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

당신의 필요와 요구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고딕 양식의 집들은 생뚱맞다. 개성 없이 복제된 일련의 집들은 한껏 멋을 주려다가 실패한 공간처럼 보인다. 시골에 있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풍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촌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의 속물스러움은 ‘나는 절대 저런 끔찍한 건물을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저런 풍경 속에서 살고 싶다’고 꿈꾼다. 이쯤 되면 우리의 욕망이 정체불명의 공간을 낳는 것인지, 아니면 공간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인지도 혼돈스럽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당신의 필요와 요구’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여는 신은경은 이런 식으로 공간의 안과 밖을 다룬다. 처음에는 앤티크 의자와 조야한 벽화가 뒤죽박죽된 결혼식장이나 스튜디오의 키치적인 모습에 주목하더니 이제는 아예 공간 밖으로 .. 더보기
쇠라의 비밀스러운 소풍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미술관이 자랑하는 대표작으로 신인상파의 점묘법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다. 인상주의의 짧은 붓터치를 더욱 심화시켜 점으로만 그린 그림을 점묘법이라고 부르는데, 이 화파를 신인상파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신진비평가 펠렉스 페네옹이 1886년 인상주의 마지막 전람회에서 쇠라의 이 작품을 보고 붙인 것이다. 쇠라의 그림은 당시 19세기를 주도한 과학적인 색채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사물이 다양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그의 점묘법은 보색대비로 점을 찍으면 인간의 눈이 그것을 혼합하여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채로 보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쇠라는 이 작품을 통해 점묘법이 갖는 불안정함과 순간성이라는 한계를 보상하.. 더보기
미완성의 변증법적 극장 권순관, An Interview, 2009 ‘미완성의 변증법적 극장’. 사진가 권순관이 경희대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면서 붙인 제목이다. 꽤 복잡한 말이다. 변증법적이라는 것은 모순과 대립을 통해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간다는 뜻일 텐데 이게 미완성이니 몹시 회의적이다. 게다가 이 말이 극장을 수식한다. 변증법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극장이라는 게 존재할까. 작가에게 그것은 현실 세계의 또 다른 은유다. 그에게 현실은 극장처럼 환상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모든 가치 체계, 불변의 진리를 지닌 사건 등은 그에게 변증법적으로 변해갈 순간적인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하물며 사진 한 장이 역사적 사건을 압축한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연출이 되었든, 인물 .. 더보기
남자들의 화가 구스타프 카유보트, 대패질하는 사람들, 1875년, 오르세미술관 인상파 화가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화가 중 하나가 구스타프 카유보트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화가가 아니라 미술품 콜렉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법학을 전공한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카유보트는 당시로선 드물게 인상파 회화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인상파 화가들의 경제적 후원자인 동시에 그들 그림의 최초 수집가가 되었다. 카유보트는 인상파 화가들의 카페 게르부아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처음으로 르누아르의 작품을 구입했고, 이후 피사로, 모네 등의 작품을 사들였다. 이뿐만 아니라 모네에게 작업실을 저렴하게 빌려주기도 했다. 그때 모네의 격려로 취미로 그렸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었던 것! 그러다가 인.. 더보기
소치 프로젝트 압하스의 총을 든 형제, 2009 ⓒRob Hornstra/Flatland Gallery 지난겨울 네덜란드 사진가 롭 온스트라의 러시아 전시가 돌연 취소되었다. 그는 러시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입국조차 불가능한 처지다. 그가 ‘소치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작업으로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러시아에 관한 작업을 해오던 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올림픽이 열릴 소치에만 4년 넘게 드나들었다. 그동안 러시아의 따듯한 휴양지가 어떻게 동계스포츠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 화려하게 변모하는지를 추적한 것은 물론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그랬듯 가난한 마을들은 부서지거나 감춰졌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황금시대를 맞이한 도시의 호텔, 유흥업소에 기생하며 꿈을 키운다. 이런 기회에서.. 더보기
