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미로와 미궁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포세이돈이 자기를 위한 제물로 쓰라고 보낸 흰 황소를 왕비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신에게 바치지 않았다. 이에 모욕을 느낀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을 벌주기 위해 파시파에 왕비가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왕비는 몸이 달아 명장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나무로 된 가짜 암소를 만들게 하여, 그 속에 몸을 감춘 채 황소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 후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났고, 미노스왕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게 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고, 해마다 아테네 출신의 처녀 총각 각 7명을 먹이로 주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제물로 바쳐질 희생자들에 끼어 크레타로 왔다.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 더보기
깊은 가을, 밤 그림과 함께 명상을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는 대중에겐 꽤 생소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개최된 ‘17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들’전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당대에 인기 없었던 화가는 아니다. 오히려 대단히 인정받았던 작가다. 실제로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를 지냈을 정도다. 라 투르의 그림에 특별히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바로크 미술의 주요 특징인 명암의 대비가 뚜렷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법)와 더불어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종교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의 그림은 단순한 명암법이 아닌 테네브리즘(Tenebrism)에 속한다. 이탈리아어로 테네브라(tenebra·어둠).. 더보기
위험을 무릅쓴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그림 마크 로스코의 실물 회화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체험을 쏟아놓는다. 명상의 깊은 세계로 인도하는가 하면, 펑펑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진정 로스코의 추상회화는 망막을 혼란시키는 동시에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그림에 속한다. 그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자살했기 때문일까? 색면화가인 로스코는 소위 드리핑(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흩뿌리는 기법) 화가인 잭슨 폴록과 더불어 추상표현주의의 독보적 존재이다. 추상표현주의란 무엇인가? 형식은 추상이지만, 내용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태어난 추상표현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미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중에서도 색면 화가들은 전쟁의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해 실존적 입장에서 좀 더 근원적이고 강렬한 색면.. 더보기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소경들의 행진이 불안하다.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소경이 넘어지자 그를 믿고 따르던 소경도 앞으로 쓸리며 넘어지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소경들은 곧 자신이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눈치다. 다양한 표정의 얼굴에는 무지에서 오는 천진함까지 엿보인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실제 맹인의 처지는 더 이상 신의 기적을 증거하기 위한 상징적 존재가 아닌, 동정조차 받을 수 없는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그림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성서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마태복음 15장14절, 누가복음 6장39절). 이 말은 원래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우매함을 지적한 말에서 유래하는데, 지도자가 잘못되면 따르는 사람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 더보기
