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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계곡의 이모지 인공지능이 인간 세계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 다룬 전시 ‘언캐니 밸류’의 전체 그래픽 디자인을 맡은 ‘프로세스 스튜디오’는 전시의 아이덴티티를 시각화하고 홍보하는 과정 안에 ‘이모지’의 세계를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로봇처럼 인간 아닌 존재에서 인간과의 유사성을 느끼면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그 유사성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호감은 불쾌감과 거부감으로 변한다는 이론 ‘언캐니 밸리’에서 제목을 가져온 이 전시의 메시지에 호응하면서, 그들은 DCGAN(심층 돌림형 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활용했다. 정보 생성자가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그것과 매우 유사하지만 가짜인 정보를 만들고, 정보 감별자가 그것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제와 매우 유사한 대체재를 생산하는 이 독립적인 학습법 DCGAN.. 더보기
가면 속 얼굴 가면을 쓰면 왠지 용기가 생깁니다.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껏 욕도 하고, 옷도 내 마음대로 입고, 악플도 실컷 쓸 수 있습니다. 가면을 쓴 동안에는 나는 내가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가면 속의 나는 언제나 나일 뿐입니다. 계속 그렇게 가면을 쓴 채로, 내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어느새 그 가면이 나의 얼굴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더보기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걸음 이 자리에 다시 서기까지 35년이나 걸렸다. 무려 일만삼천 날이 넘는 긴 세월을 떠나보낸 뒤에야 이 작은 둔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 근처에는 절대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그 긴 시간을 견뎌냈다는 올해 나이 여든의 최양준씨. 두려워서 올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 자리를 찾아 한 장의 사진까지 찍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82년 간첩 혐의로 부산보안대에 끌려간 그는 무자비한 고문수사를 견디다 못해 틈을 타 탈출을 시도했다. 철망과 창살로 둘러쳐진 3m 높이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일을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그가 가능케 했다. 온몸이 찢겨나간 채 피가 철철 흐르는 몸으로 그가 섰던 자리. 막 내려선 담벼락 앞에 서서 이제 살 수 있지 않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 더보기
등대의 빛 예술이나 패션처럼 건축계에도 다양한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 스타들이 존재한다. 건축학도나 새내기 건축가들은 언젠가는 스스로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며 이리저리 회전하는 등대의 불빛을 쫓아가듯 디자인을 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등대의 불빛이 지나간 뒤의 흔적을 좇는 것이고, 한번 지나간 자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다시 비추어지지 않는 법이다. 움직이는 등대에 비추어지기만을 바란다면 오히려 아무런 미동도 없이 한곳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다. 소위 유행이라 불리는 것이 디자인에 연관된 분야에 늘 존재해 왔다. 시대별로 보아도 항상 그 시대에 대표적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러한 디자인을 고안한 건축가는 아이디어를 이론화하고 설계도로 표현하기까지.. 더보기
광화문 현판 ‘광화문’은 세종대왕이 붙인 이름으로 그 뜻은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이다. 광화문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등 우리 역사의 수난 속에서 훼손과 복원의 곡절을 겪어왔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14일 광화문 현판 글자의 원래 색상이 금박이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된 현판을 떼고 새 현판을 달 것”이라고 발표했다. 옛것의 복원을 내세운 것이지만 이에 대해 다른 시각들도 있다. 한재준, 강병인 등 디자인계 많은 인사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끔 광화문 앞을 걷다가 문득 광화문을 올려다보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광화문 뒤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어릴 적 총독부를 무너뜨리는 뉴스를 스쳐가듯 접했지만 별반 감흥은 없었다. 사진을 보고서야 .. 더보기
자기와의 동행 노인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표정 너머 잔잔한 실웃음이 퍼져 있었다. 그가 사유하듯 가만히 바라보는 곳은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었다. 끊임없이 철퍼덕거리는 파도의 울림을 등 뒤에 두었지만 그는 아무런 요동 없이 고요했다. 잠시 뒤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낸 노인은 시선이 고인 그 집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단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세상에 남겨졌다. 그에게 어떤 감흥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가 어릴 적 우리 외갓집이라오. 건너편 우리집에서 거의 벌거숭이처럼 뛰어와 바다에서 멱을 감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허허허.” 한결 얼굴이 활짝 핀 노인은 “저 돌담 위에 올라앉아 바다 구경도 하고 해 떨어지는 노을풍경 보던 때가 바로 며칠 전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70여년 전 자신의 모.. 더보기