도시의 깊이 금혜원, Urban Depth D0003, 2010 축축한 붉은색 바닥 위로 바퀴 자국이 산만한 얼룩을 남긴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네 개의 불빛은 마치 주인공에게 쏟아지는 스튜디오의 조명처럼 이 공간에 강한 존재감을 만들어 준다. 정갈해 보이지는 않지만, 커다란 콘크리트 공간은 사진 속에서 묘하게 도시적인 분위기를 뿜어낸다. 이 시설물이 도시에 있으리라는 아무런 단서도 없는데, 작가의 중립적이고도 차가운 시선은 이 공간을 현대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도대체 이 낯익으면서도 낯선 익명의 장소는 어디란 말인가. 금혜원의 은 도시 지하에 숨겨놓은 쓰레기 처리장에 관한 연작이다. 화려하고 말쑥한 것들로 치장한 도시는 이 처리 시설에 기생하면서도 결코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간판도 없이 지하 .. 더보기
白, 응축된 시간의 색 1970년대 젊은 사진가가 영화를 보다 문득 영화 한 편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관객으로 가장한 채 극장에 들어가 대형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1920~1930년대에 지어진 미국 극장의 아르데코풍 장식은 화려했고, 관객 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물었다. 그곳에서 그는 영화가 시작할 때 카메라 셔터를 열어뒀다가 영화가 막을 내릴 때 셔터를 닫았다. 무수히 많은 필름들이 돌아가며 스크린 위에 재현시켜 놓은 두 시간 동안의 사건과 사고는 그렇게 그의 필름 한 장에 응축되었다. 사진 속에서 장시간 빛을 쪼인 스크린은 온통 하얀색이 되었다. 대신 어두워서 한눈에 알아볼 수 없던 극장 내부는 구석구석 또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대표작 ‘극장’ 시리즈는 이.. 더보기
벗은 남자가 더 아름답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을 꼽으라면? 아마 아폴론일 것이다. 비너스가 아니라 아폴론이라고? 사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는 남성 누드만이 조각의 전형이었다. 비너스 같은 여성 누드상이 등장하려면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왜 남성 누드만이 대대적으로 성행한 것일까? 남성과 나체에 대한 남다른 생각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남성들이 벌거벗는 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 벌거벗음은 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편안하고 자유로운 것, 즉 일종의 문명적인 상태를 의미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나체가 되기 위해 체육관으로 갔다. 김나지움은 젊은 아테네인에게 나체가 되는 법을 가르쳤던 것이다. 김나지움(체육관)이라는 말이 ‘완전한 나체’를.. 더보기
카라바조의 의심 충격은 착각 때문이었다.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를 만지는 자가 도마(Thomas)가 아니라 바로 나인 것 같다는 착각 말이다. 마치 3D 영화를 보는 듯한 친밀한 접촉의 느낌이었다. 카라바조는 어떻게 캔버스와 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릴 수 있었을까? ‘의심하는 도마’의 주제는 요한복음 20장 24절에 등장한다. 예수의 예언은 기적처럼 일어났다. 무덤에 묻힌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가 살아생전에 예언한 대로 제자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자기 손으로 예수의 상처를 만져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온몸이 축 늘어진 채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8일이 지난 후 제자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다시 나타난 예수는 의심 많은 도.. 더보기
삼팔선 사진은 유령을 찍을 수 없다. 우리의 망막에 포착되지 않는 것은 사진기에도 상을 맺지 못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실재하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를테면 삼팔선처럼. 미국과 소련이 군사작전상의 업무 분담을 위해 설정한 이 군사분계선은 지도상의 좌표로만 존재한다. 다만 이런 곳에는 으레 어떤 식으로든 의미심장한 표시가 있다. 38도선이라는 표지석이나 탱크 저지선이 늘어서 있기도 하다. 사진가 지영철은 이 삼팔선을 가지고 고민하는 작가다. 엄밀히 말해 그는 삼팔선을 매개로 이념, 역사 등의 거대한 말들이 시각화되는 방식을 고민한다. 부피도 무게도 갖지 못한 선 하나가 탄생시키는 이념의 공간을 탐구한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삼팔선의 복합적인 풍경들은 삼팔선을 기념하거나 이 선이 여전히 현실에서.. 더보기
