까. 타인의 삶에 잠시 동행하다가 다시 자기의 길 위로 돌아와 홀로 걷는,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고독자일까.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르 카르탄슨은 아내와 헤어진 후 그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만나면 헤어지고, 시작하면 끝나는 삶의 질서는 여기저기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뉴욕에 머물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뉴욕시 북쪽 허드슨 밸리에 있는 오래된 맨션을 만났다.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맨션에는 43개의 방이 있었지만, 아무도 살지 않았다. 집주인의 가족, 지인들이 종종 들러 쉬었다 가는 은신처로 운영 중이었다. 카르탄슨은 이곳에서 보헤미안의 향기를 느꼈다.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에 얽매일 필요 없는 이 느슨한 공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더보기
들녘에 가득했던 곡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반세기를 훌쩍 지나 고향을 찾았다. 도(道)의 경계만 건너면 닫는 거리인데 그곳으로 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우리 시대가 그렇듯 만고풍상을 겪은 땅,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는데 아픈 기억만 떠올랐기에 찾지 않은 것일까. 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내 아파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옛집은 어찌 됐는지 물었다. “아직 그대로 있어야.”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찾아간 옛집은 의외로 골격이 살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둔 것 같기도 했다. 빈집이 많은 동네를 빠져나오니 영산강이 보였다. 잊고 있었던 터라 갑자기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어제는 마음먹고 사진작업을 시작하려고 찾아갔다. 비가 온 뒤라선지.. 더보기
괴물들이 사는 나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잠에서 깨어 보니 온갖 이상한 생물들이 주위에 가득합니다. 어느 책이나 영화에서 많이 본 괴물들도 있고, 처음 보는 너무나 징그러운 생명체도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전한 곳을 찾아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무섭고 징그러운 괴물들은 저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또 하나의 이상한 괴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지 그냥 쳐다보고 지나쳐 버립니다. 저도 처음에는 무서워서 구석에 숨어 있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니 자연스럽게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있는 한 마리 평범한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더보기
샤우팅 힐 시린 눈밭에 서서, 병풍처럼 펼쳐진 겨울산을 향해, 이제는 세상을 떠난 연인에게 안부를 묻는 외침이 쓸쓸했던 영화가 떠오른다.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도 애틋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던 감각이야말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요소였다. 공기를 진동시키며 귀를 건드리기 때문일까. 사람이 외부세계와 접촉할 때 사용하는 감각의 비율 가운데 10% 안팎을 차지한다는 청각은 꽤 촉각적이다. 그 접촉이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드는 것 같다. “너는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란다. 내 영혼과 피보다 더 사랑하는 너를 신이 지켜줄 거야.” “목소리를 들으니 좋아요.” 해발 1000m의 골란고원에 올라선 이들은, 일년 중 단 하루, ‘어머니의날’에만.. 더보기
광주시민 1970~1980년대에 서울에서 광주 사투리를 쓰면서 산다는 것은 거의 전과자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는 일이었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던 1960년대 초등교육을 받은 나는 ‘동학혁명’을 ‘동학란’으로 배웠다. 괜히 농민들이 봉기를 해서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여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결과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과정은 몹시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눈물 나는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단순히 외세의 힘으로 얻은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때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한 총기 난사나 지역봉쇄, 언론통제 등 전두환 정권의 악행에 앞서, 길에 나서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 한 덩이를 쥐여주던 광주 어머니들의 손길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시민군을 병원으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