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썸네일형 리스트형 낯선 도시를 걷다 방병상, 삼성역, 고개숙인 여자, 2001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고 해서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우리는 숱한 얼굴들과 마주쳤지만 그 누구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오히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하릴없이 휴대폰을 뒤적거린다. 도시라는 공룡 뱃속에서는 혹시라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내가 그의 꽃이 될까봐 불안하다. 우리는 그 자체가 섬일 뿐이다. 방병상의 ‘낯선 도시를 걷다’ 연작은 대도시의 익명성과 장소성을 시각적으로 탐색한 탁월한 작업이다. 그의 사진이 포착한 장소들은 너무 낯익어서 오히려 낯설다. 삼성역 주변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무료한 표정들이다. 놀랍게도 북적거리는 그곳에서 시선들은 어느 하나 만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절묘하게 서.. 더보기 경계의 땅 심학철, 두만강변의 조선군인, 2010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지 못한 풍경은 슬퍼 보인다. 산인데 오르지 못하고, 강인데 건너지 못하면 그것은 분명 순리를 거스르는 어떤 사연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사연들은 대개가 사람 탓인데, 한번 만들어내고 나면 사람도 어찌하지 못한다. 자연을 볼모로 삼은 이념과 국경의 장벽들은 눈에 띄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주변 삶을 옥죈다. 심학철의 ‘경계의 땅’은 이런 연유로 넘나들 수 없게 된 두만강변의 풍경에 관한 작업이다. 지린(吉林)성에서 태어난 조선족 3세인 그 또한 쉽사리 강을 넘을 수 없기에 그는 늘 강 저편의 북한 땅을 바라볼 뿐이다. 강 이쪽 편은 큰물이 지나갔는지 흙이 파여 나갔지만 얼핏 보기에는 나무가 울창한 고즈넉한 강변 풍경이다. 그러나 강가에 앉아 사.. 더보기 태양들 페넬로프 움브리코, 2006년 1월26일, 플리커의 일몰 사진에서 얻은 54만1795개의 태양 중 일부. 페넬로프 움브리코는 인터넷 시대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이미지들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견 작가다. 홈쇼핑의 상품 책자, 이베이와 같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 등의 이미지들을 새롭게 재구성해 상품 이미지들이 우리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이미지의 덫에 걸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에게 대량 생산된 이미지들은 가짜의 세상을 믿게 만드는 속임수이거나, 우리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의 산물이다. 그녀가 플리커라는 사진 공유 사이트에서 캡처해온 태양 사진들은 이런 작가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사이트에 올라온 일몰 사진들을 다운받아 그 사진 속에서.. 더보기 달빛 없는 밤 “산타클로스, 당신이 오기 전에는 삶이 달빛 없는 밤 같았습니다.” 한 편의 시 같은 이 말은 사진 작품의 제목이다. 이탈리아 사진가 안드레아 알레시오의 작품을 보고 어느 큐레이터가 붙여줬다. 어쩌면 우리는 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산타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타는 신보다 더 친근하고 더 쉽게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어김없이 일 년 단위의 기다림을 선물해준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워하기 위해 존재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두운 밤을 가로질러 찾아올 산타가 아니라,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위해 반짝인다. 따지고보면 달빛조차 없는 듯한 삶이 싫어 우리는 영원히 산타를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드레아 알레시오, Before You, San.. 더보기 기념일 무릇 ‘작품’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이 사진은 모든 것을 한 번에 말해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 속 그 분은 지금 ‘개’가 되어 있다. 배경에 즐비한 버선과 목걸이로 보아 그 분은 여자도 좀 밝힌 듯하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평소 사는 멋을 좀 아는 분이었을 텐데 완전히 망가졌다. 