눈삽과 남근 작년 1월 만난 폭설은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했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마련한 롱아일랜드의 세컨드하우스를 보러간다는 설렘은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간단히 무시하게 만들었다. 길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속도로에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는 차를 마을 입구에 내버려두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수도가 터지는 등 집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이튿날. 평상시에는 한없이 아름다웠을 설경이 재앙처럼 느껴지는 건 그날 밤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맨해튼까지 실어다줄 차는 눈 속에 파묻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우리는 눈삽 두 개로 꼬박 두 시간 눈을 퍼냈고, 겨우겨우 차를 몰았지만 길은 아수라장이었다. 9시간의 사투 끝에 맨해튼에 돌아왔을 땐 어깨와 팔에 심한 통증이 .. 더보기
낯선 도시를 걷다 방병상, 삼성역, 고개숙인 여자, 2001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고 해서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우리는 숱한 얼굴들과 마주쳤지만 그 누구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오히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하릴없이 휴대폰을 뒤적거린다. 도시라는 공룡 뱃속에서는 혹시라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내가 그의 꽃이 될까봐 불안하다. 우리는 그 자체가 섬일 뿐이다. 방병상의 ‘낯선 도시를 걷다’ 연작은 대도시의 익명성과 장소성을 시각적으로 탐색한 탁월한 작업이다. 그의 사진이 포착한 장소들은 너무 낯익어서 오히려 낯설다. 삼성역 주변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무료한 표정들이다. 놀랍게도 북적거리는 그곳에서 시선들은 어느 하나 만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절묘하게 서.. 더보기
늙은 유혹녀 사람들은 죽음보다 늙음을 더 비참하게 여기는 것 같다. 젊은 시절 여배우가 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영영 은막을 떠나듯이 늙은 모습을 과시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더구나 미술사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의무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7세기 바로크 시대 이전까지는 늙은 여자가 그려지는 예가 거의 없었다. 늙음은 병듦과 마찬가지로 천대받고 무시당해도 어쩔 수 없는 시절이었으며, 노인은 측은한 존재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절이었다. 퀸틴 마시스의 ‘그로테스크한 늙은 여인’(1525~1530)은 생전에 아주 추악한 인물이었던 티롤의 공작부인 마가렛 마울타시의 초상으로 추정된다. 한편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즐겨 그렸던 광인과 기형인 그리고 추녀와 추남 등의 드로잉을 참고해.. 더보기
경계의 땅 심학철, 두만강변의 조선군인, 2010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지 못한 풍경은 슬퍼 보인다. 산인데 오르지 못하고, 강인데 건너지 못하면 그것은 분명 순리를 거스르는 어떤 사연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사연들은 대개가 사람 탓인데, 한번 만들어내고 나면 사람도 어찌하지 못한다. 자연을 볼모로 삼은 이념과 국경의 장벽들은 눈에 띄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주변 삶을 옥죈다. 심학철의 ‘경계의 땅’은 이런 연유로 넘나들 수 없게 된 두만강변의 풍경에 관한 작업이다. 지린(吉林)성에서 태어난 조선족 3세인 그 또한 쉽사리 강을 넘을 수 없기에 그는 늘 강 저편의 북한 땅을 바라볼 뿐이다. 강 이쪽 편은 큰물이 지나갔는지 흙이 파여 나갔지만 얼핏 보기에는 나무가 울창한 고즈넉한 강변 풍경이다. 그러나 강가에 앉아 사.. 더보기
어떤 인간혐오주의자의 시선 드가의 ‘기다림’은 오디션을 기다리는 무용수와 그녀의 엄마를 포착한 작품이다. 그런데 오디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디션을 마친 후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무용수는 오디션에서 실수로 발목을 다쳤는지 혹은 실수한 것이 겸연쩍었는지 발목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엄마는 오디션을 망친 딸을 원망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디션 전이거나 후거나 이 장면은 난감하고 처연하다. 엄마와 딸은 동상이몽이다. 같은 의자에 앉아있지만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더구나 고꾸라질 듯 바닥을 향한 딸의 얼굴은 검게 물들었고, 엄마의 얼굴은 무엇인가를 포기한 듯 훨씬 냉랭하고 차분해 보인다. 드가는 어린 무용수들을 수없이 그렸다. 무희들을 그리기 위해 오페라극장의 연간 회원권을 구입.. 더보기