높임의 화술 “네에, 그럼 그렇게 하시죠.” 도널드 트럼프처럼 직설적인 ‘말버릇’과 거침없는 태도로 살기에는 손에 쥔 것이 너무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겸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라는 갑옷이다. 힘 있는 자가 겸손한 언행마저 갖춘다면, 그의 화술은 상급 레벨의 처세술로 칭송받을 것이니, 보통사람이라면 이 당연한 태도 위에 세련미와 재치까지 겸비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생존용 교양화술을 갖추었다 할 것이다. 박관택이 종이에 써내려간 화술은, 청유하거나, 이중부정하거나, 모호하게 흐리거나, 계속 호응하거나, 동의하고 동일시하는 식이다. 상대를 은근히 높여주는 이런 화술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실전에서 사용하면 좋을 법하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단한 성공을 바라지 않을 .. 더보기
아름다운 마지막 가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나뭇잎들은 자신의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초록 몸속에서 가지각색의 물감을 쥐어짜며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도 단풍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한평생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며 살다 보니 현재의 아름다움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사는 것도 좋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현재의 나와 내 주변의 아름다움도 느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더보기
욕먹어도 싼 ‘지역 상징 조형물’ 청계천 복원 1주년 기념 조형물 ‘스프링(Spring)’은 높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위용에 약 35억원이라는 몸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서울시 최악의 환경조형물이라는 오명도 안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만들었음에도 도시 정체성과 청계천이라는 장소성 및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강남구 싸이 ‘말춤’ 조각도 곧잘 도시 흉물 상위에 오른다. 싹둑 잘린 손목 형상의 이 황금색 ‘엽기조각’은 강남구의 기대와는 달리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은커녕 심미성조차 심어주지 못한다. 정책 관계자들의 단순한 발상과 미숙한 창의성이 낳은 결과이다. 이들 조형물 외에도 한국엔 보편적 대중 정서와 미적 가치가 반영된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먼 조형물이 넘쳐난다. 공공의 희생을 강요.. 더보기
청각의 기억 2016년 국제앰네스티는 작가 로런스 아부 함단과 함께 시리아 인근 다마스쿠스 북부의 군사감옥 사드나야에서 풀려난 수감자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관리하고 있는 이 군사감옥에서는, 2011년 민주화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을 계기로 내전이 발발한 시점부터 2015년 말까지 반정부성향의 수감자 1만3000여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그들에게 사치였다. 폭행과 고문에 시달리며 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지내야 했던 그들에게는 어떤 시각 정보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귀가 정보를 수집했다. 어떤 날에는 쇠파이프에 맞은 동료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어떤 날에는 신체 일부로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는 빠를 때도, 느릴 때도 있었고, 음성의.. 더보기
고향 친구의 전화 고향 친구가 근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온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일이 대부분이다. 종종 낮술 몇 잔 걸치고는 불콰해진 목소리로 보고 싶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할 때도 많다. 내용이 어떠하든 친구의 전화벨이 울릴 때면 반가운 마음에 하던 일도 냉큼 멈추게 된다.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걸쭉한 막걸리 내음이 가득하다. 찐한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올 때마다 소설 속 어린 왕자를 만난 듯 아련하면서도 흥겨운 감흥에 젖어 들게 된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 무리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 들녘을 여기저기 뛰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며 묻지도 않은 고향 소식이 실려 오기라도 하면.. 더보기
말해주세요 그것을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대놓고 말해 주세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아니면 저는 당신의 속마음을 벌써 눈치채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면서 당신에 대한 헛된 희망을 가지며 계속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보기
설득의 기술 설계를 의뢰받은 건축물의 외관 색상을 노란색으로 하고 싶은 어느 건축가가 있었다. 그는 설계 기간은 물론 건물이 지어질 때도 일절 외관의 마감처리에 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매번 설계 미팅 때마다 노란색 넥타이, 셔츠, 손수건, 모자, 양말, 바지 등 상대방에게 노란색이 읽히도록 의도적으로 의상에 하나씩 포인트를 주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드디어 외장 재료를 결정할 시점에 건축가는 넌지시 던졌다. “뭔가 주변에서 돋보이는 색깔이 필요할 것 같군요.” 건축주는 “예? 여기 노란색이 아니었나요?!” 말이 필요 없는 설득의 한 예이다. 뛰어난 디자인 실력, 기술 그리고 종합적 판단력은 우수한 건축가의 필요 사항이다. 하지만 건축주로부터 사용자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건축행위에 관여되는 다양한.. 더보기
버려지는 조각, 투빌락 인간은 왜 조각을 할까? 조각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활동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 이상을 담는다. 무덤이나 성전을 지키는 이집트의 ‘아누비스’와 아시리아의 ‘라마수’도 구석기 시대의 ‘사자인간’처럼 독특한 형상을 가진다. 아누비스의 머리는 자칼이다. 라마수의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은 사자이고 날개가 달려 있다. 이렇듯 인간의 내면적 상상은 주어진 감각 재료들을 조립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디자인 이론가인 빅터 파파넥은 북극의 원주민 이누이트족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는다. 이들에게 예술이나 디자인 개념은 없지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생존을 위해 디자인한다. 얼음 벽돌로 조각된 이글루는 로마의 아치형 돔을 연상시키지만 기능은 훨씬 뛰어나다. 밖의 온도가.. 더보기