술이 원수라거나 ‘망년회’가 한 해를 망친다는 진부한 교훈을 위한 좋은 사례 같기도 하다. 사진가 난다의 ‘기념일’ 연작은 이렇듯 각종 기념일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와 은유로 가득하다. 작가는 기념일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면서, 굳이 직설과 독설을 감추지 않는다. 어버이날의 엄마는 제단에 바쳐진 살찐 ‘돼지’처럼 보이며, 생일을 맞이한 아이는 ‘괴물’처럼.. 더보기 안보관광 임태훈, 안보관광, 2013 안보를 관광하는 것이란 도대체 뭘까. 안보관광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안보와 가장 관련이 있는 비무장지대 지역이나 임진각 등을 둘러보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 혹은 외국인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둘러보는 것은 아니니 관광이나 여행이라는 말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파주를 중심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의 인근 지자체들은 이 안보관광에 꽤 열을 올리는 눈치다. 전쟁의 불안을 가장 뜨겁게 안고 있는 군부대 밀집지역이라는 편견을 깬 역발상이라고나 할까.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강조한 관광 활성화로 휴전선 인근의 도시들은 오히려 더 활기를 띠는 것 같기도 하다. 임태훈의 ‘안보관광’ 연작들은 안보와 관광이라는 이질적.. 더보기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임안나,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02, 2011 현대 문명의 특성을 속도의 질주로 보고 있는 속도사상가 폴 비릴리오에게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더 멀리 더 빨리 보고자 하는 지각의 병참학과 맞닿아 있다. 적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해 선제공격을 하는 것만이 가장 효율적인 승리인 것처럼, 우리는 인공위성과 감시카메라와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현실 사회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시각적 점령을 욕망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이 스펙터클해진다. 영화는 전쟁처럼, 전쟁은 영화처럼 시각적 강렬함을 흉내 내고, 결국 그 둘은 현실이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한다. 임안나의 ‘클라이맥스의 재구성’은 이 스펙터클 사회에 대한 시각적 은유다. 영화에서만 보던 무기들의 실제 몸값과 놀라운 파괴력을 알았을 .. 더보기 아무렇지 않은 날 정주하, 불안, 불-안, 2005 바닷가에서 사내가 투망을 하고 있다. 밀물 때라 운이 좋으면 잡어라도 몇 마리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군데군데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여름의 끝 혹은 여름의 시작을 앞에 둔 바닷가 마을은 꽤 평화로워 보인다. 단정하고 안정감 있는 사진의 구도는 이 나른한 풍경이 영원할 것 같은 신뢰감마저 풍긴다. 다만 오른쪽으로 눈에 들어오는 원자력 발전소의 육중한 존재감이 조금 거슬릴 뿐이다. 사진 속 일상은 이 생뚱맞은 콘크리트의 돔에 아무런 이질감도 느끼지 않는 눈치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설 때마다 그토록 무수한 반대 여론에 부딪혔건만, 막상 사진으로 보니 아무 일도 없어 보인다. 콘크리트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평범한’.. 더보기 생명나무 사려니 숲에서 한 그루 나무가 피어나고 있다. 아무렴 꽃도 아닌데 피어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무는 분명 가지마다 주렁주렁 빛을 매단 채 새롭게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깊다 못해 영험한 숲속이나 잔잔하다 못해 그윽한 바닷가처럼 나무가 태어나는 숙연한 장소들은 이 심증을 훨씬 굳히게 만든다. 마치 영화 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자연이 온 힘을 쏟아부어 한 그루 나무에 땅 밑의 모든 기운들을 모아주고 있는 듯한 숙연함마저 든다. 이정록은 이렇듯 한 그루 나무를 성스러운 장소로 옮겨와 새롭게 생명을 주는 일을 벌이고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이정록의 행위에 쓰이는 나무 또한 예사로울 수가 없으니, 작가에게 작품 속 나무는 ‘신목’이나 다름없다. 무속신앙에서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만나는 거.. 더보기 사탕꽃 사탕이 달콤하기로서니 작품의 소재가 될 만큼 대단한 물건일까. 그러나 포장을 뜯어낸 뒤 화려한 꽃의 모양새를 갖추면 얘기는 달라진다. 