태양들 페넬로프 움브리코, 2006년 1월26일, 플리커의 일몰 사진에서 얻은 54만1795개의 태양 중 일부. 페넬로프 움브리코는 인터넷 시대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이미지들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견 작가다. 홈쇼핑의 상품 책자, 이베이와 같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 등의 이미지들을 새롭게 재구성해 상품 이미지들이 우리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이미지의 덫에 걸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에게 대량 생산된 이미지들은 가짜의 세상을 믿게 만드는 속임수이거나, 우리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의 산물이다. 그녀가 플리커라는 사진 공유 사이트에서 캡처해온 태양 사진들은 이런 작가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사이트에 올라온 일몰 사진들을 다운받아 그 사진 속에서.. 더보기
섬뜩하지만 왠지 볼매! 혐오와 공포를 야기시키는 대상은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욱 매혹의 위력을 갖는다. 여기 시선을 사로잡는, 흉하지만 어쩐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초상화가 있다. ‘토니나’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얼굴에 온통 털이 난 소녀 안토니에타 곤살부스. 그녀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시작한 1572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페트루스 곤살부스는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 출신으로 선천성 다모증으로 얼굴은 물론 손과 팔 등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파리로 건너와 난쟁이와 광대를 좋아했던 앙리 2세의 궁정에서 음악과 미술, 문학, 라틴어를 배우며 자랐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 아름다운 네덜란드 여인과 결혼, 네 명의 자녀를 낳았다.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의 질병을 물려받았.. 더보기
달빛 없는 밤 “산타클로스, 당신이 오기 전에는 삶이 달빛 없는 밤 같았습니다.” 한 편의 시 같은 이 말은 사진 작품의 제목이다. 이탈리아 사진가 안드레아 알레시오의 작품을 보고 어느 큐레이터가 붙여줬다. 어쩌면 우리는 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산타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타는 신보다 더 친근하고 더 쉽게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어김없이 일 년 단위의 기다림을 선물해준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워하기 위해 존재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두운 밤을 가로질러 찾아올 산타가 아니라,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위해 반짝인다. 따지고보면 달빛조차 없는 듯한 삶이 싫어 우리는 영원히 산타를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드레아 알레시오, Before You, San.. 더보기
아주 아름다운 예배 마리아와 갓 태어난 아기,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는 요셉, 그리고 천사들의 합창, 목동들의 경배는 미술사에서 흔한 예수 탄생 장면이다. 동방박사가 오기 전 단계의 상황을 그린 장면이랄까.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의 법령에 따라 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떠났다.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진통을 느꼈으나 묵을 곳을 마련하지 못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곳을 묘사하지는 않았으나 아기가 구유에 놓였음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그곳이 마구간임을 암시했다. 플랑드르의 화가 후고 반 데르 구스의 ‘목자들의 경배’는 1475년쯤 메디치은행의 브뤼헤 지점장이었던 이탈리아인 토마소 포르티나리의 의뢰로 그려졌다. 3년 동안 브뤼헤에서 그려져 배로 운반되어 피렌체까지 들어온 이 그림은 14.. 더보기
기념일 무릇 ‘작품’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이 사진은 모든 것을 한 번에 말해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 속 그 분은 지금 ‘개’가 되어 있다. 배경에 즐비한 버선과 목걸이로 보아 그 분은 여자도 좀 밝힌 듯하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평소 사는 멋을 좀 아는 분이었을 텐데 완전히 망가졌다. 술이 원수라거나 ‘망년회’가 한 해를 망친다는 진부한 교훈을 위한 좋은 사례 같기도 하다. 사진가 난다의 ‘기념일’ 연작은 이렇듯 각종 기념일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와 은유로 가득하다. 작가는 기념일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면서, 굳이 직설과 독설을 감추지 않는다. 어버이날의 엄마는 제단에 바쳐진 살찐 ‘돼지’처럼 보이며, 생일을 맞이한 아이는 ‘괴물’처럼.. 더보기