유혹의 메타포, 세이렌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신화 속 존재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세이렌은 가장 유혹적이고 환상적인 존재다. 고대의 세이렌은 여인의 머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중세의 세이렌은 아름다운 여인의 몸에 물고기 꼬리를 한 좀 더 에로틱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신비한 바다생물체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다. 이것으로 남자들을 유혹했고, 유혹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런데 유혹당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으니, 오디세우스였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유혹당하고 싶어 했고, 유혹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바로 귀향길에 억류되었던 섬의 마녀 키르케가 알려준 비법 때문이었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의 섬을 지날 때 밀랍을 이.. 더보기
아스파라거스에 얽힌 화가와 컬렉터 그림 그 자체보다 그림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를 반추하는 일은 그림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오늘날처럼 예술가에 대한 에피소드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더욱더 그런 스토리가 그리워진다.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로 유명한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아스파라거스’에 얽힌 에피소드가 꼭 그렇다. 어느날 한 컬렉터가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 그림을 사갔다. 그런데 그 컬렉터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200프랑을 더 얹어주었다. 모두 깎으려고만 하는 세상에 그림이 좋다고 기분 좋게 웃돈을 더 얹어주다니, 참으로 드문 일이 일이 아닌가! 이럴 때 수집가는 예술가보다 한 수 위인 예술가가 된다. 그러자 마네는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만 있는 그림을 따로 그려 보내면서, “선생님이 사 가신 그림에서 한 줄기가.. 더보기
너무 닮아서 낯선 극사실 회화가 있듯이 극사실 조각이 있다. 마치 영국의 밀납박물관 ‘마담 투소’에 가면 볼 수 있는 유명스타들의 인형이 바로 극사실 조각에 해당한다. 그곳에 가면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클린턴에서 부시에 이르기까지 유명스타 인형들이 진짜처럼 우리를 반긴다. 어찌나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지 정말 기이하고 섬뜩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인형들을 예술작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예술적 맥락 안에 놓여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예술은 모방 혹은 재현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호주 태생의 론 뮤엑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형을 기막히게 잘 만들어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 사사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어린이 대상 TV와 영.. 더보기
메두사, 양성성의 신화 애초 아름다운 처녀였던 메두사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동침한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처녀신 아테나는 결혼을 염두에 둘 만큼 포세이돈을 사랑했지만, 그는 아테나에게 별 매력을 못 느꼈던 것이다. 그런 포세이돈이 메두사라는 묘령의 여인과 정사를, 그것도 자기 사당에서 치렀다는 사실은 아테나를 엄청난 질투와 분노에 떨게 했다. 결국 아테나의 저주로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뱀들로 변했고, 얼굴도 흉측하게 변해버렸다. 이때부터 메두사의 시선과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돌로 변했다. 훗날 메두사는 아테나와 공모한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의 경고에 따라 그녀를 직접 보지 않고 방패에 비추어 보면서 죽여야 했다. 그 머리는 아테나의 방패 혹은 옷에 장식되었다. 바로크 화가들은 이 드라마틱한.. 더보기
철의 바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조각가 리처드 세라는 철을 물결처럼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무겁고, 거칠고, 위험해 보이는 철로 부드럽고, 유약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만든다. 마치 내 마음대로 안되는 상대를 구슬러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딱딱한 물질을 부드러운 물질로 바꾸고, 작은 물건을 큰 물건으로 바꾸어 놓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크게 감동시킨다. 현대미술은 발상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세라는 영문학도 출신으로 예일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때 생계를 위해 제철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의 세라를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200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개관 기념전의 단독 작가로 초대되었다. 세라의 두 번째.. 더보기