검열자들 어두운 방, 밝은 모니터 앞에 앉은 이들은 ‘삭제’ ‘무시’라는 명령어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어떤 것은 지워지고, 어떤 것은 살아남는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우리의 사고와 신체를 장악한 현재, 끝없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와 주장이 넘쳐나는 이 플로어는 모든 정보에 열려 있는 ‘해방구’인가. 독재자와 정치인을 희화화시킨 나체 그림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인기를 얻던 일마 고어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묘사한 그림을 게시한 후 페이스북에서 퇴출당한다. 시리아 전쟁의 심각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시리아에서 전쟁 중 사망한 난민 어린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작가 칼리드 바라케의 이미지 역시 페이스북에서 삭제되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어떤 정보들이 꾸준히 지워지고 있었다. 2013년 한 .. 더보기
마주함으로 회복하다 전시를 하나 준비하고 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아픔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이루어낸 심정적 회복에 관한 전시인데 모두 당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구성하는 중이다. 준비과정 속에서 사진의 치유적 역할을 확인하는 놀라운 순간들을 접하곤 한다. 특히 나는 대면이라는 행위를 주목한다. 사진은 마주함, 즉 무언가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다. 하나의 존재가 또 다른 존재와 만날 때 구현될 수 있고 대부분 어느 하나만으로는 완성의 형질을 갖기 어렵다. 카메라를 든 이가 사람 또는 사물이나 풍경 등 실재하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아 일체를 이루고, 셔터를 눌러 물성화된 결과물을 남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상으로 삼는 피사물은 어김없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존의 형태로 마주하게 되는데.. 더보기
나무필통 속 얼굴 길에서 뚜껑이 열려 있는 나무필통을 발견했습니다. 가만히 쳐다보니 입을 크게 벌려 외치고 있는 사람 같아서 그렇게 필통 위에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필통 뚜껑을 움직이면 입도 닫았다 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표정이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구름 속에도, 얼룩진 벽지에도, 나무 무늬에도, 녹슨 고철 더미에도 자기들만의 표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의 기분대로 나의 느낌대로 그 표정들도 따라 바뀌어 보입니다. 그런 숨겨진 표정을 찾아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더보기
썩은 사회에 대한 냉소 다소 당황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화제를 몰고 다녀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예술성과 아무 상관 없는 석·박사 종이쪼가리는커녕 제대로 된 정규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다. 가구디자이너, 간호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자신에게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술계로 입문했다. 애초 거룩한 미술사적 계보를 잇겠다는 생각 따윈 내다 버린 카텔란은 1980년대 데뷔 당시부터 정치, 사회, 종교, 미술계를 조롱했다. 운석에 짓눌린 교황을 묘사한 90년대 작품 ‘아홉 번째 계시’를 통해 종교의 역할에 대해 되물었고, 고상한 샹들리에가 달린 공간에 살아 있는 당나귀를 넣는 작업으로 미술계의 폐쇄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샹들리에 공간은 허례허식과 쓸데없는 권위를 .. 더보기
코가 없다면 모르는 세계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펀지밥의 단짝 친구 패트릭 스타는 백수다. 게으르지만 그런대로 살아가고, 어리석다는 세간의 평을 배반하듯 가끔은 난제를 얼렁뚱땅 해결해 버린다. 어느 날, 불가사리를 닮은 자신의 몸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당연하게 붙어 있는 코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성형수술로 코를 얻었다. 이제 그의 코앞에서 새 세상이 열렸다. 향수와 꽃다발의 달콤한 향기가 후각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향기로운 기쁨도 잠시. 그의 코는 음식냄새, 땀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고통에 빠졌다. 코가 없을 때 몰랐던 그 세계는 달콤하고도 역겨웠다. 그는 이제 코가 알려주는 세계를 포기할지 말지 고민해야 했다. 미카 로텐버그가 양식 진주로 유명한 중국 저장성 주지시의 진주공장에서 마주한 장면은 고통스럽고 매.. 더보기
가을에 기대어 가을이 아주 깊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내쉬기를 몇 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파란 하늘이 이내 가슴에 들어와서 눌어붙으니 뻥 트인 가슴에 파란 물이 줄줄줄 흘러넘친다. 품 넓은 가을하늘이 성큼 내 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가만히 두 눈을 감고는 모처럼의 평온함에 몸을 기댔다. 버거운 세상살이에 마침 지쳐 있던 참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시간의 궤적이 잠깐 눈에 밟힌다. 목표를 두었으니 이루려고 매달린 시간이 안쓰럽게 쌓여 있었다. 제대로 성과를 낸 것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했던 날들이다. 더 할 노릇도 안되니까 그만 포기하자는 체념이 한숨으로 토해지는 요즘이었다. 감은 눈에 질끈 힘을 주고는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본다. 짙게 푸른 가을하늘이 그간의 노고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