구성연은 우리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모양의 사탕을 모아 모란꽃을 피워낸다. 실제 모란꽃보다도 더 현란한 그 사탕꽃들은 작가의 손놀림에 따라 두 폭 병풍이 되기도 하고, 화분에 꽂힌 단아한 정물이 되기도 한다. 모양이며 빛깔이 하도 정교해서 볼수록 매혹적인 사탕꽃을 빚어낸 작가의 솜씨는 가히 장인에 가깝다. 어쩌면 그녀가 만들어낸 최종 작품은 사탕꽃이고, 사진은 그저 그 꽃의 기록물에 불과하다는 착각마저도 인다. 그럼에도 구성연이 사탕꽃 아티스트가 아니라 사진가인 이유는 바로 이 착각에 있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가짜인 대상을 찍음으로써 사진이 사실적 재현이고, 사진.. 더보기 묵정 묵정동은 먹색으로 보일 만큼 깊은 우물이 있던 동네의 이름이다. 지금 이곳에는 우물 대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여성병원이 자리해 있다. 그리고 이 병원에는 누군가의 엄마로 혹은 딸로 살아오던 여자들이 아파서 찾아온다. 큰 병원을 찾을 정도면 작은 병은 아닐 터이고, 그런 병을 앓고 있는 여자들의 속은 이미 깊고도 검다. 한경은의 ‘묵정’은 난소암을 앓고 있는 엄마가 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시작했다. 엄마 곁에서 간호하고 응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은이 엄마’가 아니라 ‘명호씨’라는 여자의 인생이 되뇌어졌다. 그렇게 해서 기록을 시작한 명호씨의 투병기는 같은 병동에 입원한 엄마 또래의 ‘이모’들에게까지 번져갔다. 작가는 자궁암이나 유방암 등 여성만의 질환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환자들을 복도를 배경 삼.. 더보기 포획된 자연 자연스럽다는 말은 들을수록 기분이 좋다. 그것은 순리에 따라 사물의 핵심에 다가갔다는 뜻이니 진정한 내공이 있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본래 ‘자연’이라는 것 자체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진가 박형렬은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던 어느 날, 산에 올라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연들이 죄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인공 자연’이라는 말이 흔해진 요즘 나무는 콘크리트 화단 속에서 자라고, 땅은 1평 단위로 셈해지는 부동산이 되었다. 이제는 자연조차도 부자연스러운 괴물이 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박형렬의 ‘포획된 자연’은 이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꼬집는 작업이다. 거대한 자연을 조몰락거리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헛심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더보기 얼굴 없는 얼굴 영화이론가 자크 오몽은 세상에는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각자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얼굴은 감정의 집합소, 소통을 위한 최전방의 신체, 나를 나이도록 만드는 동시에 남이 나와 다름을 깨닫게 하는 철학적 대상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얼굴은 욕망 혹은 소비의 또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얼굴은 흔히 우리가 걸친 옷, 지닌 물건과 같은 말로 비친다.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 그 모습을 확인하는 내 얼굴을 위해 우리는 치장하고 소유하고 집착한다. 김국화의 ‘얼굴 없는 얼굴’은 이 사물들로 얼굴을 대체한 작업이다. 작가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물건, 매일 들고 다니는 소품들로 얼굴을 감싼 채 그들의 얼굴 없는 초상 작업을 만들었다. 얼굴 가.. 더보기 다섯 단계의 모노드라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은 예기치 않은 어떤 사건과 함께 변화를 맞이한다. 늘 작업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나날이기만 할 것 같았던 사진가 임형태에게 그 변화는 조금 놀랍게 찾아왔다. ‘암에 걸렸습니다’라는 진단과 함께. 그러나 그 당혹스러운 현실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신파가 아니다. 그는 일단 암환자가 겪게 되는 다섯 단계의 감정 변화 중 첫 번째인 ‘부정’ 상태를 작업으로 풀어내기로 결심했다. 작품 제목인 ‘I see’는 분노의 단계를 일컫는 영어 표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단계가 부정이지만, 작가는 이 감정을 훨씬 재치 있고 상상력 넘치게 형상화한다. 지천에 널린 고기는 놔둔 채 어망 가득 탁구공만 잡.. 더보기 이전 1 ···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