메아리와 수선화 강의 신 케피소스가 강의 요정 리리오페를 감싸안았다. 리리오페는 달이 차올라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어찌나 예쁘던지 보는 사람들마다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런 까닭에 이름을 ‘망연자실’, 즉 ‘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테이레시아스는 나르키소스가 평생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면 오래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나르키소스의 미모 속에 도사린 파괴적 결말을, 그의 불운한 운명을 직감했던 것이다. 어느 날, 헤라의 징벌로 반벙어리가 된 요정 에코가 나르키소스를 보고 반했다. 얼씬거리며 말을 걸고 싶었지만, 나르키소스의 말만 따라할 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조롱한다고 생각, 자기 손을 잡는 그녀를 뿌리치며 매몰차게 떠났다. 에코는 고독 속에 나날이 야위어갔고, 결국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다... 더보기
진짜 초현실주의자 막스 에른스트 막스 에른스트, 이번 주의 친절, 1934년, 석판화독일 태생의 막스 에른스트는 초현실주의자 중의 초현실주의자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마니아들은 그를 최고의 초현실주의자로 간주한다. 에른스트는 프로이트적인 잠재의식을 화면에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프로타주(frottage: 문지르기)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년 시절 그는 마룻바닥에 종이를 대고 긁으면 나타나는 형상에 매료되었다. 그것을 무의식의 자동기술법이라고 생각했다. 에른스트의 작품에 집요하게 드러나는 어떤 형상이 있다. 새 부리 형상을 한 로플롭이다. 이 새 인간은 에른스트가 개발한 분신이자 페르소나다. 마치 마르셀 뒤샹이 로즈 셀라비라는 여자를 만들어낸 것처럼. 에른스트는 유년 시절 사랑했던 .. 더보기
밀레보다 더 유명한 밀레가 활동했던 시절, 그의 ‘이삭줍기’보다 훨씬 더 인기 있었던 그림이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인 쥘 브르통(Julles Breton)의 그림인데, 당시 살롱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황량한 들판의 저녁 무렵, 남루한 복장의 한 무리 여성들이 짚단을 이거나 든 채 걷고 있고, 몇몇은 아쉬운 듯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이삭을 줍고 있다. 여인들은 추수가 다 끝난 대지주의 밭에서 바닥에 흩어진 지푸라기를 주우러 온 가난한 농민들이다. 사실 이 풍경 속에는 짠한 스토리가 숨겨 있다. 당대 프랑스 소작민들은 추수 후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갈 수 있도록 허락됐지만, 동시에 이삭줍기는 가장 천한 일로 여겨졌던 것. 이 작품을 두고 당대 보수적 비평가들은 사실주의의 정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혹 그들이 칭송한 것.. 더보기
‘아를의 카페’라는 환상 서른세 살 늦은 나이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반 고흐.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나쳤다. 네덜란드에서 온 반 고흐가 파리에서 목격한 것은 인상주의자들이 더 귀하고 더 나은 목표에 쏟아야 할 열정으로 서로를 헐뜯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리스 조각 등 고전미술이 성취했던 고요하고 단순한 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사상을 가진 공동체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1888년, 그는 파리의 불협화음으로부터 벗어나 고갱과 같은 친구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이상적인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자신과는 매우 다른 기질을 가진 고갱을 초대해 공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기로 약속을 받아내고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남부도시 아를은 아주 적막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시골마을이었다. 오락거리라고는 찾아보기.. 더보기
토템적 식사 서양미술사에서 사투르누스(로마식 이름, 그리스 신화는 크로노스)는 큰 낫을 든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사투르누스는 그 낫으로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인간의 소중한 시간을 무자비하게 베어가는 늙은 거인으로 묘사되곤 했던 것. 이 시간의 노인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태초에 혼돈(카오스)에서 가이아(대지의 여신)가 생겨났고, 가이아는 자신의 아들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교접해서 사투르누스를 낳는다. 그러나 가이아가 100개의 팔을 가진 거인들과 외눈박이 거인들을 낳으려고 하자 우라노스가 그들을 땅속에 다시 밀어넣었다. 이런 우라노스의 폭압에 분개한 가이아는 아들 사투르누스를 사주해 우라노스를 낫으로 거세해 죽인다. 우라노스가 죽어가면서 남긴 말 한마디는 “너도 네 자식의.. 더보기
바니타스와 미니멀 미술관 한구석에 사탕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것이 진짜 사탕일까 하고 의아해 하는 순간 사탕을 가져가도 좋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만 보니 관람객들이 사탕을 오물거리며 빨아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미술관 한쪽에 사탕이나 인쇄물을 배치하고 그것을 맘대로 가져가게 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마치 ‘작품을 만지지 말라’는 미술관의 권위에 은근히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토레스는 엄숙, 우아, 숭고의 상징인 미술관의 암묵적 금기들을 관객들 스스로 파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편견에 맞설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토레스의 작품은 관객이 손을 대는 순간,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작품에는 아주 사적인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1957년 쿠바 태생인 토레스는 3.. 더보기
신과 맞짱 뜰 수 있는 예술 어느 날 아테나는 자기가 만들어 불던 아울로스(aulos: 일종의 피리)를 천궁 아래 낭떠러지로 던져 버린다. 피리를 불면 입이 불룩해지는 것이 여신으로서 여간 민망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강의 정령이자 반인반수인 마르시아스가 여신이 버린 피리를 줍는다. 입에 대고 불어보니 솔솔 소리가 나는 것이 여간 청명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피리 부는 재미에 푹 빠진 마르시아스는 실력이 급진전을 보이자, 아폴론의 리라 연주보다 자신의 아울로스 연주가 더 낫다고 떠들고 다닌다. 화가 난 아폴론은 미다스왕을 포함한 인간들을 모아놓고 연주대결을 하자고 한다. 벌칙은 지는 자가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는 것! 연주가 끝나고 모든 심판들은 아폴론의 리라 연주에 손을 들어준다. 단지 미다스왕, 그러니까 만지는 것마다 .. 더보기
부채에 담긴 속 깊은 뜻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에 작자 미상으로 전하는 노래다. 우리 선조들은 부채를 여름철 선물로 보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청정하게 하고, 재앙을 몰고 오는 액귀를 몰아내는 역할을 했다. 서양미술 속에서 부채는 특별히 로코코 시대에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로코코 패션의 완성은 하이힐, 숄, 부채, 퐁탕주(가체), 모자, 액세서리 등이다. 이처럼 패션이 파편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에로티시즘이 정교화되었다는 의미다. 로코코는 뭐니 뭐니 해도 유혹과 연애의 시대가 아닌가! 특히 부채는 사교계와 시민계급의 여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장신구였다. 부채를 솜씨 있게 다.. 더보기
번개, 번뜩이는 영감 장마철의 하이라이트는 천둥과 번개다. 사람들은 자연의 이 현상을 흥분보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본다. 마치 신의 분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천둥 번개를 흥미롭게 바라본 예술가가 있다. 미국의 대지 미술가 월터 드 마리아! 그는 번개를 하늘이 그려내는 멋진 드로잉으로 격상시켰다. 그것도 매번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며, 절대로 소유 불가능한 작품으로! 1970년대 월터 드 마리아는 뉴멕시코주의 광활한 사막 들판에 길이 1.6㎞, 폭 1㎞에 7m 높이의 스테인리스 스틸 봉 400개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사각형 모양으로 설치하였다. 이 피뢰침은 의도적으로 번개를 유도하는 것으로 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번개의 섬광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뉴멕시코 디아 뉴욕미술센터의 후원 아래 영구적으로 전시 보존되고 .. 더보기
해변의 칠리다 “예술은 자연을 형이상학적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니체의 이 말을 십분 이해하게 하는 예술가가 있다. 스페인의 조각가 에두아르도 칠리다(1924-2002). 내 서재에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 있는 복사된 칠리다의 작품사진 몇 점. 나는 자주 나에게 부과된 예술가의 작품을 두고두고 좀 오래 지켜보는 편이다. 대부분 그쪽에서 말을 먼저 걸어주기를 기다리면서, 조금은 갈망하는 시선을 보낸다. 스페인 바스크 해안가에는 칠리다의 ‘바람의 빗 Wind Comb’(1977년)이 서 있다. 서로 다른 위치에 세 점의 조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바위에서 솟아나온 촉수 같기도 하고, 바닷물을 삼키는 혀 같기도 하며, 폭풍의 잔인함에 묵직하게 대응하고 있는 수호신 같기도 하다. 돌과 쇠의 만남 혹은 접촉! 어쩌면 그것은 태곳.. 더보기
[유경희의 아트살롱]‘낙원추방’과 요절한 화가 마사치오 쫓겨난 이들의 비참한 심경을 이렇게도 침통하게 표현한 그림이 있을까? 창세기 3장 8-24절에 따르면, 하느님은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인간에게 판결을 내린다.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과 남편에의 종속을, 남자에게는 노동의 형벌을 명한다. 하느님은 천사인 케루빔에게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일을 맡겼고, 케루빔은 불칼을 들고 그들을 쫓아내며 성스러운 장소를 지키고 있다. 1425년 마사치오는 피렌체의 실크 상인 브란카치 가문의 가족 예배당을 위해 ‘낙원추방’을 그렸다.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슬퍼하는 아담과 허공을 응시하며 넋이 나간 이브의 표정은 진정 압권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브의 포즈는 마치 비너스가 취하는 ‘비너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까지 하다. 비너스와 이브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